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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May 01. 2017

연대는 즐겁다

게이/레즈비언과 광부들의 연대를 그린 <런던 프라이드>

 마가렛 대처의 정책 때문에 광부 파업이 일어난 지 1년이 가까워진 1984년 영국. 아직 커밍아웃하지 않은 게이인 조(조지 맥케이)는 런던에서 열린 동성애자 행진에 참여한다. 그곳에서 만난 게이 마크(벤 슈내처)는 신문에서 파업 광부들이 경찰에게 폭력적으로 진압당하는 사진을 보고 분노한다. 게이와 레즈비언이 모이는 아지트 격인 게빈(앤드류 스캇)의 서점에서 마크는 LGSM(Lesbian& Gay Support The Miners)를 창설하고 본격적으로 모금활동을 하려고 한다. 그러나 그들이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모금액을 받아주는 광부 단체가 없었다. 그러던 와중 웨일스의 한 지역에서 그들의 후원을 수락하고, 마을에서 그들을 초대하러 온 다이(패디 콘시딘)의 안내를 받아 마을로 향한다. 위원장인 헤피나(이멜다 스턴튼)과 총무인 클리프(빌 나이) 등은 그들을 환대하지만, 동성애자를 보는 마을 사람들의 시선은 냉랭하다. 그러나 서로가 손을 맞잡을수록 강해진다는 믿음을 얻고 나서 그들은 연대하기 시작한다.

 <런던프라이드>는 1984년 영국에서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연대란 무엇인가, 연대는 왜 필요한 것인가라는 질문의 답이 영화 속에서 제시된다. 무겁지 않고 오히려 꽤나 흥겨운 톤으로 전개되는 이야기는 연대는 즐겁다는 것을 일깨워주기 위한 영화로도 보이게 한다. 로큰롤과 디스코로 가득한 OST는 이런 분위기를 반영한다. 춤과 음악, 무대와 클럽을 오가며 친분을 다지는 LGSM과 광부들의 모습은 그 즐거움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그 즐거움은 고스란히 연대의 연료가 되고 추진력이 된다. 즐거움이 모두의 공통분모이듯 연대를 위한 용기와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에 대한 폭력에 맞서는 저항 역시 그들의 공통점이다. 마크가 폭력적으로 진압당하는 광산 노동자들의 사진을 보고 분노한 이유는 수많은 성소수자들이 그렇게 탄압받아왔기 때문이다. 그러한 폭력에 대한 용기와 연대는 음악과 춤이 주는 즐거움만큼이나 모두에게 당연한 일이어야 한다. 사회적 탄압/폭력의 세세한 이유는 다를지라도 그것이 작용하는 방식은 동일하다. LGSM과 광부들을 그것을 나누며 어깨를 맞대고, 손을 맞잡고, 거리로 나가 행진한다.

 지난 JTBC 대선 토론에서 홍준표 대선후보는 공개적으로 “동성애에 반대한다”라고 발언했고, 문재인 후보는 (그것이 실수였든 아니든) 그것에 동조하는 대답을 내놓았다. 후에 정정하기는 했지만, 생중계되던 토론을 지켜보던 사람들의 반응은 경악에 가까웠고, 반대로 홍준표처럼 혐오발언을 쏟아내는 사람도 있었다. 그들은 성소수자, 노동, 장애인, 노인, 청소년, 여성 등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의 인권에 순서를 정해놓고 이미 존재하는 사람을 두고 지지와 찬반을 이야기한다. <런던프라이드>는 그런 이들에게 우리는 왜 연대해야 하는지를 일갈한다. 런던 프라이드 행진에서 파업 광부와 LGSM이 선두에 서서 행진하는 모습은 손을 맞잡은 상징이 그려진 현수막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정석적인 연출은 영화를 다소 평이하게 만들지만,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존재함을 이야기하는 영화의 힘은 광장에서의 기억을 떠올리게 만든다. 촛불의 광장에 모였던 모두가 평등했음을, 그래야만 해야 함을 대선 TV토론을 지켜본 주말 <런던 프라이드>를 보며 다시 되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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