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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May 23. 2017

주변에 위치한 개개의 역사로 엮은 이야기

 김보람 감독은 카메라를 들어 동네의 한 백구를 촬영한다. 대관령 슈퍼의 주인아저씨가 밥을 주고 산책도 시켜주며 지내는 이름 없는 백구, 한 다리를 다쳐 절뚝거리며 걷는 늙은 백구. 김보람 감독은 백구의 역사를 알아내기 위해 동네 사람들을 탐문하기 시작한다. 백구에 대해 가지고 있는 작은 기억들을 풀어놓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개의 역사를 알아가는 듯 영화가 진행된다. 그러나 영화 후반부, 김보람 감독은 자신의 목소리로 백구의 역사를 알아내는데 실패했다고 이야기한다. 대신 감독의 카메라는 백구처럼 이름 없는 존재들을 담아내기 시작한다. 매일 같이 스쳐 지나가지만 이름은 모르는 이웃, 붙여진 이름이 있을까 싶은 골목길, 어린 시절의 기억과는 다르게 변해버린 학창 시절의 동네, 동네 정자에 앉아있는 어르신들의 모습, 무리 지어 돌아다니는 비둘기들 등이 카메라에 담긴다. 

 개의 역사를 알아내는데 실패했듯이 다른 이름 없는 것들의 역사를 알아내는데도 실패한다. 자신의 삶을 돌아보기에는 너무 나이 들어버린 어르신들, 백구와 마찬가지로 어디서 와서 어떻게 살아가는지 알 수 없는 비둘기를 비롯한 동물들, 계획 없이 난잡하게 만들어진 골목길들…… <개의 역사>는 이렇게 외롭고 관심 가져주는 사람도 없는 대상을 담아낸다. 그들의 역사는 알아내지 못했어도, 각 대상 개개의 이야기를 끌어와한 편의 영화로 완성시킨다. 때문에 중심점이 없는 이야기처럼 영화가 느껴질 수도 있지만, 오히려 주변의 이야기를 하나하나 엮어 새로운 서사구조를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독창적으로 느껴진다.


 거친 질감의 촬영과 편집이 다소 불편하고 어지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카메라의 시선은 수평이 딱 맞아떨어지지 않고, 기울어져 있다. 과하게 줌을 당겨 화질이 조금 깨지는 장면도 많다. 이러한 화면들은 스크린 밖의 현실에서 영화가 담아내려는 대상을 바라보는 관객의 시선, 그리고 동시에 감독의 시선을 반영한다. 우리는 그 대상들을 삐뚤어지게, 흐릿하게 바라보고 지나치지 않았을까? 영화에서 몇 차례 핸드헬드로 찍은 몇몇 장면이 등장한다. 이 장면들은 독특하게도 하나의 영상으로 쭉 이어가기보다는 버퍼링에 걸린 것처럼 정지화면으로 진행된다. 영상으로 쭉 이어졌다면 놓쳤을 골목, 보도블록, 창문, 표지판, 복도등이 관객의 눈에 들어온다. 영화 상영 후 토크를 진행한 세컨드 필름 매거진의 정경희 에디터는 “이름 없는 것들의 찾지 못한 이름들을 발굴해 호명하는 영화”라고 <개의 역사>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러한 독특한 영상은 이름 없는 것들을 호명하는 영화의 주제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개의 역사, 걔의 역사, 개개의 역사, 말장난 같지만 영화의 주제를 함축하는 (그리고 감독이 나름 노렸다고도 말한) 평이다. <개의 역사>는 항상 스쳐 지나가던 모든 것들의 역사를 다시 조명하려 하고, 결국 개개의 역사를 알아내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린다. 그러나 개개의 역사를 조명하려는 행위가 가지는 의미를 담아내는 것은 가능했고, 일정 부분 성공한다. 김보람 감독이 담아낸 단편적인 개개의 역사는 83분의 영화로 엮여 하나의 서사를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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