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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Mar 29. 2017

세기말적 화두를 던지다

오시이 마모루의 재패니메이션 걸작 <공각기동대>

 루퍼트 샌더스의 할리우드 리메이크를 보기 전, JFF를 통해 오시이 마모루의 1995년작 <공각기동대>를 극장에서 먼저 만나볼 수 있었다. 니체 철학과 <블레이드 러너>등 앞선 영화들를 흡수해 <매트릭스> 등후대 사이버펑크 영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90년대 세기말적 일본 애니메이션의 선두주자와도 같은 작품이다. 영화는 ‘인간의 신체마저 기계로 대체 가능한 세상에서 인간, 그리고 자신은 어떤 존재인가?’라는 세기말적 주제의 화두를 던진다. 시로 마사무네의 원작 만화를 읽지 못해 영화가 다루는 세계관에 대한 깊은 이해는 하지 못했지만, 영화가 던지는 화두가 가지는 영향력과 효력은 지금까지 유효한 것 같다.

 영화는 사고로 인해 뇌만 살아남고 몸은 의체로 대체된 쿠사나기 소령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공각기동대라는 별칭으로도 불리는 사이보그 부대 9과는 네트워크나 현실에서의 테러 진압이 주 임무이다. 쿠사나기를 비롯해 바토, 토구사 등의 멤버가 9과의 구성원이다. 어느 날, 그들 앞에 정체불명의 해커 인형사가 등장한다.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프로젝트 2501’이라는 기밀 프로젝트를 통해 탄생한 인형사는 인간이 아닌 네트워크 상에서만 존재하는 프로그램이었다는 것이 밝혀진다.


 <공각기동대>는 이러한 이야기를 바탕으로, 자신의 존재는 인간인지, 인간이었을 때의 기억은 어떤 꿈이나 환상이 아닌지 고민하는 쿠사나기의 모습을 그려낸다. 기억을 만들어내고, 뇌를 포함한 모든 신체를 기계로 대체할 수 있는 세상에서 인간인 자신을 실재한다 생각하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한 인간이 평생 동안 처리할 수 있는 정도는 한 줌 밖에 안 돼.”라는 바토의 대사처럼, 급변하다 못해 모든 것이 꿈이나 허상일 수 있는 세상에서 자신이 실재함을 고민하는 것은 부질없는 짓처럼 느껴질 수 있다. <공각기동대>는 이렇게 자신이 인간인지 인조인간인지에 대한 고찰이 담겼던 <블레이드 러너>의 주제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영화 후반부, 쿠사나기는 인형사와의 결합을 통해 인간, 사이보그 그 너머의 초월적 체험으로 다가가려 한다. 이러한 쿠사나기의 행동은 인간성 극복을 철학적 과제로 삼고 초인이 되어야 한다 말했던 니체의 사상과 맞닿아 있다. 이렇게 <공각기동대>는 <블레이드 러너>를 비롯해 <트론>, <토탈 리콜> 등 앞선 사이버펑크 장르 영화에 비해 차별화된 모습을 보여주었다.

 다만 대부분 대사로 이야기를 전개시키는 방식은 조금 지루하게 다가온다. 니체의 철학을 비유적인 방법을 통해 해설하는 느낌이랄까. 후반부 클라이맥스에 대사가 조금 넘친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뛰어난 작화, 일본적 느낌을 한껏 살려낸 카와이 켄지의 음악, 현재의 몇몇 사이버펑크 영화보다 뛰어난 액션 등은 당시 일본 애니메이션의 수준이 어떤 경지에 올라있음을 증명한다. 2017년에 다시 찾아보기엔 조금 루즈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83분의 짧은 러닝타임에 압축된 주제와 철학을 되새겨 보면 <공각기동대>의 가치를 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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