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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Jun 27. 2017

비판의 대상과 동일해져 버린 영화

엠마 왓슨, 톰 행크스 주연의 영화 <더 서클>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트위터 등을 하나로 통합한 것 같은 SNS‘트루 유’라는 서비스를 개발한 회사 서클은 세계 최대의 IT기업으로 성장한다. 수도회사에서 임시직으로 일하던 메이(엠마 왓슨)는 친구 애니(카렌 길런)의 도움으로 꿈의 직장과도 같은 그곳에 입사하게 된다. CEO인 에이몬(톰 행크스)의 철학에 매료되고 여러 사건을 겪으면서 회사의 핵심적인 인물로 서게 된다. 그러던 중 우연히 만난 ‘트루유’의 개발자이자 서클의 창립자 타이(존 보예가)는 에이몬이 감추고 있는 시스템의 위험성에 대해 경고한다. 제임스 폰솔트의 영화 <더 서클>은 SNS에 매몰된,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경계가 허술해진 세상을 비판하는 수많은 작품과 같은 길을 걸으려는 영화이다. 개인의 사생활과 기술의 발전, 이것은 과연 민주주의에 도움을 주는 도구인지 사회를 파시즘으로 이끌어가는 추락인지에 대한 이야기는 끊임없이 이어진다. 멀리 보면 빅브라더로 유명한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부터영국드라마 [블랙 미러]의 몇 에피소드까지, 시대와 매체를 가리지 않고 쏟아져 나온 이슈이다. SNS라는 소재에 집중한 영화 <더 서클>은 앞선 작품들이 만들어낸 논점을 따라가 보려 하지만, 결과적으로 영화 스스로가 비판의 대상으로 삼은 소재들과 동일한 저열함과 천박함만을 드러낸다.

 영화는 메이에게 여러 사건들을 겪게 하며 이야기를 전개한다. 메이는 회사에 입사하기 전에 ‘트루 유’ 계정조차 쓰지 않았다. 그러던 중 고향 친구 머서(엘라 콜트레인)가 사슴뿔로 만든 샹들리에를 찍어 올리게 되고, 네티즌들은 머서를 “사슴 살인마”라며 공격하기 시작한다. 이에 상심한 메이는 몰래 카약을 훔쳐 물로 향했다가 짙은 안개로 인해 배와 충돌하고, 서클의 새로운 서비스 씨체인지를 통해 그를 지켜보면 누군가의 도움으로 구조된다. 그 사건 이후 에이몬의 눈에 띈 메이는 씨체인지를 상용화하기 위한 계획에 투입되고, 그와 부모님의 일상을 생중계하기 시작한다. 그러던 중 부모님의 사생활이 과하게 노출되는 사고가 발생한다. 그럼에도 메이는 씨체인지를 놓치지 않고, 서클의 서비스가 전 세계를 하나로 통합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의견을 개진해나간다. 이후 서클 서비스로 사람을 찾는 기술인 소울서처를 시연하는 도중, 연락이 끊긴 머서를 찾으라는 관중과 팔로워의 요구에 그를 찾게 되지만, 머서는 그를 찾아오는 사람들을 피해 도망가던 중 사고로 사망하게 된다. 이러한 과정들은 스마트폰 카메라나 드론, CCTV나 몰래카메라 시점의 화면들로 등장하고, 영상의 등장인물의 의지는 반영되지 않는 온라인-오프라인이 결합된 형태의 집단폭력으로 이어진다. 구름처럼 스크린에 뜨는 댓글들은 우리가 영화 밖에서 익숙하게 접하고 있는 댓글들을 고스란히 가져온 것 같다. <더 서클>은 이러한 과정을 통해 SNS에 매몰된 사람들의 생활과 개인정보를 수집하고 사생활을 통제해 이익을 얻으려는 기업을 비판하려 한다. 허나 위의 과정을 스펙터클로 활용하는 영화의 방식은 영화가 비판하고자 하는 대상의 행동과 크게 다르지 않다. 영화가 진행될수록 영화 속 영상들에 대한 불편함은 커지고, 도덕적 고민을 하려는 것 같으면서도 도덕적 측면에 대한 고민이 보이지 않는 태도에서 위선이 느껴지며, 결국 저열하고 천박하며 멍청한 몇몇 유투버와 BJ의 영상을 보고 있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느낌을 준다.

 영화의 결말부에 갈수록 이러한 느낌만 고조된다. 사회고발/비판 영화에서 쉽게 만나볼 수 있는 사이다 결말을 만들어내려는 영화는 결국 자충수에 빠지고 만다. 영화 마지막에 등장하는 메이의 폭로는 단지 에이몬의 몰락만을 가져올 뿐 영화 내내 이야기하던 위험한 시스템에는 털끝만큼의 흠집도 내지 못한다. 이를 도와주는 조력자 캐릭터인 타이는 오로지 이를 위한 소비적인 캐릭터로 등장하며, 영화의 주제의식을 전달하는 캐릭터처럼 등장했으면서 손쉽게 소비되고 사라진다. 빅브라더의 감시 화면처럼 등장하는 마지막 쇼트는 대체 무슨 생각을 집어넣은 것인지 궁금해진다. 영화 내내 깔아 놓은 온라인 기술 발전에 따른 민주주의의 방향성과 이것이 파시즘으로 흐르는 것에 대한 우려 등은 영화에서 사라진다. 결과적으로 영화가 만들어 냈어야 할 논의는 영화 안에서도 밖에서도 실종되고, 자극적인 스펙터클의 전시만이 남는다. 모든 것을 대사로 풀어가는 지루함이나 기능적이라고 하기에도 지루하고 소모적인 캐릭터들과 연기들 역시 아쉬웠지만, 소재를 다루는 영화 자체의 태도는 저열하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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