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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May 24. 2017

『더 랩: 힙합의 시대』

미국의 힙합 전문 저널리스트 시어 세라노(Shea Serrano)가 퍼낸 책이다. 1979년부터 2014년까지 총 36년 동안 그해 가장 중요했던 곡을 한 곡씩 선정한 힙합 리스트북이자 여러 힙합 뮤지션들의 랩 가사와 영향력 등이 인포그래픽과 아트워크로 수록되어 있는 힙합 아트북이다. 저자는 직접 쓴 책의 안내글에서 "그해 가장 뛰어난 곡이나 그해 가장 뛰어난 곡, 그해 가장 히트한 곡이라고 무조건 선정하지 않고, 그 곡이 힙합에 미친 음악적, 상업적, 사회적 영향력을 고려해 그해 가장 중요한 곡을 선정했다"라고 밝히고 있다. 책은 1년에 한 곡씩 총 37곡(제이지(Jay-Z)의 'Takeover'와 나스(Nas)의 'Ether' 중 한 곡을 버릴 순 없으니까 2001년만 두 곡)을 소개하고 있다.

책은 1979년 슈가 힐 갱(Sugar Hill Gang)의 "Rapper's Delight'로 시작한다. 최초의 랩 곡은 아니지만, 최초로 방송에서 라이브를 하고, 최초로 히트한 랩 곡이다. 이후 커티스 블로우(Kurtis Blow)의 "The Breaks"와 아프리카 밤바타 & 재지 파이브(Africa Bambaataa And The Jazzy Five)의 "Jazzy Sensation"등이 연달아 등장한다. 1987년 에릭 비 & 라킴(Eric B & Rakim)의 "Paid in Full"까지는 힙합의 탄생과 장르 문법을 만들어 내고, 힙합만의 특성들(라임의 운용, 샘플링, 스토리텔링 등)을 정립시킨 곡들이 등장한다. 이후 1988년 N.W.A의 "Straight Out Of Compton"과 1989년 퍼블릭 에너미(Public Enemy)의 "Fight The Power"같은 곡들이 등장하며 흑인 사회 속 힙합의 영향력 등을 다루기 시작한다. 이후 투팍(2Pac), 노토리어스 비아지(Notorious B.I.G), 우탱 클랜(Wu-Tang Clan) 등 부터 현재의 켄드릭 라마(Kendrick Lamar)와 리치갱(Rich Gang)까지의 계보를 간단히 그리고 자세히 훑어준다.

시어 세라노는 36년의 짧다면 짧지만 길다면 긴 힙합의 역사들을 다루면서 다양한 요소들을 자연스럽게 등장시킨다. 힙합과 직접적으로 연결된 흑인 커뮤니티의 이야기와 인종차별부터 LGBT차별에 대한 이야기, 스파이크 리(Spike Lee)의 <똑바로 살아라>와 같은 블랙 무비, NBA, 같은 해에 나온 다른 앨범, 래퍼들의 개인사 등 힙합과 영향을 주고 받은 문화/사회적 요소들로 37곡을 소개한다. 또한 각 챕터의 마지막에 있는 인포그래픽은 각 곡의 가사를 정리해주거나 영향력을 표기해주고, 아쉽게 선정되지 못한 곡들을 정리해준다. 특히 챕터마다 선정되지 못한 곡 하나씩을 시어 세라노가 아닌 다른 음악평론가나 저널리스트들이 선정하고, 세라노의 선택에 대한 반론을 적어놓았다. 덕분에 책이 더욱 풍성해졌음은 물론, 독자들이 체크해야 할 곡의 수도 두 배로 늘어났다. 챕터마다 붙어있는 각주들도 책의 이해를 돕는 동시에 꽤 높은 타율의 유머를 제공한다.

『더 랩: 힙합의 시대』가 좋았던 이유 중 하나는 책 속에 빼곡한 유머였다. 챕터 본문과 각주를 가리지 않고 녹아있는 유머는 어찌보면 단순하고 지루한 나열식 구성의 책을 즐겁게 읽을 수 있도록 해준다. 2001년 챕터에서 제이지와 나스 이전의 랩배틀을 언급하며 50센트(50 Cent)와 자 룰(Ja Rule)의 비프를 언급하는데, "이후 자룰은 샌드위치 체인점 아비스에서 일하고 있다."라고 언급한 뒤 각주로 "아마도"라고 다는 식이다. 또는 "칸예가 [Yeezus]라는 앨범을 발표해 줘서 고맙다. 이제 지저스-이저스 라임을 맞출 수 있게 되었다."같은 개드립도 있다. 보면서 피식피식할 수 있는 유머들이 좋다. 특히 책의 번역을 맡은 'Good Humor Gang' 김봉현 음악평론가 덕분에 유머들이 꽤나 잘 번역되어있다. 김봉현 평론가와 시어 세라노의 유머코드가 상당히 비슷해 보인다. 좋다. 즐겁다. 다시 읽고 싶어진다.

책에 언급된 영향력 있는 래퍼들은 무수히 많다. 아프리카 밤바타부터 투팍, 제이지, 나스, 노토리어스 비아지, 우탱 클랜, 에미넴(Eminem), 닥터 드레(Dr.Dre), 릴 웨인(Lil Wayne)... 하지만 가장 눈에 띄고, 가장 많이 언급된 래퍼는 역시 칸예 웨스트(Kanye West)이다. 해당 챕터에서 언급은 되지 않았지만 칸예 웨스트가 프로듀싱한 제이지의 "Ether"가 선정되었고, 칸예 자신의 곡인 "Gold Digger"와 "Monster"(사실 이챕터는 칸예보다 니키 미나즈(Nicki Minaj)에 초점이 맞춰져 있긴 하다), "Niggas in Paris"까지 여러 곡이 선정되어 있다. 또한 칸예의 앨범 [808&Heartbreak]의 영향을 깊게 받은 드레이크(Drake)의 "Best I Ever had" 챕터에서는 드레이크보다 칸예 이야기의 비중이 더 높다. 그 외에도 "Swagger Like Us"나 "Black Skinhead"같은 곡들이 선정되지 못한 곡 리스트에 들어가 있다. 굳이 리스트로 만들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사실이지만, 책을 다시 읽어보니 21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래퍼는 아무래도 칸예 웨스트인 것 같다.

1979년 이후 힙합이 주류문화로 떠오른지 몇 십년이 되었다. 지금 당장 빌보드 Top 10 차트를 보면 1위인 드레이크의 "One Dance"를 비롯해 총 4곡이 올라와 있다. 한국에서도 힙합 프로그램 <쇼미더머니>가 5년째 진행 중이고, 빈지노, 다이나믹 듀오, 에픽하이 등의 래퍼들이 톱스타의 반열에 오른 상태이다. 앞으로 힙합이 어떤 방식으로 대중문화와 사회에 영향을 미칠지 알 수 없는 일이지만, 『더 랩: 힙합의 시대』를 통해 지금까지의 힙합을 되돌아 본다면 힙합이 어떻게 나아갈지 생각해볼 수 있지 않을까? 

뭐 어쨌든 즐기기엔 힙합이 최고다.              


아래 링크에서  『더 랩: 힙합의 시대』에 선정된 37곡을 들어볼 수 있다.

http://m.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4480118&memberNo=16714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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