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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Jun 26. 2017

샛길로 빠지는 감정선을 붙잡는 연기

 열여덟 살 고등학생 용순(이수경)은 학교 체육선생(박근록)과 사랑에 빠진다. 이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은 어릴 적부터 친구인 문희(장햇살)와 빡큐(김동영) 뿐이다. 어느 날 빡큐가 체육에게 다른 여자가 있다는 증거를 가져온다. 이에 용순은 문희, 빡큐와 함께 체육의 뒤를 캐보지만 누가 바람피우는 상대인지 찾아내지는 못한다. 설상가상으로 아빠(최덕문)는 엄마 없는 용순을 위한답시고 몽골에서 새엄마(얀츠카)를 데려온다. 신준 감독의 단편영화 <용순, 열여덟 번째 여름>을 장편화한 영화 <용순>은 정신없이 꼬여버린 용순의 여름을 담아낸다.


 영화가 그려내는 용순은 투박하고 설기지만 감정에 가장 솔직하던 시간을 보내고 있다. 병에 걸려 사망한 어머니와 그런 어머니에게 품은 애정을 보여주지 못한 아버지를 보여주며 시작한 영화는, 용순이 가지고 있는 애정결핍을 문희에게서, 체육에게서 받으려는 것처럼 묘사한다. 영화 내내 웃음을 보이지 않는 용순의 표정은 단순히 바람피우는 체육이나 갑자기 몽골인 새엄마를 데려온 아빠 때문만이 아니다. 어렸을 적부터 쌓여온 아빠의 무관심함, 아빠에게 마음의 벽을 두르고 접근하지 못하게 할 수밖에 없었던 용순의 상황이 열여덟 용순의 표정을 만들었다. 용순이 체육과 연애하면서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들이 흐르는 방향은 용순의 성격에 기인한다. 

 때문에 <용순>은 바람피우는 체육의 상대를 찾는 메인 플롯과 아빠가 데려온 새엄마와의 서브플롯으로 진행된다. 용순의 가족 이야기가 들어가는 서브플롯은 용순이 왜 이렇게 행동하게 됐는지에 대한 설명으로 작용한다. 이러한 구성은 용순의 이야기가 단순히 제멋대로인 사춘기 소녀의 이야기로만 남지 않도록 해준다. 동시에 아쉬운 점도 남긴다. 영화의 오프닝부터 용순의 성격을 만들어낸 중요한 인물로 아빠가 등장한다. 그러나 영화 내내 아빠는 출장 등을 핑계로 서사에서 사라진다. 아빠의 역할이 영화 자체에서 사라져 버리면서, 용순이 가진 트라우마를 깰 계기나 화해가 됐던 독립이 됐던 어떤 해결책이 만들어질 계기가 만들어질 기회 역시 사라진다. 영화 후반부에 가서야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누는 부녀의 관계는 너무 쉽고 편안한 결말을 맞이한다. ‘그래도 고생한 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주는 아빠의 마지막 대사는 너무나 통속적인 가부장제 속 아버지상만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그것에 대한 용순의 반응도 마찬가지이다. 아빠의 역할을 새엄마에게 대리하여 극을 진행하는 것은 결국 문제와 직접 대면하지 못하고 회피하는 태도로 느껴진다. 덕분에 후반부의 난장이 독특하게 다가왔지만.

 용순으로 출연한 이수경 배우의 연기가 영화의 개연성으로 작용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제목이 용순인 만큼 철저히 용순의 감정선을 따라가겠거니 생각했지만, 영화는 종종 빡큐에게 너무 많은 감정선을 내주기도 하고, 아빠의 입장을 대변해주기도 한다. 여기서 관객이 용순의 감정선에 집중할 수 있도록 붙잡아주는 것이 이수경 배우의 연기이다. 대부분 굳은 표정을 보여주는 용순이기에 표현의 폭이 넓지 않음에도 용순의 입체적인 모습을 만들어낸다. <용순>은 이수경이라는 배우를 통해 완성되었다고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차이나타운>이나 <특별시민> 등의 영화에서 짧지만 인상 깊은 모습을 보여주었던 배우이기에 차기작이 더욱 기대된다. 그의 친구 문희와 빡큐를 연기한 장햇살과 김동영 배우 역시 기대된다. 다만 체육을 연기한 박근록의 연기는 어딘가 아쉽다. 어딘가 감이 덜 잡힌 모습이랄까? 영화가 진행될수록 그런 답답한 모습이 캐릭터와 어느 정도 어울리기도 했지만, 전체적으로 아쉬움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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