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을 완전수라고 한다. 안정감을 주는 숫자이면서 넘치지 않은 숫자. 영화의 시나리오에서도 3막 구성은 중요한 작법으로 가르치고 있다. 영화를 시작하고 설정을 드러내는 도입부인 1막, 이야기를 전개시켜나가는 2막, 이야기를 매듭짓는 3막. 수많은 영화가 이러한 구성을 따르고 있고, 영화 작법의 기초로 알려져 있다. 이를 3편의 영화로 늘린 것이 영화의 트릴로지, 즉 3부작 구성이다. 워쇼스키 자매의 <매트릭스> 트릴로지나 크리스토퍼 놀란의 <다크 나이트> 트릴로지가 이의 좋은 예시가 된다. 하지만 트릴로지라는 개념이 3막 구조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크쥐시토프 키에슬로프스키의 <세 가지 색> 3부작은 자유, 평등, 박애라는 개념을 세 편의 영화로 묶어 완성시켰다. 구스 반 산트의 <엘리펀트>, <제리>, <라스트 데이즈>를 묶어서 데쓰 트릴로지라고 부르거나, 라스 폰 트리에의 <안티크라이스트>, <멜랑콜리아>, <님포매니악>을 묶어 우울 삼부작으로 부르는 것처럼 어느 감독의 필모그래피 속 비슷한 결의 작품을 트릴로지로 묶기도 한다. MCU나 <엑스맨> 같은 프랜차이즈 블록버스터에서는 거대한 세계관 속에 여러 편의 트릴로지를 포함시키기도 한다. <황금 나침반>이나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처럼 흥행 부진으로 후속 편이 이어지지 않은 경우도 있고, <트랜스포머>처럼 흥행이 되어 트릴로지를 넘은 후속편들이 쏟아지는 경우도 있다. 이번 글에서는 3편으로 완전히 완결된 트릴로지 5편을 골라보았다. 순서는 마지막 작품이 공개된 연도순으로 정리했다.
Choice 1. <이블 데드> 트릴로지 (1981, 1987, 1992)
감독: 샘 레이미
출연: 브루스 캠벨
이제는 <스파이더맨>(2002~2007) 트릴로지로 더욱 유명해진 감독이지만, 샘 레이미가 처음 명성을 얻은 것은 1981년 <이블 데드>를 통해서였다. 35만 달러라는 초저예산으로 완성된 <이블 데드>는 컬트적인 인기를 누리면서 장르영화 팬들의 지지를 얻었다. 악령이 숲 속을 누비는 장면을 찍기 위해 카메라를 휠체어 위에 올려놓고 촬영하는 등 어렵게 찍은 작품이지만, 그렇기에 더욱 장르적인 맛이 살아나는 영화가 되었다. 1987년에 제작된 <이블 데드 2>는 사실상 리메이크에 가까운 작품이었다. 같은 플롯과 스토리라인, 애쉬라는 캐릭터를 가지고 만들어진 속편은 업그레이드된 전편의 모습이었다. 특수효과는 좀 더 매끄러워졌고, 코미디 요소가 강화된 속편은 조금 더 즐거운 팝콘 무비로 재탄생되었다. 1편이 강력한 공포를 선사하는 호러 장르였다면 2편은 스플래터 코미디에 가깝다. 2편의 마지막에서 포탈을 타고 다른 곳으로 날아간 애쉬의 이야기를 그린 3편은 작정하고 만든 코미디 영화에 가깝다. <암흑의 군단>이라는 부제를 달고 개봉한 3편은 중세시대로 떨어진 애쉬가 실수로 불러낸 암흑의 군단과 맞서 싸운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애쉬와 함께 중세에 떨어진 전기톱과 산탄총(썬더스틱!)으로 적을 물리치는 모습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호러보다는 호러 요소가 가미된 액션 코미디 영화이고, 전편들 보다는 아쉬운 완성도의 영화이지만 즐기기엔 충분한 영화이다.
Chocie 2. <반지의 제왕> 트릴로지 (2001, 2002, 2003)
감독: 피터 잭슨
출연: 일라이저 우드, 비고 모텐슨, 올랜도 블룸, 이안 맥켈런, 앤디 서키스, 숀 애스틴
총제작비가 2억 불에 달하고, 촬영 기간도 1년에 가까운 대작 중의 대작이다. <고무인간의 최후>(1987)나 <데드 얼라이브>(1992) 같은 B급 스플래터 코미디를 만들던 피터 잭슨이 <프라이트너>(1996)로 할리우드에 진출한 이후 만든 첫 블록버스터 작품이다. 영화화가 불가능하다고 여겨진 J. R. R. 톨킨의 원작을 완벽에 가깝게 스크린으로 옮긴 <반지의 제왕> 트릴로지는 하나의 신드롬이었다. 일라이저 우드, 비고 모텐슨, 올랜도 블룸 등의 배우가 스타가 되었고, 골룸이라는 희대의 캐릭터는 모션캡쳐라는 신기술을 선보였다. <두 개의 탑>의 하이라이트인 헬름 협곡 전투와 같은 장면은 CG와 아날로그 특수효과의 완벽한 결합이었다. 거대한 스케일만큼 긴 러닝타임도 <반지의 제왕>의 화젯거리 중 하나이다. 개봉 버전부터 편당 세 시간에 육박하는 러닝타임을 자랑하고, 확장판의 러닝타임을 모두 합하면 12시간에 가깝다. 톨킨이 그려낸 거대한 세계관을 담아내기엔 지금과 같은 러닝타임이 필수적이었을 것이다. 거대한 3막 구성에 가까운 트릴로지가 각각 한 편으로써의 완성도를 갖추고 있기에 가능한 트릴로지가 아니었을까 싶다.
Choice 3. 복수 3부작 (2002, 2003, 2005)
감독: 박찬욱
출연: 송강호, 배두나, 신하균(복수는 나의 것)/최민식, 유지태, 강혜정(올드보이)/이영애(친절한 금자씨)
박찬욱 감독의 복수 3부작은 2000년대 초반 한국 영화 르네상스의 가장 중요한 성과로 손꼽힌다. 특히 <올드보이>는 세계 유수의 영화제에 박찬욱이라는 이름뿐만 아니라 한국 영화라는 이름 자체를 각인시킨 사건이었다. 박찬욱의 필모그래피에서 가장 차갑다고 할 수 있는 <복수는 나의 것>은 계급과 노동 문제부터 가난과 장애까지 폭넓은 소재를 담아냈다. 3부작 중 가장 냉철하고 날카롭게 사회의 폐부를 공격한다. 사회적 약자이자 소수자인 이들은 복수의 대상으로 왜 서로를 지목하는지, 서로를 겨냥하게 되는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올드보이>는 복수라는 테마에 가장 충실한 작품이 아닌가 싶다. 복수의 방식과 사랑이라는 대주제는 마치 롤러코스터처럼 빠르게 감정의 고저를 오간다. 장도리 액션이나 미로처럼 연출된 과거와 현재의 오대수가 교차하는 장면 등 과감한 연출이 돋보인다. <친절한 금자씨>는 박찬욱 필모그래피에서 터닝포인트를 이룬다. 그의 영화에서 여성 캐릭터가 전면에 등장한 첫 영화이면서, 교육열, 여성 등 그간 다루지 않았던 소재가 등장한다. 한국영화사에서 손꼽히는 강렬한 캐릭터 금자 이후 박찬욱의 영화는 <싸이보그지만 괜찮아>(2006)의 영군(임수정), <박쥐>(2009)의 태주(김옥빈), <스토커>(2012)의 인디아(미아 바시코브시카), <아가씨>(2016)의 히데코(김민희)와 숙희(김태리) 등의 여성 캐릭터가 극을 이끌었다. 박찬욱이라는 감독이 작가로 발돋움하는 과정이 복수 3부작 안에 담겨있달까? 계급론을 비롯한 사회 전반에 대한 비판의식과 사랑이라는 테마, 여성 캐릭터의 등장과 약진이라는 박찬욱의 필모그래피가 세 편의 영화에 압축되어 있다.
Choice 4. <토이 스토리> 트릴로지 (1995, 1999,2010)
감독: 존 라세터(1, 2편), 리 언크리치(3편)
출연: 톰 행크스, 팀 알렌
1995년에 개봉한 <토이 스토리>는 하나의 혁명이었다. 컴퓨터 그래픽으로 완성된 첫 3D 애니메이션이었고, 그 매끄러움에 모든 관객들이 감탄했었다. 지금의 픽사 스튜디오가 있게 만든 작품이자, 드림웍스, 일루미네이션, 블루스카이 등의 스튜디오가 등장할 수 있는 발판이 <토이 스토리>이다. 거기에 장난감이 살아 움직인다는 설정은 세대와 장소를 막론하고 즐길 수 있는 소재였다. 사람이 아닌 소재를 매개체로 사람의 감정을 담아낸 픽사의 능력이 첫 선을 보인 작품이다. 우디(톰 행크스)와 버즈(팀 알렌)의 우정은 물론, 티렉스, 미스터 포테이토 헤드, 슬링키 도그 등의 개성 넘치는 캐릭터의 모습을 모르는 영화팬이 있을까? 나는 아직도 이 작품이 나와 같은 나이라는 게 믿기지 않는다. 2편으로부터 11년이 지나 개봉한 3편은 그 시간 자체를 작품에 녹여낸다. 시간이 지나 장난감과 멀어질 나이인 대학생이 된 앤디의 모습은 1, 2편을 보면서 자란 아이들이 성인이 되는 시점이었다. 그 시점에서 벌어지는 장난감들의 이야기는 1, 2편이 키운 아이들과 그런 과정을 거치며 자란 모든 사람에게 유효타를 날린다. 앤디가 이웃집 소녀에게 장난감을 물려주는 장면은 할리우드 애니메이션 역사상 가장 감동적이며, <토이 스토리> 트릴로지가 고전의 반열에 오를 수 있고 픽사 스튜디오가 작가의 위치에 오를 수 있는 증거가 되었다. 애니메이션 사상 처음으로 월드와이드 10억 불 돌파라는 기록은 덤이다.
Choice 5. 비포 트릴로지 (1995, 2004, 2013)
감독: 리처드 링클레이터
출연: 줄리 델피, 에단 호크
리처드 링클레이터는 언제나 시간이라는 테마를 스크린에 옮겨오려 했던 감독이다. 그가 18년에 세월 동안 만들어낸 비포 트릴로지는 배우의 외모처럼 표면적으로 보이는 시간뿐만 아니라 만남, 재회, 황혼이라는 각 테마를 시간의 흐름에 따라 영화에 녹여낸다. 로맨스 영화 역사상 가장 로맨틱한 영화로 꼽아도 손색없는 <비포 선라이즈>는 만남의 두근거림과 즐거움, 쾌감을 관객에게 고스란히 전달해준다. 비엔나의 거리를 걸으며 밤새 삶과 죽음, 음악과 문학, 나와 상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제시(에단 호크)와 셀린(줄리 델피)의 모습은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로맨스의 모습이다. 다시 만나기를 약속하고 해어지는 것으로 마무리되는 영화 이후 둘은 <비포 선셋>에서 재회한다. 약속했던 시간과 장소는 아니지만, 전편의 이야기를 책으로 퍼내 성공한 작가가 된 제시와 파리에서 재회한 셀린은 카페에서 대화를 이어나간다. 긴 연애의 과정 중 권태의 모습이 아닐까 하는 둘의 대화가 이어지고, 비엔나에서의 깜짝 여행을 제안했던 제시의 모습에 화답하는 듯 셀린은 제시에게 노래를 불러준다. 열린 결말로 마무리되는 <비포 선셋> 이후 <비포 미드나잇>에서 제시와 셀린은 부부로 함께한다. 청년부터 중년까지 긴 시간을 세 개의 영화로 분절시켜 담아낸 비포 트릴로지는 사랑이라는 테마를 시간과 함께 담아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