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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May 18. 2017

인물을 관찰하는 독창적인 시선

칠레의 민중시인 파블로 네루다의 이야기 담은 영화 <네루다>

*스포일러 포함


 영화는 정치인으로 가득한 방 안으로 네루다(루이스 그네코)가 들어가는 것으로 시작한다. 방에서는 정치인들이 와인과 주전부리를 곁들이고 담배연기를 뿜어내며 한창 대화를 나누고 있다. 네루다가 방에 들어서니, 정부를 비판했던 그에게 정치인들의 공세가 쏟아진다. 태연하게 바지 지퍼를 내리고 오줌을 누는 네루다, 그가 들어선 방은 화장실이었고, 그곳에 모인 정치인들의 모습은 얼핏 보기엔 연회장에 온 모습처럼 보인다. 이런 방식의 뒤집기는 <네루다>에서 중요한 수법으로 사용된다. 재클린 캐네디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 <재키>에서 인터뷰와 과거 회상, 그 밖에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 독특한 전기영화를 탄생시킨 파블로 라라인 감독은 <네루다>에서도 독창적인 방법을 통해 전기영화를 연출했다. 

 <네루다>의 주인공인 파블로 네루다는 칠레의 전설적인 시인이다. 민중시인으로 불리던 그는 1945년 상원의원에 당선되고 같은 해 칠레 공산당에 입당한다. 그가 공산주의자가 되겠다고 마음먹은 이유는 스페인 내전 당시 자신의 동료 시인을 비롯한 많은 사람이 희생당하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파시즘에 대한 저항의 수단으로 공산주의를 택했다고 볼 수도 있겠다. <네루다>는 파블로 네루다라는 시인의 이러한 실화를 적극적으로 이용한다. 영화 속에서 그는 돈을 통한 향락과 사치를 즐기기도 했고, 공산주의 사상 자체보다는 파시즘에 저항하기 위한 수단으로써 공산주의를 취한 것으로 묘사된다. 감독의 전작 <재키>는 인물을 통해 역사를 조명하기 보다 인물 자체의 다층적인 면을 주목하는 데 집중한 영화였다. <네루다> 역시 그러한 방식으로 네루다라는 인물을 조명한다. 『나는 고발한다』라는 제목으로 출간되기도 한 1948년의 의회 연설로 정부를 비판한 네루다는, 국회의원의 면책특권을 박탈당하고 국가원수 모독죄로 인해 쫓기게 된다. 영화는 네루다가 망명을 위해 떠나던 시점에서 시작한다. 

 여기서 주요하게 등장하는 인물이 네루다를 쫓는 경찰 오스카(가엘 가르시아 베르날)이다. 영화는 그의 내레이션으로 진행되며, 네루다의 망명길을 고스란히 따라가는 오스카의 행적은 (극 중 대사로도 등장하듯) 그를 쫓는다기보다 좇아간다는 표현이 맞는 것처럼 보인다. 네루다를 좇는 오스카의 모습은 어느 유령의 시선이 네루다를 따라다니는 것처럼 느껴진다. 오스카의 내레이션은 종종 그의 영혼이 유체이탈하여 네루다를 관찰하는 것처럼 등장한다. 영화가 3분의 2지점 정도에 다다랐을 때, 오스카는 우연히 네루다의 책 『모두의 노래』를 얻게 된다. 네루다의 아내와 나누는 대화를 통해 오스카는 네루다가 영웅이고 주인공인 이야기 속의 조연일 뿐임을 깨닫게 된다. 영화는 이 지점에서부터 파블로 네루다라는 실화 속 인물과 픽션 속의 인물로 묘사되는 오스카, 두 인물의 관계를 논픽션과 픽션의 관계로 설정하고 그 경계를 넘나 든다. 창녀의 아들이며 경찰청장의 사생아이고 하층민인 오스카는, 망명길에서 만난 모두는 물론 자신마저 포용하는 네루다의 앞에 무릎 꿇고 만다. 망명 중임에도 그의 시체를 수습하는 네루다의 모습은 민중시인으로써 그의 역할과 모습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영화의 화자를 픽션의 조연인 오스카로 설정한 연출은 논픽션의 주연인 네루다의 다층적인 모습을 효과적으로 관찰하고 전달한다.


 파블로 라라인 감독은 <재키>에 이어 <네루다>를 통해 실존 인물을 바라보는 독특한 시각을 보여주었다. 전기영화라는 틀을 지닌 영화이지만, 전형적인 틀, 가령 뻔한 현재-과거 회상의 액자식 구성이나 연대기적 전개 방식 대신 독특한 구성을 취하는 연출법은 인물에 대한 다층적이고 풍부한 시선을 가능케 한다. 실화와 역사, 인물을 바라보는 파블로 라라인의 독창적인 시선은 <네루다>에서도 특별하게 작용한다. 최근 국내에 개봉한 <일 포스티노> 속 파블로 네루다의 모습과 비교해 보는 것도 재미있는 감상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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