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 연구 노동 집단 도란스의 첫 기획 총서
‘양성평등’이라는 담론이 수많은 젠더/섹슈얼리티의 문제를 온전히 담아낼 수 있을까? 한국 사회 현실을 젠더와 섹슈얼리티, 탈식민주의 관점에서 재해석하는 연구 노동 집단 도란스의 첫 기획 총서 『양성평등에 반대한다』는 책의 머리말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양성평등 담론에 대한 비판은 남성/여성의 범주와 개념 자체의 허구성을 밝힘으로써 개인이 좀 더 젠더 규범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가능성을 모색하는 작업이다. 동시에 성적 소수자로 불리는 이들의 존재와 투쟁을 분석함으로써 기존의 젠더 개념을 해체하고 재구성하고자 한다.” 기존의 ‘양성’평등의 의미는 이성애 속의 여성과 남성을 기준으로 삼고 있을 뿐이다. 양성평등 담론은 가부장제 속의 여성성과 남성성을 벗어난 동성애자, 트랜스젠더 등과 젠더플루이드, 안드로진 등의 젠더퀴어 또는 인터섹스 등을 포괄하지 못한다. 또한 책은 양성이라는 이분법으로 젠더를 분류하고 분석하는 것은 기존의 가부장제 담론에서 벗어나지 못한 남성 중심적 논리임을 지적한다. 그렇다고 『양성평등에 반대한다』이 단순히 ‘양성평등 대신 성평등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자’라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다섯 명의 저자는 각자 다른 관점을 통해 양성평등 담론을 해체하고 재해석한다. 정희진의 글은 남녀 양성이라는 통념을 있는 그대로 반박한다. 남성과 여성은 일종의 규범이지 현실이 아니며, 이러한 규범 속에서 남성의 지위와 여성의 지위는 대칭적일 수 없다. 그렇기에 양성평등 담론에서의 평등의 기준은 어디의 속하는지를 묻는다. 또한 현실에 존재하는 성적 소수자라 불리는 동성애자, 트랜스젠더, 인터섹스, 젠더퀴어의 존재를 통해 양성이라는 개념의 허구성을 드러낸다. 이 챕터에서 가장 중요한 포인트라고 느낀 지점은 “양성은 두 개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여성성 하나만 존재한다. 남성적인 것은 남성적인 것이 아니라 보편적인 것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라는 부분이다. 글은 이문장에 앞서 언어, 인종, 지역적 사례를 들며, 어느 한쪽이 대칭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을 지목하고, 그것에 이름을 붙여 규정하는 것은 사회적 강자의 권력일뿐이라고 이야기한다. A을 규정함으로써 범주를 만들어내고, 그것을 평등하다 말하는 것은 오히려 권력을 쥔 B가 A를 지배한다. 정희진은 양성평등 담론의 전개가 이와 같이 전개되었음을 지적한다.
두 번째 챕터를 쓴 루인의 글은 양성이라는 이분법적 사회에서 퀴어의 의미, 존재성과 가시화 방식을 논한다. 이를 위해 고위직 남성의 성추문 사건들을 큐레이팅 하고, 음란(성)이 범죄가 되는 한국사회의 성문화를 비판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우리 사회에서 성적 타자가 어떻게 구성되는지를 논한다. 루인은 2014년 전 지방검찰청장이 공연음란죄로 체포된 사건을 끌어온다. 해당 사건을 통해 범죄가 언론을 통해 큐레이팅 하는 방식을 논하고, 음란 행위는 그 자체로 폭력이며 범죄인지, 공연음란죄의 공공성은 어떻게 구성되는지, 음란 행위를 심각한 범죄로 규정하는 것은 무엇을 가리는지를 이야기한다. 루인을 이를 위해 퀴어 정치학, 퀴어 범죄학을 이용한다. 글은 퀴어는 규범과 불화하고, 퀴어 정치학은 정체성을 규정하고 그에 따른 역할을 부여하는 권력 작동 구조를 문제 삼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트랜스젠더퀴어가 한국에서 처음 등장하게 된 계기가 범죄로써 언론에 알려졌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는 것은 한국 사회에서 섹슈얼리티를 젠더적 규범에 따라 범죄로 규정해왔다는 역사를 증명한다. 이에 이어, 퀴어 범죄학의 비평 개념을 채택하여 전 지검장의 성추문 사건을 재검토한다. 섹슈얼리티와 공공성의 문제가 범죄라는 카테고리로 얽혀 들어갔을 때 등장하는 ‘건전한 사회적 통념’과 ‘보통인’은 무엇을 가리키는가? 루인의 글은 전 지검장 사건의 옳고 그름을 가르는 대신, 이를 통해 섹슈얼리티와 공공성의 문제가 누구에 의해, 어떤 방식을 통해 규정되는지 사유한다.
미성년자 의제강간을 토픽으로 삼은 권김현영의 글은 오직 연령만으로 양성에게 동일한 기준을 부여하는 미성년자 의제강간죄 내부의 모순을 드러내며 양성 개념의 이중성과 모순을 드러낸다. 실제 가해자는 성인 남성이 압도적으로 많음에도 언론에 보도되는 사건의 수는 남성 가해자와 여성 가해자의 사건이 비슷하게 등장하는지 등을 지적하고, 청소년의 몸을 타자화하지 말고 사회적 몸으로 볼 것을 제안하면서, 한국의 남성 문화 내에서 남자 청소년과 여자 청소년의 섹슈얼리티가 매우 다른 의미로 재현되고 실천되고 있음을 지적한다. 의제강간죄의 연령 기준은 젠더를 고려하고 있지 않다는 모순을 파고들어 양성 개념에서 연령이 어떻게 여성에게 불리하게 작동하는지를 탐색한다. 류진희의 글은 양성평등 패러다임 이후 새로운 여성 주체의 등장을 다룬다. 메갈리아에 대한 정치적 분석을 하면서, 여성 혐오에 초점을 맞춘 기존의 젠더 논쟁 대신 매체 자체와 새로운 여성 주체의 등장을 주목한다. 온라인 공간이 더 이상 가상이 아님을 분명히 하면서도 온라인 공간의 특수성을 바탕으로 메갈리아 혹은 트위터 페미니스트를 논하고, 기존 페미니스트와 영 페미니스트들의 연대 가능성을 논한다. 핸채윤의 글은 양성평등 담록 밖의 주체들의 투쟁을 분석할 대 양성 개념과 한국 사회상을 다룬다. 동성애가 이성애적 가족주의를 위기에 빠트린다는 한국 개신교의 논리에 맞서, ‘동성애와 개신교’에 대한 기존의 시각을 재해석한다. 글의 접근 방식은 단순히 성서에 기반한 개신교 세력의 동성애 혐오를 분석하는 것이 아닌, 한국의 역사적 맥락에서 한국 개신교가 동성애 혐오를 어떻게 끌어와 이용해왔는지를 분석한다. 동시에 타자사 발명되는 방식을 분석하며, 여성의 타자화와 동성애의 타자화가 유사한 맥락으로 전개되었음을 밝히고, 이러한 과정에서 양성 중심의 젠더 개념을 재구성하고 해체할 것을 요구한다.
『양성평등에 반대한다』를 퍼낸 도란스는 페미니즘을 기반으로 한국 사회를 젠더와 섹슈얼리티, 탈식민주의 시각으로 재해석하는 연구 노동 집단이다. 강남역 여성혐오 살인사건 이후 페미사이드가 가시화되고, 메갈리아의 등장과 함께 벌어진 온라인 상의 ‘젠더 워(Gender War)’가 일어났으며, 트위터 등의 SNS를 기반으로 한 영 페미니스트들이 온오프라인을 오가며 활동을 벌이는 지금, 도란스의 연구는 페미니즘과 퀴어 이론을 한국 현대사에 적용해 지금의 현상을 도출해내는 작업을 이어간다. 온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수많은 젠더 이슈가 터지는 지금, 한국사회 속 젠더 이슈를 탐색하는 도란스의 연구를 접한다면 그 원인을 조금 더 명확하게 알 수 있지 않을까?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독재를 경유하는 현대사, 개신교가 득세하고 인터넷과 SNS의 빠른 보급 등으로 이런저런 상황이 벌어지는 한국에 알맞은 이론을 탐구하는 도란스의 연구는 앞으로도 중요한 자료로 남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