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흔히 거장이라고 부르는 영화감독들이 있다. 찰리 채플린부터 알프레드 히치콕, 오손 웰즈, 스탠리 큐브릭, 스티븐 스필버그, 구로사와 아키라, 다르덴 형제, 허우 샤오시엔 등의 이름이 '거장'이라는 키워드와 함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꾸준히 활동하는 감독들은 신작을 내놓을 때마다 각종 영화제 최고의 화제가 되고, 여전히 사람들에게 어떤 감동과 영감을 전달한다. 그들의 영향을 받은 새로운 영화감독 역시 꾸준히 등장하고 있다. 최근 칸 영화제나 오스카, 선댄스 영화제 등의 무대에서 자주 보이는 이름들이 있다. 아직 거장이라고 부를 수는 없지만, 앞으로 거장이 될 것이라 의심치 않는, 30대의 젊은 감독 5명을 골라보았다.
Choice 1. 라이언 쿠글러(Ryan Coogler)
작품: <오스카 그랜트의 어떤 하루>(2013), <크리드>(2015), <블랙 팬서>(2018)
수상: 29회 선댄스 영화제 대상/관객상, 66회 칸 영화제 주목할만한 시선 AVENIR상, 제78회 뉴욕 비평가 협회상 데뷔작품상 등
1986년 오클랜드에서 태어난 라이언 쿠글러 감독은 할리우드 블랙 필름을 이끌어갈 새로운 감독으로 평가받고 있다. 2009년 <자물쇠>라는 단편영화를 통해 영화 연출을 시작했다. 캘리포니아에 사는 젊은 흑인의 이야기를 담은 러닝타임 6분의 짧은 영화는 그가 앞으로 만들어갈 영화의 방향성을 보여준다. 이후 <피그>(2011), <조각가>(2011) 등의 단편을 연출하고, 2013년 <오스카 그랜트의 어떤 하루>를 통해 장편영화감독으로 데뷔한다. 2008년 샌프란시스코에서 오스카 그랜트가 경찰에 총에 부당하게 살해당한 사건을 덤덤한 시선으로 담아낸 수작이다. 차별적 시선이 젊은 흑인의 일상을 어떻게 박살 내는지 고스란히 그려낸다. 이 작품으로 선댄스 영화제 대상과 관객상을 수상하는 등 명성을 얻게 된다. 이후 <록키>의 스핀오프인 <크리드>를 통해 상업영화 연출에도 재능을 드러낸다. 시리즈를 되살렸다는 극찬과 함께 그 해 최고의 평가를 받은(로튼토마토 신선도 95%) 작품으로 남게 된다. 현재 마블의 새 영화 <블랙 팬서>를 촬영 중이며, 그 영화 역시 흑인 배우가 영화 캐스트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인디영화와 상업영화 양 쪽에서 인정받은 그가 꾸준히 만들어내는 흑인 중심 영화들이 어떨지 기대된다. 더불에 장편 데뷔작부터 <블랙 팬서>까지 세편을 내리 함께하는 배우 마이클 B. 조던 역시 주목해야 할 배우이다.
Choice 2. 데미안 차젤레(Damien Chazelle)
작품: <위플래쉬>(2014), <라라랜드>(2016)
수상: 74회 골든글로브 각본상/감독상, 89회 아카데미 감독상 등
데미안 차젤레, 89회 아카데미 시상식에 무려 14개 부분 후보로 지명된 <라라랜드>를 연출한 감독이다. 이번 감독상 수상으로 인해 최연소 오스카 감독상 수상이라는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미국 로드아일랜드주에서 태어난 그는 재즈 트럼펫 연주자의 이야기를 다룬 2009년작 <가이 앤 매들린 온 어 파크 벤치>를 통해 장편영화감독으로 데뷔했다. 대단한 재즈 마니아로 알려진 그는 데뷔작에 이어 재즈 드럼 연주자의 이야기 <위플래쉬>(2014)를 연출한다. 선댄스 영화제를 통해 단편을 먼저 선보이고, 이를 통해 투자를 받아 완성된 <위플래쉬>는 J.K. 시몬스와 마일즈 텔러의 강렬한 연기에 힘입어 평단의 엄청난 호평과 함께 데미안 차젤레를 단숨에 주목받는 감독의 위치로 올려놓는다. 고전 할리우드 뮤지컬 영화의 영향을 진하게 받은 <라라랜드>가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는 더 이상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세 편의 영화를 함께한 음악감독 저스틴 허위츠의 음악은 그의 영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가 되었다. 본인이 연출한 세 영화 모두 각본을 직접 썼다. 그 외에도 여러 영화의 각본에 참여했는데, 의외로 스릴러/호러 장르의 영화 각본도 썼고, 대부분 호평받았다. 그가 각본에 참여한 영화로는 <라스트 엑소시즘: 잠들지 않는 영혼>(2013), <클로버필드 10번지>(2016) 등의 영화가 있다. 현재 라이언 고슬링과 함께 우주비행사 닐 암스트롱의 전기영화 <퍼스트 맨>(2018)을 작업 중이다.
Choice 3. 미아 한센-러브(Mia Hansen-Løve)
작품: <모두 용서했습니다>(2007), <내 아이들의 아버지>(2009), <안녕, 첫사랑>(2011), <에덴: 로스트 인 뮤직>(2014), <다가오는 것들>(2016)
수상: 62회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심사위원 특별상, 66회 베를린영화제 은곰상 최우수감독상 등
1981년 파리에서 태어난 미아 한센-러브는 올리비에 아사야스 감독의 <8월 말 9월 초>(1998)와 <애정의 운명>(2000)에 조연으로 출연하며 배우로 영화일을 시작했다.(이후 올리비에 아사야스 감독과 결혼한다) 영화비평지 카이에 뒤 시네마에 기고하다 2004년 단편영화 <Après mûre réflexion>를 통해 영화 연출을 시작한다. 2007년 <모두 용서했습니다>를 통해 장편영화감독으로 데뷔한 미아 한센-러브는 <내 아이들의 아버지>, <안녕, 첫사랑> 등의 작품을 통해 칸 영화제, 토론토 영화제, 부산국제영화제 등 세계 유수의 영화제들에 러브콜을 받는다. 국내에는 2014년작 <에덴: 로스트 인 뮤직>이 2015년 개봉하면서 처음 소개되었다. 프랑스의 전자음악 DJ의 삶을 따라 인생의 흥망성쇠, 환상과 공허를 다룬 이 영화는 감독의 나이를 떠올리기 어려울 정도로 깊이가 느껴지는 수작이다. 2016년 이자벨 위페르 주연의 <다가오는 것들>을 통해 베를린 영화제 은곰상을 수상하며 젊은 거장의 탄생을 알렸다. 갑작스럽게 이혼 통보를 받은 철학 선생의 이야기를 다룬 <다가오는 것들>은 전작들에 이어 삶에 대한 깊은 통찰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며, 미아 한센-러브의 연출과 이자벨 위페르의 연기의 시너지는 삶의 파도를 맞이하는 중년 여성의 어떤 위엄을 보여준다. 현재 2018년 공개를 목표로 <마야>라는 작품을 준비하고 있다.
Choice 4. 배리 젠킨스(Barry Jenkins)
작품: <멜랑콜리의 묘약>(2008), <문라이트>(2016)
수상: 89회 아카데미 각색상/작품상, 74화 골든글로브 작품상 등
89회 아카데미 시상식의 진정한 주인공은 <문라이트>의 배리 젠킨스 감독이다. 영화의 주인공 샤이론처럼 1979년 마이애미의 흑인 거리에서 태어난 그는, 2003년 <나의 조세핀>이라는 단편영화로 영화 작업을 시작한다. 9/11의 후폭풍 속 아랍계 미국인의 모습을 그려낸 <나의 조세핀>은 미국 안의 사회적 소수자를 영화에 담으려는 그의 지향점이 드러난 작품이다. 이후 몇 편의 단편영화를 연출한 뒤 첫 장편영화 <멜랑콜리의 묘약>을 연출한다. 급속히 성장하는 도시 샌프란시스코에 사는 젊은 커플의 이야기를 다룬 이 영화는, 인종적, 계층적으로 소수자에 위치한 사람의 이야기이다. 배리 젠킨스의 영화 전체를 가로지르는 테마인 소수자성은 그의 첫 장편영화에서부터 드러난다. 그리고 2016년, 그의 두 번째 장편영화 <문라이트>가 개봉한다. 잘 알려진 대로, <문라이트>는 각종 영화제와 시상식에서 150여 개의 상을 쓸어 담는다. 배리 젠킨스가 직접 밝힌 대로 왕가위, 허우 샤오시엔 등의 영향이 짙게 드러나면서도 배리 젠킨스의 개성이 드러나는 작품이다. 영화는 그와 어린 시절 같은 동네에서 자랐지만 서로의 존재는 몰랐다는 극작가 터렐 앨빈 맥크레이니의 극본 '달빛 아래에 흑인 소년들은 파랗게 보인다'를 각색해 만들어졌다. 현재 <A Contract with God>이라는 제목의 영화를 연출할 것으로 알려져 있다.
Choice 5. 마렌 아데(Maren Ade)
작품: <나만의 숲>(2003), <에브리원 엘스>(2009), <토니 에드만>(2016)
수상: 21회 선댄스영화제 심사위원특별상, 59회 베를린국제영화제 은곰상, 29회 유럽영화상 작품상/각본상 등
1976년 독일에서 태어난 마렌 아데 감독은 뮌헨 영화학교와 호흐슐레 피어 페른제엔을 졸업했다. 단편영화 단편영화 < Ebene 9>(2000), < El Condor no pasa>(2002), < Vegas>(2002) 등을 연출했고, 2003년 졸업작품인 <나만의 숲>을 통해 장편영화감독으로 데뷔했다. <나만의 숲>은 어색한 이상주의자인 고등학교 교사가 도시에서 처음 일을 시작하게 되면서 겪는 이야기를 다룬 영화다. 이 영화를 통해 선댄스 영화제 심사위원특별상을 수상하는 등 여러 영화제에서 주목받기 시작한다. 2009년에 공개된 두 번째 작품 <에브리원 엘스>는 은밀하게 지키는 예의와 어리석은 듯 느껴지는 관습들로 둘 사이의 모호한 긴장감을 감추고 있는 어느 커플의 이야기를 다룬다. 이 영화를 통해 베를린 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에 해당하는 은곰상을 수상한 마렌 아데는 독일 영화계를 이끄는 젊은 작가로서 인정받게 된다. 칸 영화제 등 여러 영화제에서 화제가 된 2016년작 <토니 에드만>은 마렌 아데 영화의 어떤 정점을 보여준다. 세 편의 영화와 여러 단편을 통해 꾸준히 보여준 인간 사이의 관계에 대한 고찰은 정치, 문화, 세대, 젠더 차이에 따라 삐그덕거리는 관계를 조명해온 그의 영화 세계를 구성하는 주된 요소이다. 영화 제작자로서도 활발히 활동하는 마렌 아데는 본인의 영화는 물론 포르투갈의 현실을 우화적으로 담아낸 미겔 고미쉬의 <타부>와 <천일야화> 트릴로지 등을 제작했다. 현재 <토니 에드만>의 할리우드 리메이크를 제작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