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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May 25. 2017

ABC&넷플릭스 <지정생존자>

 대통령과 상하원 의원 등 정부 주요 인사가 모두 모여있던 의사당에서 폭발이 일어난다. 폭탄테러로 대통령과 각부 장관, 상하원 의원을 포함한 대부분의 정부 주요 인사가 사망하고,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안전가옥에 피신해있던 지정생존자, 국토부 장관 톰 커크먼(키퍼 서덜랜드)이 대통령이 된다. 완전한 무질서의 상태에서 정부를 다시 꾸려나가야 하는 톰 커크먼은 백악관 비서진과 함께 테러의 배후를 밝히고 국정을 재개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한창 촛불 탄핵 정국이 진행 중이던 작년 가을에 방영을 시작해 대선이 마무리된 지 한 달 정도 지난 시점에서 시즌 피날레를 맞은 <지정생존자>는 묘하게 한국의 상황을 연상시킨다. 한국에 테러가 발생해 정부요인들이 모두 사망하거나 한 것은 아니지만, 최악의 국정농단 사태부터 탄핵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일들이 있었고 문재인 정부는 최소한의 인수인계 조차 받지 못한 상황에서 국정을 시작하게 되었다. <지정생존자>는 어느 인물이 갑작스럽게 대통령이 되어 국정을 재건하는 이야기이다. 세부적인 상황은 다를지 몰라도, 기존의 고인 물을 타파하고 국민이 우선이 되는 국정운영을 메시지로 삼은 이야기라는 점에서 드라마와 한국의 현실이 묘하게 겹쳐 보인다.

 톰 커크먼은 정치를 해본 적이 없다. 별 볼일 없는 장관이었고, 테러가 터지기 전까지는 그런 사람들이 돌아가며 맡는 자리가 지정생존자의 자리였다. 그는 정치인이라기보단 교수에 가까운 성향을 가지고 있고, 21부작 드라마 내내 스스로 이를 잊지 않는다. 동시에 그는 유능한 사람을 가려내고 그들을 믿고 지지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때로는 무모할 정도로 신뢰와 정직함으로 승부하지만, 그런 우직함이 빛을 발하는 순간의 카타르시스는 다른 정치 드라마를 뛰어넘는 특별한 순간으로 존재한다. 국정을 재건해가는 모습과 테러 배후에 얽힌 음모 두 가지 축이 드라마의 서사를 구축해가는 모습은 대통령이라는 직책이 가지고 있는 무게감을 실감케 한다. 


 <지정생존자>라는 드라마가 좋았던 이유는 톰 커크먼이라는 개인의 성취를 지켜보는 것에도 있었지만, 대통령 주변의 인물들에도 계속해서 주목했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성공은 대통령 개인만의 성공이 아닌, 주변의 보좌진과 각료, 의원 등 많은 사람이 합쳐진 결과라는 것이 드라마 전체를 통해 드러난다. 좋은 사람들을 등용하고, 그들이 최선을 다해 일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의 중요성은 <지정생존자>가 다루는 또 하나의 테마이다. 에런과 에밀리, 세스를 비롯한 보좌진, 제이슨과 한나 등 테러 배후를 쫓던 FBI 요원들, 훅스트라튼 등 대통령과 긍정적인 방향으로 미국의 미래를 위해 대결한 정치인 등, 모두가 모두를 위해 일할 때 미국적 민주주의 가치가 실현된다. 시즌 피날레에 등장하는 커크먼의 연설은 그렇기에 감동적이다.

 트럼프와 그의 추종자가 부르짖는 “Make America Great Again”라는 구호는 쿠데타를 도모하던 (놀랍지만 당연하게도 모두가 백인인) 집단에 의해 드라마 속에서 반복된다. (제작은 ABC지만 배급은) 넷플릭스 드라마답게, 여전히 주인공은 백인 남성이지만, 다양한 젠더와 인종 구성의 캐릭터들이 등장해 각각 활약하는 것과 극명하게 대조되는 부분이다. <지정생존자>가 그리는 정부와 국회의 모습에서는 젠더나 인종에 관련된 스테레오 타입이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젠더와 인종 문제에 직접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드라마는 아니지만, 그들에게 “역할 하나쯤 주지”라는 시혜적 태도가 아닌 입체적인 인물로서 각각의 캐릭터가 존재한다는 점은 <지정생존자>의 최대 강점이기도 하다. 이러한 캐스팅은 드라마 전체의 메시지와 맞물려 시너지를 만들어낸다.


 시즌 피날레는 테러의 배후 일당이 남겨낸 여파가 커크먼 정부에게 닥쳐올 것임을 알리며 마무리되었다. 시즌2는 그것과 싸우는 커크먼의 이야기가 주된 내용이 되지 않을까? 대통령이라는 위치와 직무에 대해서, 훌륭한 대통령이 되기 위한 조건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할 수 있는 드라마였다. 비록 판타지처럼 커크먼 정부의 위기가 넘어가는 순간들이 존재하기도 하지만, 그러한 판타지를 만들어 내기 위해 손과 발로 뛰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지정생존자>에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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