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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Mar 03. 2017

애썼지만 실패한 자기부정

*스포일러 주의


 덴마크에서 10년 동안 동양화를 공부하던 지젤(류현경)이 한국으로 돌아온다. 무명의 작가인 그는 생계를 위해 취직하려 하지만 여의치 않다. 미술 과외를 하는 중 우연히 상업 갤러리를 운영하는 재범(박정민)을 만난다. 재범은 지젤의 작품을 보고 감명받아 그의 작품을 모두 사들이려 한다. 그러던 중 지젤이 심장마비로 쓰러지고 끝내 숨을 거둔다. 재범의 홍보와 작품의 퀄리티, 지젤의 사망이 겹쳐 작품의 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고 지젤은 한국 미술계의 안타까운 천재 작가의 위치에 올라선다. 그러던 중, 지젤이 영안실에서 깨어나고, 지젤의 작품으로 다음 프로젝트를 진행하려던 재범의 앞에 그가 나타난다.


 영화는 지젤의 그림 앞에 흰 국화를 놓으며 추도사를 읊는 제임스(문종원)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마치 진짜 예술가는 죽었다고 선언하는 것 같다. 이후 등장하는 지젤은 택시 기사에게 “예술계에 남은 건 죄다 양아치예요”라고 요란스럽게 말을 토해낸다. 예술계에서 진짜 작가가 죽고 사라졌음을 두 번씩이나 강조하며 시작하는 오프닝은(음악 때문에 다소 산만하지만) 영화가 어떤 것을 말하려는지 확고히 한다. <아티스트: 다시 태어나다>는 예술이 죽고 작가가 사라진 예술계에서 작가로 다시 태어나는 이야기이다. 숨이 멎었다 다시 지젤의 이야기를 직접적으로 언급하고 있는 것과 더불어, 오랜 유학 끝에 얻은 것은 염세뿐이고 생계를 위해 작가를 포기한 지젤이 아티스트의 자아로 재탄생된다는 주제를 담아낸 제목이다.

 문제는 어느 순간 영화가 주제를 잃어버린다는 것이다. 지젤이 숨을 거둔 후부터 카메라는 지젤보다 재범을 더 많이 비춘다. 단순히 많이 등장할 뿐만 아니라 영화의 감정선이 재범을 따라간다. 아티스트의 정체성, 작가의 자아에 대한 이야기는 단편적으로 스쳐 지나가고, 예술계의 양아치가 작가를 어떻게 팔아먹는지를 보여주는데 치중한다. 배우보다는 연기 디렉션의 문제로 보이지만, 박정민의 연기가 양아치 같아 보이는 것은 영화가 중심 맥락을 잡는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또한 초반부의 면접 장면에서 등장하는 지젤의 상상 장면은 지젤에게 몰입하는 것을 방해한다. 평이하고 지루한 대사는 장면에 힘을 주지 못한다. 지젤이 죽은 이후는 재범을 통해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는 것이 맞지만, 그가 깨어난 이후에는 다시 지젤에게 포커스가 돌아가야 한다. 영화는 그렇지 못했고, 메시지는 흐려진다.


 지젤이 죽었다 살아난 이후, 재범은 그의 생존을 덮은 채 본래의 계획을 진행하려 한다. 그중 하나가 얼굴이 알려지지 않은 무명작가인 지젤의 과거사를 꾸며내는 일이다. 갤러리 직원들의 회의에서 등장한 아이디어는 지젤이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학대당하고, 가출해 이곳저곳을 전전해 다니다가 여러 차례 강간을 당한다는 것이었다. 물론 블랙코미디적으로 그려낸 의도가 명확하게 드러나는 장면이다. 허나 영화 전체가 지젤의 감정선으로 들어가는데 실패하고 재범과 그의 갤러리의 이야기를 보여주는데 치중하다 보니, 해당 장면에 불쾌하게 다가오기 시작한다. 사실 해당 장면이 처음 등장할 때는 웃을 수 있다. 그 장면은 여성 캐릭터의 과거를 그려내려는 시도에 얼마나 빈약한 아이디어가 들어가는지를 지적하려는 장면이었기 때문이다. 허나후반부 끝내 지젤이 자신의 계획을 돕도록 설득하지 못한 재범이 그를 목졸라 살해하는 장면에서 숨 쉬지 못해 떨리는 지젤의 시선으로 재범의 얼굴을 잡은 쇼트를 보며 앞선 장면이 떠올라 불쾌해졌다. 이 영화가 지젤의 이야기였다면 그렇지 않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영화는 재범의 이야기에 집중하고 있고, 갑작스럽게 지젤의 시선을 담는 카메라는 양아치의 폭력에 희생당하는 무력한 피해자일 뿐이다. 작가가 되기 위해 고난을 겪어야 한다는 갤러리 사람들의 회의는 갤러리 대표인 재범에 의해 행동으로 옮겨진다.

 영화는 급작스럽게 지젤의 이야기로 변경되면서 마무리된다. 재범에 손에 목 졸려 죽은 줄 알았던 지젤은 다시 살아난다. 그와 갤러리 직원들이 다시 접촉하지 않은 채 마무리되는 영화의 엔딩은, 돈에 찌든 예술계 양아치와 작가인 자신은 다르다는 듯 지젤의 미래를 보여주며 끝이 난다. 실제로 고난을 겪어버린 지젤은 그제야 작가로서의 자아를 찾아 재탄생한다. 결국 <아티스트: 다시 태어나다>는 여성 주인공이 남성 캐릭터를 통해 고난을 받은 뒤 각성하게 되는 뻔한 서사의 재생산이다. 영화의 각본도 연출도 갤러리 직원들이 나누던 이야기에서 발전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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