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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May 21. 2017

신선한 소재, 직설적인 메세지, 무난한 장르영화

*스포일러 포함


 사진작가인 크리스(다니엘 칼루야)는 여자 친구인 로즈(앨리슨 윌리암스)의 집으로 초대받는다. 크리스는 로즈의 집으로 가기 전 걱정거리가 하나 있는데, 그것은 바로 자신은 흑인이고 로즈는 백인이라는 것. 그런 걱정을 안고 로즈의 집으로 찾아간 크리스는 로즈의 부모님인 딘(브래드리 휘트포드)과 미시(캐서린 키너)를 만난다. 평범해 보이는 부유한 백인 가정의 모습으로 보이는 모습이지만, 저택에서 일하는 흑인 하인들의 행동이 어딘가 어색하다. 자신과 같은 흑인처럼 행동하지 않는 그들의 모습을 보고 크리스는 위화감을 느낀다. 그러던 중 로즈의 집안과 친한 백인들이 모이는 파티가 열리고, 그곳에서 백인들의 공동체가 공유하는 충격적인 비밀이 밝혀진다. 코미디언으로 활약하던 조던 필레 감독의 장편 데뷔작 <겟아웃>은, 스탠리 크레이머의 <초대받지 않은 손님>의 이야기에 하우스 호러부터 러브크래프트의 코스믹 호러를 연상시키는 장면까지 다양한 하위 장르를 뒤섞은 장르영화로 탄생했다. 또한 시놉시스에서 느껴지는 것처럼, 그리고 조던 필레 감독이 영화 이전에 해오면 코미디의 내용을 생각해보면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에 대한 맥락이 영화 속에 녹아들어있다. <겟아웃>은 이런 신선한 소재에 직설적인 메시지를 담은 무난한 완성도의 장르영화이다.


 <겟아웃>은 시작부터 노골적이다. 로즈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집으로 가던 둘은 사슴을 차로 치어 죽이게 되고, 경찰은 차를 운전하지도 않은 크리스에게 당연하다는 듯이 신분증을 요구한다. 그가 흑인이라는 이유로 당연하게, 그리고 불필요하게 신분증이 요구되는 상황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영화가 시작한다. 딘은 흑인들만이 하인인 저택의 모습을 의아하게 바라보는 크리스에게 그들의 과거사를 설명하며 “우리는 인종차별주의자가 아님”을 재차 이야기한다. 하긴 어느 포비아가 자신이 포비아라고 직접 고백할까? 영화는 인종차별의 다양한 상황과 대사를 호러라는 장르 영화의 틀 안에 녹여내며 전개된다. 크리스가 느낀 위화감의 원인이 미시의 최면과 관련 있음을 드러낸 영화는 더욱 노골적으로 변화해간다. 과거 노예제도 시절 노예를 경매에 붙이듯 크리스의 육체를 놓고 빙고를 가장한 경매를 벌이는 장면, 흑인들의 ‘유전자적으로’ 우월한 육체를 놓고 그 스테레오 타입으로만 흑인을 바라보는 시선 등은 영화의 주요한 전략인 ‘인종차별 호러’로써의 장치가 된다.

 흑인에게 최면을 걸어 노예로 부리는 듯한 상황에서, 뇌수술을 통해 마치 <존 말코비치 되기>처럼 나이 들고 부유한 백인들이 흑인의 건강하고 젊은 육체 안으로 들어간다는 설정으로 변화하는 지점은 나름의 반전으로 작용한다. 흑인을 인간으로 보는 대신 육체로, 껍데기로만 바라보는 시선이랄까? 사회적 맥락에서 대상화를 통한 인종혐오가 여실히 드러나는 장면이다. 그들은 흑인의 육체를 (성적인 면을 포함해) 다방면에서 찬양하지만, 그들의 인격을 생각하지는 않는다. 크리스의 육체를 낙찰받은 백인은 “왜 백인의 몸은 아니지?”라는 물음에 대답을 하지 못한다. 기저에 깔린 인종적 스테레오 타입에 대한 비판이 영화 속에서 이어진다. 마치 처녀의 피를 영생을 위한 연금술사의 돌로 여기는 다른 장르영화처럼, 흑인의 육체를 영생을 위한 수단으로만 바라본다. 그러나 이런 비판들은 인종문제를 다룬 다른 영화들처럼 통렬하거나 열성적인 비판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몇몇 대사를 통해 부유한 백인이 흑인의 몸을 얻는 것에는 단순히 영생의 꿈 이외에도 자아실현의 수단 등의 의미가 부여된다. 알고 보니 흑인들을 낚아오는 역할을 하고 있었던 로즈의 정체가 드러난 이후, 로즈 역시 최면에 걸린 것처럼 행동하는 몇몇 장면이 등장하기도 한다. 이러한 모습은 영화 속 백인에게 어떤 면죄부를 쥐어주려는 모습처럼 보이기도 한다.

 크리스의 친구 로드(릴 렐 호워리)는 납치당한 흑인들이 성노예로 팔려갔다고 반복해서 이야기한다. 흑인이 육체적으로, 더군다나 성적으로 잘한다는 스테레오 타입을 흑인 캐릭터가 나서서 강조한다. 조던 필레 감독이 코미디언으로 활약할 때 주로 이용하던 수단이다. 이러한 캐릭터 로드의 존재로 인해 <겟아웃>은 104분 러닝타임의 농담처럼 느껴진다. 호러 장르의 외피를 하고 있지만, 공포를 조성하는 것에 앞서 비꼼의 태도를 놓지 않는 모습에서 진지한 비판의 태도보다 독한 농담의 향기가 느껴진다. 본인들에게 쏟아지는 스테레오 타입과 차별을 비꼬고 뒤틀어 전시하는 농담조의 영화로 <겟아웃>은 읽힌다. 진지한 비판이라기 보단 조던 필레가 가진 스타일에 호러 장르의 컨벤션을 빌려온 농담이랄까. 영화가 그려내는 거대해 보이는 진실이 크리스의 탈출 과정에서 생각 보다 수월하게 무너지는 것처럼 보이는 영화의 후반부는 <겟아웃>이 영화 스케일의 농담이라는 것에 힘을 실어준다. 어쩌면, “이렇게 간단하게 뒤집을 수 있는 문제잖아?”라고 반문하는 것처럼 착착 맞아떨어지는 엔딩을 그려낸 것일지도 모른다.

 때문에 <겟아웃>은 호러 영화로써의 매력은 조금 아쉽다. 사슴이 차에 부딪히는 사고에서부터 조성되는 긴장감은 음악을 통해 러닝타임 내내 이어지지만, 너무나도 수월하게 탈출에 성공하는 크리스의 모습에서 영화가 가져야 할 서스펜스가 반감된다. 백인 공동체 속 이상행동을 보이는 흑인들을 보는 크리스의 모습에서 압박감이 느껴지지만 그것이 관객에게 곧장 공포로 치환되어 전달되지는 못한다. 크리스가 미시의 최면에 빠져 심연으로 빠지는 코스믹 호러적 느낌으로 연출된 장면은 인상 깊지만, 그 장면 자체가 큰 공포로 작용하지는 못한다. 결국 <겟아웃>은 조던 필레가 언제나 해오던 인종차별에 대한 농담의 영화 버전으로 남게 된다. 생각보다 무섭지 않은 호러영화 <겟아웃>은, 괜찮은 블랙코미디 영화로 볼 수 있지만 ‘호러’ 영화로써 좋은 영화라고 할 수 있을지엔 의문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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