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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May 09. 2017

소노 시온을 계속 챙겨봐야 할 이유

전주국제영화제 상영작 <안티포르노>

 소노 시온의 최근작들은 어딘가 실망스러웠다. 3.11 도호쿠 대지진을 다룬 2011년 작품 <두더지>는 걸작이었지만 그에 이은 <희망의 나라>는 같은 감독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정반대의 태도를 지닌 작품이었다. 소노 시온의 <킬빌> 같았던 2013년 작품 <지옥이 뭐가 나빠>는 정말 즐거운 오락영화였지만 그와 비슷한 결을 지닌 힙합 뮤지컬 영화 <도쿄 트라이브>는 이런저런 면에서 아쉬움을 남겼다. 드라마에서 극장판으로 이어진 <모두가 초능력자>는 민망한 설정만큼이나 민망한 영화였고, 남성용 성인용품의 PPL로 전락해 버렸다. <신주쿠 스완>을 보면서는 그와 같은 부류의 감독으로 손꼽히는 미이케 다카시 감독처럼 완전히 고용 감독이 되어 다작은 하지만 예전과 같은 개성을 발휘하지 못하는 퇴물이 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했다. <러브 앤 피스>나 <소곤소곤 별>처럼 눈길이 가는 영화는 있었지만, <자살 클럽>이나 <러브 익스포저>처럼 모두를 놀라게 할 영화는 나오지 않았다. 그러던 와중 닛카스의 로망포르노 리부트 프로젝트의 소식이 들려왔고, 소노 시온이 참여한다는 이야기를 접했다. 10분에 한 번씩 섹스신이 포함된다면 모든 창작의 자유를 감독에게 넘겨주는 로망포르노. 그가 맡은 영화의 제목이 <안티포르노>라는 것을 듣고 그의 신작을 기다리고 있었다.

 영화는 은행잎처럼 샛노란 방의 침대에서 쿄코(토미테 아미)가 깨어나는 것으로 시작한다. 쿄코의 1인극인 듯 그녀의 독백만으로 10에 가까운 러닝타임이 진행된다. 누군가 문을 두드리고 들어온다. 쿄코의 비서인 노리코(츠츠이 마리코)가 들어오고, 둘의 대화를 통해 쿄코가 소설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예술가임을 짐작할 수 있게 된다. 동시에 쿄코는 자신을 매춘부라 부르고, 노리코는 자신도 매춘부가 되고 싶다고 이야기한다. 쿄코는 종을 부리듯 노리코를 하대하고, 사진을 찍으러 온 사진기자와 편집자는 노리코의 피까지 착취하는 쿄코에 동조한다. 그러던 어느 순간 컷 소리가 들리고 여성으로 가득했던 영화에 갑자기 남자로만 가득한 촬영팀이 등장한다. 쿄코의 방은 영화 세트장이었고, 신인배우인 그녀는 유명 배우인 노리코와 감독 등 스탭에게 “왜 이렇게 연기를 못하냐”며 모욕적인 말을 듣는다. 영화는 이렇게 액자 구성을 취하며 영화와 촬영장, 연극무대, 과거와 현재, 미래, 환상과 상상을 넘나 든다. 컷 소리가 들려오는 순간부터 복잡하게 뒤섞인 타임라인을 퍼즐처럼 맞추는 것은 의미가 없어진다. 포르노의 한 장면을 촬영하는 것 같았던 촬영 현장은 컷 사인 하나로 여성 배우를 포르노적으로 소비하는 촬영장의 모습을 비춘다. “이 시장에서 여성의 몸이 어떻게 소비되고 있는가를 고민하며 <안티포르노>를 만들었다”는 소노 시온의 말처럼 영화는 카메라를 정 반대 방향으로 돌리면서 본격적인 ‘안티’의 목소리를 낸다.

 <안티포르노>가 안티의 목소리를 내는 부분은 여성, 여성의 몸, 여성의 성을 포르노적으로 소비하는 영화를 비롯한 소설, 그림 등 모든 엔터테인먼트와 일본 사회 전반에 깔린 성의식이다. 여성을 개인이 아닌 대상으로 보는 시선, 여성이 스스로의 성적 욕구를 드러내면 창녀 소리를 듣게 되는 상황, 이러한 상황 속에서 여성이 여성을 착취하게 되는 모습, 이미 존재하는 것임에도 터부시 되는 청소년의 섹스, 그리고 청소년에 가정에서 보게 되는 성애, 여성이 성적 욕망을 드러내고 추구하지 못하게 교육하는 가정과 사회…… 일본 사회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도,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세계의 모든 곳에서 공감할 수 있는 성의식의 문제가 <안티포르노>의 주제이다. 소노 시온은 영화 속 영화와 컷 사인 이후의 쿄코와 노리코의 관계를 반전시키는 키치한 방법을 동원하고, 매춘부라는 칭호를 가져야 성적 욕구를 드러낼 수 있는 상황을 (그의 장기 중 하나인) 반복되는 대사를 통해 강조하며, 영화-현실-무대를 넘나드는 액자 구성으로 예술의 프레임 속에서 여성이 어떻게 착취당하는지 보여준다. 틀이 없는 영화의 형식은 포르노적 착취로 점철된 기형적인 예술/예능 현장을 드러내면서도 쿄코의 욕망을 드러내는 해방의 창구로 작용한다. 프레임에 프레임을 덧씌우는 액자 구성은 <안티포르노>의 주요한 형식이 된다. 로망포르노의 규칙에 따라 등장해야 할 섹스신은 21살의 쿄코가 살면서 보아온/경험해온 섹스의 모습과 형태를 드러내는 데 사용된다. 섹스신의 규칙을 이런 방식으로 운용하는 연출은 소노 시온만의 키치함을 더한다.

 이런 형식과 주제를 놓고 본다면, <안티포르노>는 그의 2015년 작품 <리얼 술래잡기>의 확장판으로 느껴진다. 수학여행을 가던 중 갑자기 버스와 함께 친구들이 두 동강 나버린 여고생과 계속해서 달려야 하는 마라토너, 결혼을 앞두고 도망치려는 신부 등이  등장한다. 이 캐릭터들은 모습은 계속 바뀌지만 자아는 그대로인 주인공이다. 영화의 마지막이 되면 어떤 남자가 오락기에 달라붙어 게임을 하고 있고, 주인공이 달리던 세계는 남성의 오락기 속 세계라는 것이 드러난다. 아쉬운 완성도의 영화였던 <리얼 술래잡기>의 액자 구성은 <안티포르노>의 초석이 된다. 동시에 <길티 오브 로맨스>등의 영화에서 여성 캐릭터를 착취함과 동시에 능동적으로 욕망을 추구하는 캐릭터로 만들었던 소노 시온의 스타일이 가질 수 있는 어떤 변곡점을 보여준다. 물론 아무 이유 없는 ‘개빻은’ 판치라로 가득한 <모두가 초능력자> 같은 영화도 그의 필모그래피를 구성하고 있지만 말이다. 


 <안티포르노>가 보여준 소노 시온의 여전한 키치와 유머, 그리고 자신의 스타일을 과감한 형식과 영상으로 변용하는 모습은 그의 다음 영화를 기대하게 만든다. 그의 최근작을 보고 실망한 팬이라면 <안티포르노>를 보고 안심하게 될 것이다. 옴니버스 영화인 <메들리>에서 소노 시온이 연출한 ‘러브 오브 러브’와 <안티포르노>를 연이어 본다면 그의 영화가 어디로 나아가고 있는지 길이 보이지 않을까? 개성으로 중무장한 일본 인디 영화계의 감독 한 명이 또 퇴물 고용 감독의 길을 걷게 되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면, <안티포르노>는 아직 소노 시온의 영화를 챙겨보고 주목해야 될 이유로써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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