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기를 포기한 <리얼>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제일 처음 들은 말은 어느 관객의 “좆같네 씨발”이었다. 감독 교체에 1년 이상 개봉이 지연되는 등 우여곡절을 겪고 개봉한 영화 <리얼>을 영화로 불러야 하는지 의문이다. 바로 한 주 전에 개봉한 <트랜스포머: 최후의 기사>는 영화라는 매체를 추락시키기 위한 영화였다면, <리얼>은 영화라는 매체 밖에 놓여야 하지 않을까? 115억의 제작비가 투입된 만큼 때깔 좋은 이미지들이(그나마 <트랜스포머>처럼 눈이 아프고 어지럽지는 않았다) 스크린을 가득 채우지만 영화적으로는 단 한 톨만큼의 필요성도 없고, 줄거리를 설명하는 행위는 <리얼>을 어떻게든 서사를 가진 창작물의 범주로 끼워 맞춰보려는 몸부림일 뿐이다. 해리성 인격장애를 소재로 삼았음에도 감독은 포털 사이트에‘해리성 인격장애’라는 7글자를 검색하기 귀찮았던 것 같다. 소재에 대한 몰지각함과 재능의 부재는 끔찍하게도 의미 없는 137분의 디지털 데이터 덩어리를 만들어냈다. 주연을 맡은 김수현을 비롯해 성동일, 이성민, 최진리 등의 배우들은 낭비되는 수준을 넘어서 능력을 부정당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수많은 카메오들은 그 존재가 삭제당한 것처럼 사라졌다. 끔찍하게 대상화된 <리얼> 속 수많은 여성들은 얼굴보다 다리와 엉덩이, 가슴과 허리가 더 많이 등장한다. 세 개의 챕터로 구성된 <리얼>은 시작-중간-결말의 3막 구조의 틀을 깨부수려는 듯 제멋대로 흘러간다. 아니, 의도적으로 깨부수려는 것이 아니라, 3막 구조에 맞춰서 플롯을 짜 놓았지만 감독을 비롯한 모두의 재량 부족으로 서사 자체가 없는 137분이 되어버린다. 액션 누아르를 표방했음에도 중고등학생의 극저예산 영화에나 나올법한 합의 액션이 등장한다. 후반부 피날레를 장식하는 슈퍼파워 액션은 <경성학교: 사라진 소녀들>에서 주란이 각성하는 순간보다 더 황당하고, 각성하는 순간의 묘사는 차라리 <디지몬 어드벤처>의 진화 장면처럼 그려진다. 발레 무용수가 만들었다는 마지막 발레 액션은 끔찍하기 짝이 없으며 아무런 맥락도 의미도 의도도 찾아볼 수 없다. 차라리 뮤직비디오 라면 이해가 됐을까? 봉준호 감독은 <옥자>를 국내에서 제작하면 500억 원의 제작비만큼 다른 한국영화들이 멈추기 때문에 해외자본을 투자받았다고 인터뷰했다. CJ CGV는 <옥자>가 극장 생태계를 파괴한다며 상영을 거부하고, <옥자>의 개봉일에 <리얼>을 개봉시켰다. 그러한 양보의 결과물 중 하나가 <리얼>이라면, 한국상업영화는 영화이기를 포기했음을 선언한 것이나 다름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