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가 7월 13일 개막작 <7호실>(2017)을 시작으로 7월 23일까지 개최될 예정이다. 58개국 289편(장편 180편, 단편 109편)이 상영되며, '알렉스 드 이글레시아: 판타스틱 영화의 거장', '무서운 여자들: 괴물 혹은 악녀' 등의 특별전까지 마련되어 있다. 국내 여러 영화제 중 개인적으로 가장 취향에 맞는 영화들을 상영하는 곳이기도 하다. 유혈낭자, 사지절단 그 이상의 수식어가 필요한 영화들을 극장 스크린과 사운드로 보고 들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창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올해도 예년처럼 특별전에 비해 신작 라인업이 아쉽다는 평이 조금씩 이어지고 있다. '전도연에 접속하다'나 '현실을 넘어선 감독: 홍기선'과 같은 특별전은 영화제 성격과 크게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럼에도 볼 영화는 많고, 국내에서 절대 개봉되지 않을 판타스틱한 영화들은 여전히 가득하다. 영화제 라인업이 공개되기 전부터 국내에 소개되기만을 기다리던 작품부터, 시놉시스만 읽고 빠져든 작품까지, 이번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기대되는 작품 5편을 골라보았다.
Choice1. <로우> (2016)
감독: 줄리아 뒤쿠르노
출연: Garance Marillier, Ella Rumpf
2016년 칸국제영화제에서 처음 소개되었고, 국내에는 이번 영화제를 통해 처음 공개되는 작품이다. 부모와 언니까지 모두 채식주의자인 가족과 함께 살고 있는 저스틴은 언니가 다니고 있는 대학 수의학과에 입학한다. 억지로 동물의 내장을 먹어야 하는 혹독한 신고식 이후 저스틴은 자신도 모르게 고기에 대한 강렬한 식욕을 느끼게 된다. 고기에 대한 식욕이 어떤 사건을 통해 인육에 대한 욕구로 이어지는, 카니발리즘을 다루고 있는 작품이다. 칸에 이어 토론토와 뉴욕, 로테르담까지 영화가 공개된 영화제들의 최고 화제작으로 이름을 올린 작품인 만큼 올해 부천에서 가장 빠르게 만나보고 싶은 작품이다.
Choice 2. <제인 도> (2016)
감독: 안드레 외브레달
출연: 올웬 캐서린 켈리, 브라이언 콕스, 에밀리 허쉬
시체 부검소를 운영하는 부자는 사망 경위가 불분명한 여성의 시체 부검을 의뢰받는다. 젊고 아름다운 외모의 시체에는 외상의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시체를 해부할수록 기이한 내상들이 드러난다. 부자는 사체가 지닌 비밀에 접근할수록 알 수 없는 공포감에 사로잡힌다. 기이하면서도 알 수 없는 이야기를 지닌 미스터리 호러 영화로, <트롤 헌터>로 이름을 알린 노르웨이의 감독 안드레 외브레달의 신작이다. 저예산이지만 놀라운 특수효과와 아이디어로 흥미로운 페이크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던 감독이기에, 이번 영화에선 또 어떤 신선함을 보여줄 수 있을지 기대된다.
Choice 3. <쿠소> (2017)
감독: 플라잉 로터스
출연: 조지 클린턴, 데이비드 퍼스
로스엔젤로스에 큰 지진이 난 후 살아남은 사람들은 별 볼일 없는 이야기를 방송하기 시작한다. 유명한 디제이이자 뮤지션인 플라잉 로터스의 장편 데뷔작으로, 올해 선댄스 영화제에서 많은 관객들이 상영관을 뛰쳐나가게 만든 더러운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제목부터 일본어로 '똥', '쓰레기'인 쿠소(くそ)인 데다가, X등급의 영화들이 상영되는 금지구역 섹션의 작품이다. 이번 영화제를 찾는 관객 중 자신의 비위를 시험해보고 싶다면 이 영화를 봐야 하지 않을까? 플라잉 로터스가 연출하는 작품인 만큼 음악 참여진도 화려하다. 플라잉 로터스 본인을 비롯해 에이펙스 트윈, 썬더캣 등 유명 뮤지션들이 영화음악으로 참여했다.
Choice 4. <78/52> (2017)
감독: 알렉산더 O. 필립
<점쟁이 문어 파울의 일생>(2012), <최신 좀비 가이드>(2014) 등 엉뚱 발랄한 다큐멘터리로 장르 영화 팬들에게 이름을 알려온 알렉산더 O. 필립 감독의 신작이다.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명작 <싸이코>(1960)의 샤워실 살해 시퀀스를 분석한 작품이다. <78/52>라는 제목은 3분여의 장면을 위해 준비한 셋업과 컷의 수이다. 이 전설적인 장면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후에 미친 영향은 무엇인지 탐구하는 영화로, 때로는 장난스럽기까지 한 재미를 겸비했다. 이 작품과 함께 히치콕의 <싸이코>와 앤서니 퍼킨스가 출연한 시리즈의 마지막 작품 <싸이코4>(1990)이 영화제에서 함께 상영된다.
Choice 5. <프리벤지> (2016)
감독: 엘리스 로우
출연: 엘리스 로우
임신 7개월 차인 미망인 루스는 뱃속의 아이가 시키는 대로 광적인 살인을 저지른다. 출산일이 다가올수록 더욱 자주, 더욱 잔인한 살인을 벌이게 되는 루스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영화의 감독이자 주연인 앨리스 로우는 실제 임신한 몸으로 영화를 촬영했다. 그의 광적인 카리스마를 담은 영화를 보는 것만으로도 흥미로운 영화일 것 같다. 시체스 판타스틱영화제 등 여러 영화제에서 수상한 작품이며, 엘리스 로우는 자신이 직접 주연과 각본을 맡았던 영화 <살인을 부르는 관광객>(2012)가 부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인연이 있다. 연출로써는 <프리벤지>가 그의 장편 데뷔작이다.
+Another Choice. [무서운 여자들: 괴물 혹은 악녀]
이번 영화제의 특별전 중 하나로 진행되는 [무서운 여자들: 괴물 혹은 악녀]에선 위의 9편의 영화와 특별상영으로 상영되는 김옥빈 주연의 <악녀>(2017), 김영애 주연의 <깊은 밤 갑자기>(1981) 등의 영화들이 상영된다. 쿠엔틴 타란티노가 <데쓰 프루프>(2007)을 통해 경배를 바친 러스 마이어의 <더 빨리 푸시캣, 죽여라 죽여>(1965), 아시아 호러 영화의 대표적인 캐릭터를 등장시킨 이토 순야의 <여죄수 사소리: 701호 여죄수 사소리>(1972), 돼지 피를 뒤집어쓰는 이미지로 유명한 브라이언 드 팔마의 <캐리>(1976), 문명비판적 태도의 작품인 김기영 감독의 <이어도>(1977), 존 카사베츠 감독의 걸작이자 추격 스릴러의 교과서적인 작품인 <글로리아>(1980), 인신매매단을 응징하는 어머니의 이야기이자 윤여정의 연기가 돋보이는 박철수 감독의 <어미>(1985), 존 워터스 감독의 호러 블랙코미디인 <시리얼 맘>(1997), 미이케 다카시의 초기 걸작 <오디션>(1999), 문명 속 남성의 폭력성을 비판하며 여성 괴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럭키 맥키의 <더 워먼>(2011)까지 다양한 시대와 국가의 작품이 선정되었다. 위 리스트의 작품은 어느 영화를 골라도 만족스럽게 관람할 수 있지 않을까? 최근 대두되고 있는 여성혐오와 젠더 문제에 대한 부천영화제의 고민이 엿보이는 특별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