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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Jun 19. 2017

그들을 죽인 것은 누구인가

영상자료원 나카히라 코우 회고전 상영작 <죽인 것은 누구인가>

 전쟁 후의 일본, 도쿄에 사는 자동차 세일즈맨 에이키치는 실적 부진으로 고민에 빠져있다. 아내가 죽은 뒤 자녀와 떨어져 사는 그는 가게를 운영하는 애인 유리에의 집에서 지내고 있다. 젊은 사람들에 밀려 돈을 벌지 못하는 에이키치는 가족 부양을 위해 빚을 지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보험 사기 제안을 받고 목숨을 건 자동차 사고를 시도한다. 전쟁이 끝나고 어느 정도 시점이 지난,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경제적인 측면에서 어느 정도 회복한 일본 사회를 그리고 있다. 전쟁을 거치면서 본격적으로 보급된 자동차는 부의 상징이자 소위 ‘돈 놓고 돈 먹기’를 위한 수단이 되어가고 있고, 가난한 이들은 그 사이의 콩고물을 받아 살아가려 한다. 에이키치는 중개수수료를 통해 살아가고, 그의 아들 지로는 자동차를 닦아 살아간다. 부자들이 자동차 거래를 통해 돈을 늘려가는 모습은 부동산 투기와 비슷하고, 도쿄에만 1만 명이 활동한다는 자동차 세일즈맨은 에이키치와 같은 부진한 세일즈맨을 존재할 수밖에 없도록 만든다. 가끔 가다 한 방씩 터지는 자동차 세일즈는 계속 잃어가면서 부동산에 열을 올리는 사람들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만든다.


 에이키치와 그의 아들 지로는 각각 자동차 보험 사기에 뛰어든다. 목숨을 걸고 로터리를 들이받으면 십만 엔을 주겠다는 중개인 나카가와의 약속만 믿고 자동차를 몰기 위해 나선다. 영화 중반, 제안을 받은 에이키치는 이를 시도하나 충돌 직전에 겁을 먹고 차를 돌린다. 몇 차례의 실패 끝에 소주를 들이켜고 다시 시도하려 하지만 그의 친구인 프랭크가 나타나 자신이 대신하겠다고 나선다. 프랭크는 단번에 사고를 내는 데 성공하지만, 너무 크게 나버린 사고 때문에 목숨을 잃는다. 에이키치는 이에 유리에와 함께 지방으로 내려가려 한다. 영화 막바지, 나카가와는 지로에게 똑같은 보험 사기를 제안한다. 십만 엔을 제안받은 지로는 나카가와에게 당신과 차주는 얼마를 받는지 되묻는다. 나카가와는 자신은 이십만 엔, 차주는 삼십만 엔을 받는다고 대답한다. 어이가 없다는 듯이 잠시 웃은 지로는 비 오는 자동차 사고를 시도하러 가고, 이를 뒤늦게 알아챈 에이키치와 유리에는 그를 막기 위해 따라나간다. 비 오는 밤에 자동차 사고를 내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에이키치는 지로를 막기 위해 차 앞으로 뛰어든다. 지로는 그를 피하려다가 차로 그를 밟아버리고, 빗길에 미끄러진 지로의 차는 교각에 충돌한다. 결국 에이키치와 지로둘 다 그 자리에서 사망한다. 


 <죽인 것은 누구인가>라는 제목에 대한 대답은 명확하다. 에이키치와 지로, 그리고 프랭크의 죽음은 자본에 의한 살인이고, 돈을 통해 돈을 벌고 싶었지만 자신의 목숨은 아까웠던 자본가들에 의한 살인이다.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이자동차뿐만은 아니었지만 어쩌다 한 번 건지는 월척은 에이키치를 계속해서 자동차 세일즈에 매달리게 만든다. 지로가 첫 내기 당구에서는 돈을 벌었지만 다시 갔을 때는 모두 잃은 것과 같은 이치랄까? 영화가 그려내는 자동차 세일즈의 모습은 지금의 부동산 버블이나 주식의 모습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이야기만 놓고 본다면 다소 평범하게 느껴질 영화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카히라 코우의 카메라는 독특하게 이야기를 담아낸다. 가령 사거리에서 호객행위를 세차장의 소년들을 사거리 한가운데에 카메라를 놓고 계속해서 360도 돌려가며 담아내는 촬영은 채플린의 영화처럼 유머러스하게 상황을 전달한다. 흑백의 대비가 강렬한 화면 때문에 이러한 촬영이 만들어내는 효과가 더욱 두드러진다. 또 하나 주목할만한 장면은 두 차례 등장하는 당구장 장면이다. 지로의 당구 시합을 담아내는 카메라는 지로의 얼굴에서 큐를 쥔 손, 당구대 위를 굴러가는 당구공으로 흘러간다. 카메라는 당구를 치는 지로의 운동에너지를 따라가는 것처럼 유려하고 매끄럽게 흘러간다. 지로가 승리를 거두고 돈을 따는 첫 당구 시퀀스는 의기양양하고 허세가 넘친다. 지로가 돈을 모두 잃게 되는 두 번째 시퀀스는 스포츠 드라마처럼 긴장감으로 가득하다. 비슷한 촬영 방식을 통해 촬영했지만, 여유로운 지로의 표정과 긴장한 채 집중하는 지로의 표정이 전혀 다른 분위기의 두 시퀀스를 완성시킨다. 당구공으로 당구공을 맞추는 것으로 점수를 따는 당구의 룰 때문인지, 당구공의 움직임은 보험사기를 위해 자동차 사고를 내는 모습과 겹쳐 보인다. 매끄러운 촬영은 두 개의 다른 사건을 비슷한 선상의 에너지를 품은 것으로 간주하도록 유도한다. 


 <죽인 것은 누구인가>가 가지고 있는 이야기 자체는 크게 특별할 것이 없다. 자동차에서 부동산으로, 주식으로 소재만 바뀌었을 뿐 이야기와 메시지는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그 당시에도, 그전에도 비슷한 이야기로 회자되었을 이야기이다. 나카히라 코우 감독은 이 흔하고 뻔한 이야기를 타이트하게 밀어붙인다. 전쟁을 통과한 에이키치의 세대와 전후 세대인 나카가와와 지로의 이야기를 교차시키며 이야기에 결을 더하기도 한다. 운전하는 에이키치의 모습을 뒷좌석에서 담아낸 오프닝이나 당구장 장면처럼 힘주어 촬영한 영상들은 영화를 흥미롭게 만들어준다. <죽인 것은 누구인가>라는 다소 직설적이면서 영화를 궁금케 하는 제목에 걸맞은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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