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노 다케시의 영화 <그 여름 가장 조용한 바다>
기타노 다케시의 영화는 웃음과 폭력이라는 키워드로 대변된다. 최근에 아트나인과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있었던 두 기획전의 제목에는 웃음과 폭력이라는 단어가 들어갔었다. 독설을 날리는 코미디언으로 연예계 생활을 시작하였기 때문일까, 그의 작품은 극단적인 폭력을 드러내면서도 코미디의 톤이 녹아 있다. 동시에 비교적 폭력적이지 않은 그의 작품들은 너무나도 아름답다. <기쿠지로의 여름>이나 <키즈 리턴>처럼 성장영화에 가까운 그의 작품들은, 그가 기존에 다루던 야쿠자 영화 스타일의 폭력이 등장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가 다루는 성장과 회복, 대화의 정서는 슬픈 장면 없이도 눈물을 자아낸다. 그의 세 번째 장편영화 <그 여름 가장 조용한 바다>는 기타노 다케시의 이러한 정서의 시발점이 되는 작품이다.
바닷가 마을의 청소노동자인 시게루(마키 쿠로도)는 청각장애인이다. 혼자 사는 그의 곁에는 여자 친구 다카코(오시마 히로코)만이 함께한다. 쓰레기를 수거하던 어느 날, 버려진 서핑보드를 발견한 시게루는 그것을 집으로 가져와 수리한다. 어설프게 수리한 서핑보드를 타고 바다로 나간 시게루는 파도를 타지 못하고 연신 넘어지기만 한다. 다카코는 바닷가에 앉아 서핑을 시도하는 시게루를 지켜본다. 그러던 중 서핑보드가 완전히 부서지게 되지만, 이미 서핑에 빠져버린 시게루는 새 서핑보드를 구입해 바다로 나선다. 어느덧 파도를 탈 수 있게 된 시게루, 그를 지켜보면 서핑팀은 그에게 팀에 합류할 것을 권유하고, 치바에서 열리는 서핑대회에 출전할 것을 권한다.
청각장애인이 주인공인 영화인지라 극 중 대사가 많지 않다. 시게루와 다카코 사이에 대화가 없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극을 전개시키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대사와 약간의 코미디를 넣어 리듬을 만드는 경우를 제외하면 대사 자체가 등장하지 않는다. 대사의 빈 공간은 바닷가 마을의 사운드가 채운다. 파도소리, 자동차 소리, 바람 소리 등의 사운드가 빈 공간을 메운다. 영화 중간중간 등장하는 히사이시 조의 음악은 대사가 없는 <그 여름 가장 조용한 바다>의 정서를 완전하게 만들어주는 장치이다. 기타노 다케시와 히사이시 조의 첫 합작인 이 영화에서부터 히사이시 조의 음악은 기타노 다케시 영화의 정서를 만들어내는 가장 주요한 요소가 된다. <소나티네>, <하나비>부터 <브라더>까지 이어지는 둘의 합작은 지브리와 히사이시 조의 조합만큼이나 완벽한 하모니를 이룬다. 기타노 다케시의 서정성은 모두 하사이시 조의 음악에서 나온다고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대사가 적기에 대화 자체가 적은 영화이지만, 기타노 다케시는 대화 장면에서 주로 쓰이는 숏-리버스 숏을 활용한다. 무표정한 시게루의 얼굴과 다카코의 얼굴, 바다를 번갈아 보여주는 장면은 대사 없이 대화를 나누는 장면으로 기능한다. 대사를 제하고 인물과 인물이, 인물과 바다가 교감하는 장면들은 기타노 다케시가 만들어낸 가장 아름다운 장면이 아닐까 생각한다. 특히 시게루가 서핑보드를 주워 수리하고, 다카코와 함께 바닷가로 가 서핑을 시도하는 초반 10분은 숨 막힐 정도로 놀랍고 아름답다. 대부분 픽스된 카메라에다가, 몇몇의 트레킹 쇼트와 패닝이 있을 뿐인다케시의 카메라는 기교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단지 얼굴과 얼굴의 연결, 인물과 배경의 연결만으로 정서를 표현해낸다. 물론 히사이시 조의 음악이 여기에서 큰 몫을 차지하지만, 단순한 쇼트의 연결만으로 감정을 표현해낸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삐진 다카코를 찾아간 시게루가 다카코가 볼 수 있도록 신발을 던지는 장면과 같은 아름다운 장면과 아이디어는 이를 가능케 한다.
지금의 기타노 다케시는 이 영화를 만들던 기타노 다케시와는 다른 사람이 되어있는 것은 분명하다. 정서는 사라지고 냉소와 폭력만이 자리한 그의 최근작들에서 느껴지는 아쉬움은 <그 여름 가장 조용한 바다>와 같은 작품에서의 정서가 사라졌기 때문이지 않을까? 같은 야쿠자 폭력영화이지만 <소나티네>와 <하나비>가 가진 정서와 <아웃레이지>가 가진 느낌은 확연히 다르다. 사람이 언제나 같은 사람일 수는 없지만, 대단한 작품들을 쏟아내던 다케시의 정수는 결국 시게루와 다카코의 무표정에서 감정을 이끌어내던 솜씨가 아닐까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