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계 미국인 데브(아지즈 안사리)는 뉴욕에서 배우를 꿈꾼다. 작은 광고나 TV쇼에 출연하는 데브의 이야기를 담아낸 드라마가 <마스터 오브 제로>이다. 코미디언 아지즈 안사리가 제작, 주연 및 각본을 맡고, 그의 동료인 알란 양이 연출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이다. 시놉시스만 본다면 데브의 좌충우돌 성공담을 다룬 전형적인 이야기처럼 보인다. 그러나 <마스터 오브 제로>는 데브를 중심으로 그의 친구들과 애인 등이 뉴욕에서 살아가는 일상을 그려낸 작품에 가깝다. 그리고 그들의 일상에 인종문제와 페미니즘부터 연인관계와 직업적인 이야기까지 다양한 이야깃거리를 담아낸다. 동시에 극장에 걸리는 몇몇 영화들보다 훨씬 영화적인 촬영과 편집은 씨네필적인 아지즈 안사리와 알란 양의 취향을 드러낸다. 장르적으로 로맨틱 코미디에 가까운 <마스터 오브 제로>는 경쾌하고 편안하며, 때로는 날카롭기도 하다. 적어도 이 작품을 보고 난 후 행복해질 사람이 많다는 것은 확실하다.
우선 영화의 출연진부터 다양하다. 인도계 주인공은 데브는 물론이고, 그의 소꿉친구인 드니즈(리나 웨이스)는 흑인 레즈비언이고, 동양계 미국인 브라이언(켈빈 유)와 거구의 백인 남성 아놀드(에릭 웨어하임)가 데브의 절친으로 등장한다. 다양한 인종과 젠더의 대한 이야기가 시리즈 전반에 걸쳐 펼쳐지는 것은 당연하다. 모든 캐릭터에게 입체적인 측면과 개성을 부여하고, 각각의 이야기가 개별 에피소드에서 등장하는 분량 배분은 <마스터 오브 제로>의 지향점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인종차별의 반대하는 페미니스트로써 모두가 평등하게 다가갈 수 있는 쇼를 만들겠다는 태도가 엿보인달까? 몇몇 에피소드는 차별에 대한 강의에서 참고자료로 사용해도 무방할 만큼 완성도가 뛰어나다.
가령 시즌1의 7번째 에피소드 ‘신사숙녀 여러분’의 오프닝은 밤거리가 성별 차이에 따라 얼마나 다르게 느껴지는지를 공감각적으로 느끼게 해준다. 파티가 끝나고 집에 돌아가는 데브의 장면에서는 경쾌한 음악이 등장하고, 그가 집에 돌아가는 동안 일어난 가장 짜증 나는 일은 개똥을 밟은 것이다. 반면 그의 여성 동료인 다이애나가 집에 가는 장면에선 음산한 스릴러 영화 같은 음악이 깔리고, 술 취한 남성이 그녀의 집으로 쫓아와 경찰을 불러야 했다. 그리고 데브의 친구인 레이첼(노엘 웰스)과 드니즈 또한 그런 경험이 많다고 이야기한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지하철에 앉아있는 여성을 보며 자위하는 남성을 목격한 데브는 페미니즘의 의미에 대해 알게 되고 자신이 일하는 광고 촬영장의 성차별적인 모습을 지적하는 장면은 그 자체로 흥미롭다.
동시에 인종차별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에피소드들 역시 흥미롭다. 동양계인 데브와 브라이언이 사회적으로 받는 인종차별은 거의 공론화가 되지 않고 있다. 이를 지적하는 것은 쉐도우 복싱을 하는 것으로 느껴지고, 투명인간 취급을 받는 것처럼 그려진다. 끊임없이 지워지는 존재에 대해서, 없는 것으로 그려지는 차별에 대해서 목소리를 내는 지점은 동양인인 한국의 관객에게도 유효하다. 이러한 문제 이외에도 양로원에서 외롭게 살아가는 노인에 대한 이야기(시즌1 8화 ‘노인들’), 이슬람 종교에 대한 이야기(시즌2 3화 ‘종교의 문제’), 인간관계와 연인관계에 대한 이야기 등이 흥미롭게 전개된다. 특히 청각장애인 커플이 등장하는 시즌2 6화 ‘사랑해, 뉴욕’과 드니즈의 어머니가 레즈비언 딸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그린 시즌2 8화 ‘추수감사절’은 감동적이면서 놀랍다.
현재 시즌2가 마무리된 <마스터 오브 제로>는 넷플릭스에서 감상할 수 있다. 회당 30분 내외의 짧은 에피소드 10편이 한 시즌을 구성하고 있어 부담스럽지 않게 즐길 수 있다. 그동안 다양한 인종과 젠더의 캐릭터들을 등장시키고, 그들이 주가 되는 이야기들을 만들어 왔던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의 정수가 <마스터 오브 제로>에 담겨 있다고 생각된다. 물론 이 드라마가 완벽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모두가 편안하게 볼 수 있는 쇼라는 점에서 가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