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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Apr 29. 2017

이 정도면 매력적인 실패작

우주 최고의 루저 집단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 2>

*스포일러 주의


 데이비드 샌드버그라는 감독이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완성한 <쿵퓨리>라는제목의 30분짜리 단편영화가 있다. 쿵푸, 나치 독일, 공룡, 데이비드 핫셀호프, <마이애미 바이스>, 발키리, 일본 애니메이션, <트론>,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해커, 80년대 신스팝 등 온갖 하위문화가 뒤섞여 탄생한 괴작이다. 그야말로 B급 정신으로 만들어진 작품이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2>를 보면서 <쿵퓨리>가 바로 떠올랐다. 전작에서부터 이어지는 ‘Awesome Mix’ 올드팝 삽입곡, 팩맨과 같은 8비트 비디오 게임, 데이비드 핫셀호프 등 당대의 스타를 이용한 대사, 온갖 카메오와 출연배우의 전작을 오마주한 장면 등 온갖 하위문화와 대중문화가 136분의 러닝타임 동안 펼쳐진다. MCU 세계관 전반에 대한 떡밥은 물론이고, 스타로드(크리스 프랫), 로켓(브래들리 쿠퍼), 베이비 그루트(빈 디젤), 가모라(조 샐디나), 드랙스(데이브 바티스타), 욘두(마이클 루커) 등의 캐릭터가 지닌 매력 또한 영화 속에 여전히 살아있다. 다만 30분의 짧은 러닝타임에 강한 임팩트를 남기는 <쿵퓨리>와는 달리 136분의 러닝타임을 온갖 취향으로 채우기엔 산만하다.

 산만함의 근원은 어디일까? 2014년에 개봉한 전작은 영화 초반 로난(리 페이스)이라는 빌런을 명확하게 설정했다. 로난을 무찌르는 것이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의 목표가 되었고, 영화는 122분의 러닝타임 동안 목표를 향해 돌진한다. 이번 영화와 마찬가지로 전편에도 올드팝과 <풋루즈> 등 온갖 대중문화의 요소가 쏟아져 나온다. 영화의 하이라이트를 장식하는 댄스 배틀처럼 분명 과도하게 나가는 부분이 있고 종종 산만해지기도 한다. 하지만 캐릭터의 매력과 목표가 확실한 이야기는 이런 과도함을 유머 코드로 승화한다. 이번 속편이 실패한 지점은 여기에 기인한다. 136분의 짧지 않은 러닝타임을 자랑하지만, 상영시간이 90분 정도가 지나서야 영화의 빌런이 등장한다. 그전까지는 마치 각개전투를 하듯 각 캐릭터의 이야기가 각자 진행된다. 드디어 만난 스타로드의 아버지 에고(커트 러셀)와 스타로드의 이야기, 타노스(조쉬 브롤린)로 얽힌 가모라와 네뷸라(카렌 길런)의 이야기, 드랙스와 맨티스(폼 클레멘티에프) 사이의 묘한 기류, 서로의 처지에 공감하며 친분을 쌓는 로켓과 욘두의 이야기 등이 옴니버스처럼 등장한다. 때문에 베이비 그루트의 댄스와 함께 흥겹게 시작한 영화는 소버린 행성 군단과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의 전투 이후 급격히 리듬을 잃어버린다. 빌런이 부재하기에 목적까지 부재하는 캐릭터들의 각개전투는 그저 산만하다. 그 사이를 채우려는 대중문화 코드를 활용한 유머들은 전편의 성공 공식을 고스란히 재탕하려는 수로만 읽힌다. 골 빈 저질스러운 대사를 쏟아내는드랙스의 모습은 실망 그 자체이다.

 스타로드와 에고의 관계뿐만 아니라 영화 전체를 아우르는 테마는 가족이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는 친구, 동료에서 가족이 되었다. 영화 내내 강조되는 스타로드의 파더 콤플렉스, 스타로드와 욘두의 유사부자관계, 가모라와 네뷸라의 자매애, 마치 아기를 키우듯 베이비 그루트를 대하는 캐릭터들의 모습 등에서 이런 테마가 더욱 강조된다. 러닝타임이 90분 가까이 지나서야 빌런으로 변신하는 에고의 모습은 이러한 테마가 만들어낸 악역에 가깝다. 스타로드의 아버지와 관련된 이야기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시리즈에서 언젠가는 다뤄져야 할 테마였지만, 이번 영화에서는 그 테마에 함몰되어 이야기를 풀어내는데 급급해진다. 영화 초반에 등장하는 소버린 행성의 대사제가 중요한 빌런으로 등장하는 것 같지만, 결과적으로 그는 영화의 스토리가 시작되는 방아쇠 역할만을 할 뿐이다. 결국극의 중심을 잡아가는 것은 스타로드와 에고의 이야기인데, 다른 캐릭터의 이야기를 모두 아우르기엔 너무 많은 러닝타임과 대사가 필요했다. 때문에 가족이라는 테마가 대부분 대사를 통해 드러나게 되어 아쉬움을 준다. 

 그러나 여전히 살아 날뛰는 캐릭터의 매력과 끝없는 볼거리는 IMAX와 같은 값비싼 특별관 표 값이 아깝지 않다고 느껴지게 한다. 예고편에서부터 많은 예비 관객을 만들어낸 베이비 그루트의 활약은 영화 전체를 아우르는 신 스틸러의 역할을 만족스럽게 수행한다. 네뷸라의 캐릭터는 조금 더 설명이 더해지면서 풍부해진다. 스타로드, 가모라, 로캣의 캐릭터는 전작의 성격이 유지되면서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지는 않지만, 여전히 전작에서의 매력이 영화 속에서 느껴진다. 분량이 대폭 늘어난 욘두는 이번 영화의 진주인공이나 다름없다. 스타로드의 유사아버지로서 욘두의 모습과 최후가 보여주는 감동은 전작의 ‘WeAre Groot’ 못지않다. 짧게 등장하고 후속편의 출연까지 예고한 스타카르(실버스타 스탤론)은 앞으로의 활약이 기대된다. 행성 그 자체가 하나의 캐릭터인 에고는 영화 속에서 어떻게 묘사될지 가장 궁금한 캐릭터였다. 결과적으로 그 기원과 설정이 만족스럽게 등장했다. 사실 행성이 통째로 캐릭터라는 설정을 영화로 풀어낸다는 것 자체가 영화의 가장 큰 도전이 아니었을까? 소버린 행성의 무인전투기 군단과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의 전투는 <스타트렉: 비욘드>에서 Run-DMC의 ‘Sabotage’가 흘러나오던 순간을 연상시킨다. 로켓과 욘두, 베이비 그루트가 행성 에고로 워프 하는 순간은 그야말로 ‘약 빤’ 비주얼을 보여준다. 라바저 우주선을 탈출하는 욘두와 로켓의 액션은 극장을 찾은 관객이 처음 보는 신선한 액션이다. 후반부 스타로드와 에고의 싸움은 <맨 오브 스틸>의 슈퍼맨과 조드 장군의 대결을 연상시키지만 눈이 즐거운 것은 어쩔 수 없다. 다양한 모습의 행성과 우주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스크린에서 영화를 볼 가치는 충분하다. 욘두의 라바저 장례식 장면은 최근 MCU 영화 중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 아닐까?


 제임스 건 감독은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시리즈가 MCU의 세계관과는 거리가 있다고 여러 차례 말해왔다. 이를 증명하듯, 5개의 쿠키영상엔 앞으로 개봉할 <토르: 라그나로크>나 <어벤저스: 인피니티 워>와 연관된 내용은 없다. 그러나 어벤저스와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가 어떻게 만나게 되는지를 알려주는 듯한 떡밥, 하워드 덕, 주시자 등 마블 코믹스의 캐릭터의 깜짝 등장 등은 마블 유니버스의 팬에게 환호성을 지를 수 있는 시간을 준다. 언제나 반가운 스탠 리의 카메오는 물론, 아담 워록의 등장을 예고한 쿠키영상은 그래도 다음 편을 기대하게 만든다. 

 첫 문단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2>는 온갖 대중문화의 집약체이다. 소버린 군단의 무인 전투기를 운전하는 기계는 8비트 비디오 게임의 사운드를 들려주고, 스타로드는 자신의 아버지를 데이비드 핫셀호프에 비유한다(심지어 카메오 출연을 하기도 한다) 갑작스러운 팩맨의 등장은 놀랍기도 하다. Looking Glass의 노래 ‘Brandy’의 가사를 읊으며 스타로드와 친해지려는 아버지 에고의 모습은 영화의 배경이 우주라는 것을 잠시 잊게 만든다. 에고를 연기한 커트 러셀의 걸작 <더 씽>의 장면을 오마주한 것으로 보이는 장면도 등장한다. 히치콕의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나 <메리 포핀스>를 패러디한 장면은 고전영화 팬에게 바치는 선물이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시리즈의 가장 특별한 지점은, MCU에 속한 영화 중 현실과 가장 동떨어진 세계의 이야기이지만 가장 현실과 연관되어 있는 영화라는 점이다. <데드풀>만큼이나 빼곡히 들어서있는 레퍼런스들은 블록버스터가 줄 수 있는 동시대적 유희를 마음껏 제공한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 2>는 분명 전작에 비해 아쉽다. 각본은 <닥터 스트레인지>만큼 실망스럽고, 몇몇 유머 코드는 저질스러워졌다(드랙스). 영화가 가지고 있던 기대치에 비하면 실패라는 말이 붙어도 무리는 없어 보인다. 그럼에도 이 영화는 매력적이다. 이영화의 캐릭터가, 동시대적인 코드가 지닌 매력은 이 영화가 실패작임을 알면서도 다시 한번 보고 싶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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