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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Mar 31. 2017

이 이야기가 굳이 '공각기동대'여야 할 필요가 있을까?

스칼렛 요한슨 주연으로 실사화 된 <공각기동대: 고스트 인 더 쉘>

*스포일러 주의


 <스노우 화이트 앤 더 헌츠맨>(2012)의 루퍼트 샌더스가 <공각기동대>를 실사화한다고 했을 때 기대보다는 걱정이 앞섰다. 30분 분량의 푸티지를 공개했던 시사회를 다녀오고 나서 그 걱정은 불길함이 되었다. <블레이드 러너>, <토탈 리콜> 등 비슷한 장르의 앞선 영화에서 하나도 발전하지 못한 비주얼, 진보는커녕 퇴보한 액션, 원작의 철학적이면서도 유려한 이야기를 단순하고 평면적인 이야기로 바꾼 듯한 전개…… 하지만 영화의 30분을 봤기 때문에 뒷이야기가 어떻게 이어질지 궁금증이 생겼다. 그렇게 실망할 것을 기대하며 극장을 찾았다. 

 영화를 보면서 느낀 첫 감상은 ‘이 이야기가 굳이 <공각기동대> 일 필요가 있을까?’하는 의문이었다. 니체의 철학 등 많은 요소를 품고 그려내었던 원작과는 달리, 이번 리메이크는 어떤 깊이가 없다. 영화의 스토리라인만 놓고 보면 <메이즈러너>나 <다이버전트> 같은 영 어덜트 소설 원작의 SF영화들이 연상된다. 영화의 내용을 요약하자면, 기억을 잃고 병기로 사용되는 사이보그 메이저가 자신의 기억을 찾아내려 고군분투하고, 영화의 빌런인 쿠제(마이클 피트)가 사실은 메이저가 기억을 잃기 전 함께하던 친구였다라는 이야기가 된다. 여기에 오우레 박사(줄리엣 비노쉬) 같은 인간적인 면모가 두드러지는 조력자가 등장하며, 메이저를 의심치 않고 도와주는 바토(요한 필립 에스백), 아라마키 부장(기타노 다케시), 토구사(친 한) 등의 캐릭터가 등장한다. 다시 말해 이번 영화는 원작 <공각기동대>의 캐릭터와 배경 설정만을 빌려와, 최근 몇 년 동안 할리우드에서 유행하는 영 어덜트 SF로 만들어낸 격이다. 후반부 메이저와 쿠제가 함께 쓰러져 있는 장면은 <헝거게임> 등의 영화에서 수도 없이 보던 구도를 보여준다. 이런 방식으로 등장하는 몇몇 쇼트에서 <공각기동대: 고스트 인 더 쉘>을 익숙하고 뻔한 이야기로 각색할 의도였음이 드러난다. 영화의 주제의식 또한 단순하고 평면적인 이야기로 바뀌었다. ‘인간과 기계, 그 융합을 통한 인간성의 초월’을 이야기하던 원작은 ‘인간성은 최고의 가치이며, 이것을 보존하는 것이 임무이다.’라는 주제로 리메이크 되었다. 영화 속의 이야기로 완결되어 버리는 영화 속 주제는 영화 밖에서 여러 토론을 이끌어냈던 원작을 전혀 따라가지 못한다.

 게다가 디테일하지 못한 비주얼과 ‘구려’라는 마음의 소리가 바로 튀어나오게 만드는 액션은 이번 리메이크 자체를 부정적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게 만든다. 한국어를 쓰는 관객에게 한정된 이야기이지만, ‘Quick Massage’를 ‘마사지 빨리’로, ‘Occupied’를 ‘가득 차있는’으로 번역한 간판들은 황당하기 그지없다. 80년대에 만들어진 <블레이드 러너>에서부터 <스타워즈> 프리퀄 트릴로지, <토탈 리콜> 리메이크 등에서 주구장창 등장했던 홀로그램 광고들은 조금 지겹게 느껴지기도 한다. 몸의 일부분을 의체로 바꾼 사람들의 모습은 <로보캅> 같은 영화에서 실사 이미지로 수없이 구현된 이미지이기에 새롭지 않다. 메이저의 빠른 움직임을 강조하기 위한 듯한 슬로모션 효과는 목표를 전혀 달성하지 못하고, 마이클 베이의 악취미적인 슬로모션을 보는 게 차라리 재밌겠다는 생각이 든다. 영화는 <어벤저스> 등에서 좋은 마샬아츠를 보여준 스칼렛 요한슨이 몸을 제대로 쓸 기회를 주지 않는다. 많은 사람이 기대하던 광학미채 장면은 원작의 투박하면서도 강렬했던 모습을 다시 보고 싶게 만든다. 메이저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담은 오프닝과 영화 중간에 잠시 나오는 딥 다이브 장면의 비주얼이 영화의 유일한 성과로 보인다.

 영화의 대부분이 아쉬운 반면, 원작의 오마주라는 측면에서는 대단히 충실하다. 영화의 유일한 수확인 오프닝 시퀀스는 원작의 오프닝 시퀀스를 고스란히 재현했다. 광학미채가 등장한 몇몇 장면은 원작의 쇼트와 유사한 구도로 촬영되었고, 도시의 마천루를 배경으로 물 위에서 격투를 벌이는 장면은 (액션은 구리지만) 원작과 거의 동일하게 그려진다. 건물 사이로 날아가는 비행기의 모습을 담은 쇼트나 음악에서 짧게 느껴지는 일본 전통음악 풍의 보컬은 원작의 분위기를 따라가려는 어떤 시도처럼 보인다(영화 엔딩 크레딧의 음악은 원작 오프닝의 음악을 그대로 사용한다). 왜 이런 방식을 취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원작 캐릭터들의 작은 포인트를 9과의 다른 캐릭터에게 돌리는 방식도 종종 등장한다. 가령 의체를사용하지 않는 토구사는 원작에서 리볼버를 사용했는데, 이번에는 아라마키 부장이 리볼버를 사용한다. 음주 후 알코올 해독을 위해 기계 간을 이용한다는 원작 속 바토의 대사는 9과 팀원인 사이토의 입에서 나온다. 이런 디테일을 왜 다른 캐릭터에게 넘겼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방식의 오마주가 영화 곳곳에 숨어있다. 루퍼트 샌더스와 영화의 제작진이 원작의 광팬인 것을 증명하려는 몸부림일까? 


 결과적으로 <공각기동대: 고스트 인 더 쉘>은 고스트 없는 껍데기에 불과하게 되어버렸다. 메이저의 몸에서 고스트를 죽이고 무기로 사용하려던 한카 로보틱스의 커터(피터 페르난도)는루퍼트 샌더스와 제작사의 모습을 그대로 반영한 캐릭터가 아닐까? 원작의 겉모습을 가져와 주제를 발전시키거나 새로운 화두를 던지기는커녕, 뻔하고 반복적이며 지루한 이야기로 속을 채웠다. 원작의 고스트를 제거하고 할리우드식 텅 빈 각본을 집어넣은 이번 리메이크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고스트가 죽었다는 것을 증명하려는 시도처럼 보일 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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