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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Jun 05. 2017

이미 여성에게는 디스토피아인 세상

마가렛 앳우드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시녀 이야기>

 마가렛 앳우드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이다. 구약성경을 법으로 삼는 집단이 쿠데타를 일으켜 군부정권을 세운 가상의 국가 길리어드 공화국을 배경으로 한다. 근미래 단 1%의 여성만이 임신과 출산이 가능해진 상황이 영화 속 세계관을 구성한다. 성서에 따라 성소수자들은 이성애 배반자로 낙인찍히고, 여성의 신체는 번식의 의무만을 가진 두 다리 달린 자궁으로 묘사된다. 영화의 오프닝은 주인공 케이트(나타샤 리처드슨)는 남편, 딸과 함께 국경을 넘어 도주를 시도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남편은 사살당하고, 딸은 어디론가 도망친 채 케이트는 군인들에게 잡힌다. 그렇게 잡힌 케이트를 비롯한 여성들은 임신 가능성을 강제로 진단받게 되고, 1%의 가임여성인 사람들은 시녀가 되어 불임인 가정에 파견되어 임신할 의무를 지게 된다. 설정을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끔찍한 이 영화는, 알폰소 쿠아론의 <칠드런 오브 맨>처럼 아이가 더는 태어나지 않는 세상을 배경으로 리처드 플레이셔의 <소일렌트 그린>처럼 인간을 물건으로 대하는 세계관으로 그려진다. 다만 이런 디스토피아적 상황이 여성에게만 해당된다는 점이 앞서 언급한 영화들과의 차이점이다.

 영화 속 여성들은 옷 색깔을 통해 구분 지어진다. 임신을 담당한 시녀들의 복장은 붉은 수녀복처럼 디자인되어있고, 상류층의 아내들은 모두 푸른 옷을 입으며, 공사장부터 하녀와 환경미화원 등의 노동을 하는 여성들은 회색의 옷을 입는다. 영화 속에서 자신이 원하는 복장을 입을 자유는 상류층 백인 남성인 사령관 프레드(로버트 듀발)에게만 주어진다. 보그, 코스모폴리탄 같은 잡지와 TV쇼, 영화 등은 포르노적 욕망을 부추긴다는 이유로 제거되었다. 성적인 욕망, 특히 여성의 욕망은 불경한 것으로 간주되며, 성폭행당했던 과거는 여성의 잘못으로 치부되고, 지정된 사람이 아닌 다른 사람과 잠자리를 함께한 시녀는 교수형을 당한다. 가임기 여성지도를 만들던 사상을 가진 인간들이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는다면 이런 모습이지 않을까? 대리모 역할을 하는 시녀의 이름은 주인의 이름을 따라 오브프레드(of Fred)와 같은 식으로 바뀐다. 시녀와 주인이 임신을 위해 관계를 가지는 의식은 극도로 그로테스크하게 그려지며, 그로 인해 잉태된 아이를 출산하는 장면을 모든 시녀와 아내들이 모여 지켜보는 출산식 장면은 그 정점을 보여준다. 구약성경이 고스란히 법으로 적용되는 끔찍한 세계관을 영상으로 접하는 충격은 정말 거대하다.

 원작을 읽어 보지 않아 원작의 중요한 포인트라 언급되는 부분들, 가령 군부정권에 저항하는 페미니스트 투쟁단체라던가짧게만 등장하고 마는 모이라 캐릭터 등에 대해 할 수 있는 말은 없다. 다만 사랑하는 남성에 의해 케이트가 구출되며 마무리되는, 과하게 로맨스적 엔딩을 맞이하는 영화의 결말은 확실히 아쉬움을 남긴다. 구약성경이, 폭압적인 가부장제가 만들어낸 폭력적이며 여성(을 비롯해 성소수자와 흑인 등 백인이 아닌 인종까지)억압적인 세계관을 영화로 옮겨오는 것에는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었지만, 이야기를 디테일하고 섬세하게 다루는 것에는 아쉬움을 남긴다. 여성에 대한 억압과 폭력을 다루고 있지만, 이를 타파하는 구원자로서 남성 중심의 레지스탕스가 등장하는 모습에서 아쉬움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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