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베일을 벗은 봉준호 감독과 넷플릭스의 <옥자>
*스포일러 포함
<옥자>를 수식하는데 가장 알맞은 말은 ‘희귀하다’는 단어일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봉준호 감독이기에 가능한 스케일로 이야기를 풀어가는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이야기를 준 블록버스터급으로 풀어낼 수 있고, 투자를 받아 결과물로 만들어낼 수 있는 감독은 그야말로 희귀하다. 거대 돼지와 함께 자란 소녀가 돼지를 찾기 위해 강원도 산골에서 뉴욕으로 향하는 여정을 틸다 스윈튼, 폴다노, 제이크 질렌할 같은 캐스팅과 다리우스 콘지 촬영감독 같은 스탭을 동원해 담아낼 감독이 또 누가 있을까? 꽤 오랜 기간 베일에 싸여 있던 것만큼 굉장히 독특한 이야기를 지닌 영화는 아니었지만, 한 프레임 안에 담기는 게 어색한 것들로 재미있는 영화를 만들어내는 재주만큼은 여전하다.
영화의 주제는 굉장히 명확하다. 루시 미란도(틸다 스윈튼)의 회사는 유전자 조작으로 만들어낸 슈퍼 돼지들을 식품 공급용으로 사육해 도살한다. 영화는 그러한 장면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비인간적인 실험 장면과 비위생적인 환경에서 사육되는 돼지들, 공장 컨베이어 벨트에 들어가는 재료처럼 도축되는 돼지, 그것으로 만들어진 소시지 등의 음식을 맛있게 먹는 사람들. 가축을 마치 공산품처럼 찍어내고 생명이 아닌 자본과 자원으로만 바라보는 시선이 영화 속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생명마저 자본화 해버리는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이 <옥자>에서가장 강렬하게 드러나는 지점이다. 영화 초반부 20여분 가량은 온전히 옥자와 미자(안서현)의 우정과 애정을 보여주는 데 쓰인다. 귀엽고 사랑스럽게 묘사된 옥자의 외양과 <이웃집 토토로>의 토토로와 메이가 평화롭게 지내는 모습을 연상시키는 장면들은 관객마저 옥자에 대한 애정을 품게 만든다. 그렇게 옥자에 대한 애정을 갖게 한 후, 옥자를 구하기 위해 뉴욕으로 향하는 미자를 따라가게 된다. 그렇게 맞이한 후반부 도살장 장면은 굉장한 충격을 준다.
영화는 옥자를 구하려는 미자와 이를 막으려는 루시 미란도의 단순 대결로 그려지지 않는다. 미자는 오로지 옥자를 다시 강원도의 집으로 데려가려고 할 뿐이고, 제이(폴 다노)와 레드(릴리 콜린스), 케이(스티븐 연) 등이 속한 동물보호단체 ALF는 옥자를 이용해 미란도의 실상을 폭로하려 한다. 옥자의 할아버지 희봉(변희봉)은 루시 미란도처럼 옥자를 돈으로 생각한다. 옥자를 사이에 둔 각자의 욕구가 뒤섞인 채 영화는 진행되고, 극 중 사이코패스로 불리는 루시를 제외하면 모두가 조금의 양면성을 지닌 회색지대의 인물로 그려진다. 다만 너무 많은 캐릭터가 등장하고 각자의 이익만을 쫓아가기에 캐릭터들이 납작해지는 모습은 조금 아쉬움을 남긴다. 특히 미란도 코퍼레이션의 얼굴로 등장하는 조니 윌콕스(제이크 질렌할)은 서사 진행에 있어 불필요한 캐릭터로 느껴진다. “I’m animal lover”라고 울부짖으며 옥자에게 실험을 자행하는 모순된 모습을 넣고 싶어서였을까? 오히려 분량을 조금 더 줄였더라면 짧고 강렬한 캐릭터로 남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반면 미자의 캐릭터는 흥미롭다. 여성 액션을 내세웠던 <악녀>의 정병길 감독은 <옥자>의 미자 캐릭터를 보고 여성 액션 캐릭터를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 배워야 한다. “<미래소년 코난>의 소녀 버전을 만들고 싶었다”라는 봉준호 감독의 인터뷰는 미자라는 캐릭터를 가장 정확하게 설명한다. 옥자와 함께 산에서 놀던 장면과 옥자가 처음 서울로 이송될 때 미끄러지듯 산을 타고 트럭을 뒤쫓으며 달려오던 장면은 액션 히어로로써 미자의 등장을 예고한다. 동시에 산골에 사는 ‘자연밖에 모르는 마냥 순수한 아이’ 같은 스테레오 타입도 존재하지 않는다. 문도(윤제문)의 노트북을 보고 “이거 레티나 디스플레이?”라고 묻는 장면은 미자의 캐릭터를 더욱 재미있게 만들어준다.
영화의 마지막, 루시의 쌍둥이 자매인 낸시 미란도(틸다 스윈튼이 1인 2역을 맡았다)는난장판이 된 루시의 계획을 처리하기 위해 나선다. 옥자를 포함한 슈퍼돼지들을 모두 도살해 소시지와 육포 등의 상품으로 만들 것을 지시한다. 이에 미자는 제이와 케이의 도움을 받아 도살장에 잠입해 이를 저지하려 한다. 옥자가 도축되려는 순간 미자는 낸시에게 거래를 요청한다. 모든 것을 돈으로, 자본으로 치환하여 바라보는 낸시에게, 희봉이 옥자의 값으로 받은 돈으로 산 황금돼지를 던지며 이것으로 옥자를 사겠다고 이야기한다. 환경 아나키즘을 추종하는 ALF과는 전혀 다른 노선이랄까. 옥자를 구하기 위해 결국 자본을 지불한다는 점에서 <설국열차>의 엔딩보다 더욱 비관적이다. 결국 강원도의 집으로 돌아간 미자는 <살인의 추억>의 박두만 형사나 <괴물>의 박강두처럼 사건이 종결된 뒤 미란도의 만행을 기억하는 남은 한 사람으로 남는다. <설국열차>의 남궁민수처럼 시스템 자체에 도전하는 인물이 되지 않고, 그렇게 될 생각도 없다. 때문에 <옥자>는 봉준호 감독의 첫 사랑영화이자 가장 비관적 인작품이다. <설국열차>와 어딘가 닮아 보이기 때문일까, 시스템 밖의 인물이 시스템을 뚫고 들어왔다가 다시 타협하고 나가는 과정은 그저 씁쓸하게만 느껴진다. 때문에 옥자와 미자의 해피엔딩을 보면서도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