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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Apr 03. 2017

고전의 교훈은 영원하다

오즈 야스지로의 걸작 <동경이야기>

일본의 거장 중 한 명인 오즈 야스지로의 [동경이야기]. 부산국제영화제와 영화의 전당, 영화 평론가와 기자들이 모여 작성한 ‘아시아 영화 100’리스트에서 당당하게 꼭대기에 이름을 올린 작품이다.(참고로 감독 순위 100 역시 오즈 야스지로가 1위를 차지했다) 같은 리스트에서 높은 순위를 차지한 다른 작품들(김기영의 [하녀], 구로사와 아키라의 [라쇼몽], 에드워드 양의 [고령가 살인사건] 등)에 비해서 [동경이야기]의 스토리는 잔잔하다. 사실 이렇다 할 큰 사건도 없고, 극적인 액션이나 감정의 고조도 없으며, 인물간의 대립도 없다. 단지 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의 가족상을 지극히 관찰적으로 보여줄 뿐이다.

여기엔 오즈 야스지로 감독만의 독특한 촬영방법이 힘을 보탰다. ‘다다미 쇼트’라고 불리는 일련의 장면들은, 카메라의 높이를 다다미 위에 앉은 성인의 눈높이 정도로 맞춰 촬영하는 방식이다. 또한 인물의 대화 장면을 180도 행동축을 기준으로 약간 사선으로 잡아 인물의 시선이 상대를 향하고 있음을 알려주는 일반적인 방법 대신, 시선이 거의 카메라로 향해 관객에게 말하는 것처럼 보이도록 만든다. 가끔씩은 180도 축의 원칙을 무시하고 대화하는 두 인물이 같은 위치에서 구성적 동일성을 보이도록 촬영하기도 한다. 이렇게 찍은 영상은 관객들이 등장인물들과 함께 다다미에 앉아 이야기를 하고 있는 듯 한 착각에 빠지게 만든다. 더 나아가 관객들이 대화의 주체가 된 느낌까지 들게 만든다. 가족에 대한 성찰적인 시선이 들어가 있다는 평가는 바로 이런 카메라의 위치에서 비롯된다.


동경에 살고 있는 장남과 둘째인 딸은 동경에 자식들을 만나러 온 어버지(류 치슈)와 어머니(히가시야마 치에코)를 반기는 듯 하지만 뒤로는 굉장히 귀찮아한다.(특히 딸의 표정들이 압권이다) 부모님보다 자신의 일이 먼저이고, 나중엔 아타미의 온천으로 부모님을 보낸다. 셋째인 아들 쇼지와 결혼했었지만 전쟁 중에 사별한 며느리 노리코(하라 세츠코)만이 부모님을 극진히 모신다. 오사카로 돌아간 어머니가 쓰러지고, 넷째 아들을 뺀 가족들이 모두 모인데서 임종을 맞이한 뒤에서야 동경의 가족들은 후회하는 모습을 보인다.(아니, 사실 후회인지 아닌지 잘 모르겠다. 오히려 ‘짐을 덜었다’는 냉소적인 느낌까지 난다.) 아버지의 곁에서 끝까지 남아 있는 건 며느리 노리코 뿐이다. 눈치 보지 말고 좋은 사람 만나 재혼하라며 아내의 유품을 노리코에게 건내 주는 아버지의 모습에서, 혈연도 아니고 이젠 남남에 가까운 사이지만 가장 가족적인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결국 [동경이야기]가 주는 고전적 교훈은 단순하다. ‘살아계실 때 잘하자. 효도하자.’ 오즈 야스지로 감독은 이 간단한 교훈을 극도의 형식미로 보여준다. 관객들에게 관객 자신들의 모습을 거울처럼 보여주면서, 반성과 성찰을 이끌어낸다. ‘고전’이라함은 담고 있는 주제의 보편성과 전달방식을 통해 정해진다. [동경이야기]는 완벽한 고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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