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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May 07. 2017

선언에 대한 선언, 선언이 되어버린 영화

전주국제영화제 관람작 <매니페스토>

 케이트 블란쳇이 뮤지션, 노숙자, 과학자, 노동자, 주부, 아나운서, 기상캐스터, 교사 등의 모습으로 공산당 선언, 플럭서스, 다다이즘, 도그마 95, 팝아트 등에 대한 선언을 장례사, 식전 기도, 엘리베이터 안내, 프레젠테이션, 수업 등의 형태로 읊는다. 원래 미술관의 멀티채널 영상 설치 작업이었던 <매니페스토>는 편집을 거쳐 러닝타임 99분의 극장용 영화로 재탄생되었다. 선언이라는 의미의 제목처럼 현대 예술/미학에 대한 중요한 예술적 선언들을 다양한 모습의 사람이 다시 한번 선언한다. 선언에 대한 선언, 선언 그 자체를 예술로써 다루는 영화는 반예술적 기조의 선언들을 케이트 블란쳇의 연기를 통해 시각화한다. 

 상당한 분량의 사전 지식이 필요한 영화이다. 영화 속에서 언급되는 선언에 대한 맥락과 내용을 파악하려면 두세 학기 정도의 수업이 필요할 지경이다. 영화 속에 언급되는 매니페스토 중 공부했었던 내용은 많지 않았다. 그럼에도 노숙자에 입으로 발화되는 공산당 선언에 대한 대사, 장례식에서 장례사로 등장하는 다다 선언, 초등학교 수업으로 등장하는 도그마 95 선언 등의 장면은 흥미로웠다. 각 매니페스토의 성격과 그것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영화 속에서 그것을 발화하는 사람과 상황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관찰할 수 있었달까. 사전 지식이 얼마나 많은지에 따라 감상이 완전히 달라질 수 있는 영화이다.


 영화의 마지막은 케이트 블란쳇이 연기한 인물들이 한 번에 스크린에 등장해 각각의 매니페스토를 읊는 것으로 끝난다. 매니페스토를 읊는 인물들의 목소리는 마치 교향곡처럼 구성된다. 각기 다른 음조로 매니페스토를 읊으며 그것이 음악처럼 섞이는 마지막은 그 모든 것이 뒤섞여 현재가 되었다고 말하는 것 같다. 영화에 등장하는 온갖 매니페스토들에 대한 공부를 하고 다시 이 영화를 본다면 감상이 얼마나 달라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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