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영화평론가 박동수 Jun 19. 2017

역사의 무게를 목격한 최후의 증인

4K 복원판 블루레이 출시된 이두용 감독의 <최후의 증인>

*스포일러 포함


 이두용 감독의 영화 <최후의 증인>은 한국영화 비운의 걸작으로 불린다. 개봉 당시 검열로 인해 편집되어 120분 정도의 러닝타임으로 상영되었었고, 때문에 관객의 외면을 받아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하였다. 2006년 러닝타임 158분의 네거티브 필름이 발견되어 이를 통해 상영되었고, 그 이후 여러 영화감독과 평론가들의 재평가로 인해 주목받았다. 이후 한국 영상자료원에서 이두용 감독의 회고전을 위해 2016년 4K로 복원하게 되고, 최근 블루레이로 출시되었다. 4K의 압도적인 화질을 통해 한국영화의 숨겨진 걸작을 만나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굉장한 즐거움이다. 블루레이를 통해 감상한 <최후의 증인>은 158분의 긴 러닝타임이 길다고 느껴지지 않는 빠른 전개, 이를 가능케 하는 세련된 편집과 독특한 구도의 화면 구성, 한국전쟁 직후부터 70년대 말에 이르는 한국 역사를 아우르는 서사구조, 당시의 다른 영화와 차별되는 후시 녹음의 퀄리티 등 보는 관객을 압도하게 만드는 걸작이었다.

 문창서의 오병호 형사(하명중)는 양달수(이대근) 살인사건을 독자적으로 수사하게 된다. 수사를 진행하던 중, 양달수의 죽음이 한국전쟁 직후의 비밀과 연결되어있다는 것을 알고 공비였던 강만호(현길수)를 찾아간다. 그를 통해 북한군 장교의 딸 손지혜(정윤희), 북한군에 잡혀 부역하던 황바우(최불암), 빨갱이 한동주에 대한 이야기를 알게 된다. 범인을 찾기 위해 그들을 하나하나 찾아간 오병호는 20여 년에 걸친 진실을 알게 된다. 오병호의 수사과정을 따라가는 영화는 강만호, 손지혜, 황바우, 한동주 네 사람과 그 주변 사람을 찾아 신문하는 과정에서 플래시백을 통해 한국전쟁 직후의 한국을 비춘다. 전쟁부터 지리산의 빨치산 이야기, 권력을 쥔 우파 정치가와 돈을쥔 자본가가 전후 자신의 자리에서 삶을 회복하려던 사람들을 어떻게 짓눌렀는지가 서너 번의 플래시백을 통해 드러난다. 이두용 감독은 오병호 형사를 통해 전쟁이 끝난 후 그저 살아가려던 사람들을 권력과 자본과 사회가 어떻게 짓눌렀는지를 다시 끄집어내고 기록한다. 범행을 저지른 손지혜의 아들 태영임을 알게 된 손지혜, 황바우는 자살을 택한다. 그들의 자살을 지켜보며 비극의 무게에 짓눌린 오병호 형사마저 자살을 택하며 영화가 끝난다.

 분단의 이데올로기에서 비롯된 사건으로 인해 손지혜와 황바우는 비극의 피해자가 되었다. 대립의 역사 속에서 돈과 권력을 쥔 사람들은 자신의 이데올로기와는 모순된 행동을 보이며 역사의 피해자들이 응당 누렸어야 할 안정과 삶을 빼앗는다. <최후의 증인>은 전쟁이나 이데올로기의 대립을 직접적으로 그리는 대신, 그로 인해 삶이 파괴된 사람들의 인생을 보여주는 방식을 택한다. 관객은 오병호 형사의 뒤를 쫓아 진실을 목격하게 된다. 가해자는 피해자의 삶을 파괴하고 피해자는 끝내 가해자를 살해한 뒤 자살한다. 오병호는 그 진실을 알고 있는 최후의 증인으로써 존재한다.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 오병호가 자살하면서 관객만이 최후의 증인으로 남게 된다. 입에 총부리를 넣고 방아쇠를 당기는 오병호와 총소리에 날아가는 새들을 보여주며 끝나는 영화는 오병호가 느꼈을 무게감을 관객이 고스란히 느낄 수 있도록 연출한다.

 오병호의 수사과정과 강만호, 손지혜, 황바우 세 인물의 플래시백이 번갈아 가며 진행되는 영화의 구성은 길고 거대한 이야기를 빠르게 전개해나간다. 전개에 크게 필요하지 않지만 보여주어야 할 군더더기들, 가령 이동하는 오병호나 그의 친구인 기자가 보도한 기사를 보여주는 장면 등은 세련되고 유려한 편집으로 빠르게 보여주고 지나간다. 대신 비바람을 맞고 신발이 벗겨질 정도로 푹푹 빠지는 진흙탕을 건너가는 오병호의 모습을 진득하게 보여준다. 군더더기를 최대한 덜어내고 인물의 감정선을 위한 장면들에 힘을 주는 분량 분배와 촬영, 편집은 러닝타임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관객을 극에 몰입하도록 만들어준다. 영화가 끝나갈 즈음이면 어느새 오병호처럼 피해자들에게 감정적으로 몰입하게 된 관객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이렇게 <최후의 증인>은 연기부터 촬영과 편집, 각본과 주제의식까지 어디 하나 빠지지 않는 걸작으로 남게 됐다.




매거진의 이전글 복잡다단한 인간의 결을 탐구하는 스릴러이자 블랙코미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