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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Jun 04. 2017

이미지가 곧 감정으로 작용하는 영화적 연출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상영작, 켈리 레이차트의 <어떤 여인들>

 변호사인 로라(로라 던)는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 의뢰인 풀러(자레드 해리스)와 8개월째 씨름 중이다. 그는 다른 남성 변호사의 말을 듣고 바로 납득하는 풀러를 보며 자조한다. 가족과 함께 살 집을 새로 지을 예정인 지나(미셸 윌리엄스)는 재료로 쓸 벽돌을 얻기 위해 홀로 사는 노인 앨버트(린 어벌조노이스)를 찾아간다. 지나는 앨버트를 설득하지만 함께 간 남편은 자꾸만 벽돌을 굳이 주지 않으셔도 된다고 이야기한다. 결국 벽돌을 얻은 지나의 뒷모습에 앨버트는 “아내가 내조를 잘 하네요”라고 지나의 남편에게 이야기한다. 목장에서 말을 돌보며 단조롭고 지루한 일상을 보내던 여인(릴리 글래드스톤, 극에 이름이 나오지 않음)은 우연히 사람들을 따라 학교법 강의에 오게 된다. 수업의 강사인 변호사 초년생 엘리자베스(크리스틴 스튜어트)는 4시간이 걸리는 리빙스톤에서 학교를 오가며 수업을 진행한다. 여인은 엘리자베스에게 식당을 안내해주며 미묘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이러한 세 에피소드가 107분 동안 이어지며, 각 에피소드가 비슷한 시간대에 벌어진 일임을 암시하는 느슨한 연결고리만을 남기는 <어떤 여인들>은 이야기가 아닌 뉘앙스를 통해 에피소드들을 잇는다. 노골적이지 않지만 집중하고 주의 깊게 감상하면 드러나는 여성의 삶과 일상, 어떤 네 여인이 세상과 맞서가며 살아야 하는 모습, 거기서 비롯되는 외로움과 피곤한 감정이 굵은 입자의 16mm 필름 화면에 담긴다. 몬타나 주의 겨울이 주는 황량한 길은 여인들의 감정을 대변하는 이미지로 작용한다. 앞선 두 에피소드의 로라와 지나가 여성이기에 받는 시선과 차별들은 몬타나의 이미지와 겹쳐져 하나의 뉘앙스로 관객에게 전달된다. 노골적인 고발이나 폭로가 아닌, 그렇게 살아가게 된 두 여인의 모습을 그저 담아낸다. 16mm 필름의 굵은 입자는 그 삶이 겉보기엔 단조로운 일상이지만, 그 내면은 거칠고 불안정한 감정을 동반한다는 것을 드러내는 장치로 작용한다. 세 번째 에피소드에서 목장을 관리하는 여인과 엘리자베스의 묘한 감정선과 소박한 연대는 앞선 두 여인의 모습의 위로가 된다.

 

 켈리 레이차트의 영화를 감상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다만 <어둠 속에서>, <웬디와 루시> 등의 전작들에서 길의 이미지를 통해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갔다는 점은 알고 <어떤 여인들>을보러 극장으로 향했다. 길이라는 테마에는 여러 가지 감정이 담긴다. 그것은 밝고 즐겁고 경쾌할 수도 있고, 공포와 두려움의 대상일 수도 있으며, 험난한 장애물일 수도 있다. <어떤 여인들>은 주위가 텅 비고 황량한 길의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가져와 에피소드의 뉘앙스를 만들어낸다. 달리는 차를 잡는 시퀀스에서 카메라는 언제나 여성 캐릭터의 얼굴을 잡아내고, 창에 비친 길의 모습과 함께 얼굴을 보여준다. 이미지가 곧 감정으로 작용하는 영화적 연출은 <어떤 여인들>의 이야기를 전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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