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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Aug 03. 2017

목격의 시선으로 담아낸 80년 광주

장훈 감독과 송강호의 신작 <택시운전사>

*스포일러 포함


 서울에서 택시를 모는 김만섭(송강호)은 아내와 사별하고 어린 딸과 단 둘이 생활을 이어간다. 사글세 10만원이 밀려 집주인에게 구박받던 그는 우연히 광주까지 장거리를 뛰면 10만 원을 주겠다는 외국인이 있다는 이야기를 주워듣는다. 그 외국인은 바로 일본에서 온 독일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토마스 크레취만), 동료 기자에게 광주의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이야기를 듣고 서둘러 가기 위해 택시를 부른 것이다. 영어도 잘 못하고, 80년 5월 광주의 상황도 잘 알지 못하는 만섭은 10만원만 바라보고 광주로 향한다. 우여곡절 끝에 광주에 도착한 만섭과 한츠페터는 계엄군이 포위한 광주의 모습을 목격하고 충격받는다. <택시운전사>는 서울에서 온 외지인, 해외에서 온 외국인의 시선으로 5.18 광주 민주화운동을 담아낸다. 1980년 5월 20일부터 첫 발포가 있던 21일까지의 1박 2일을 다룬 영화는 실제로 처음 광주의 이야기를 세계에 알린 위르겐 힌츠페터와 아직까지 자신의 실명을 공개하지 않고 김사복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택시운전사의 이야기를 그린다. 

 <택시운전사>의 이야기는 굉장히 전형적이다. 소시민적 주인공의 생활이 그려지는 전반부, 5.18을 목격하는 두 주인공을 담아낸 중반부, 만섭 홀로 광주를 빠져나왔다 힌츠페터를 데리러 다시 돌아가는 후반부, 영화를 보지 않았어도 예측할 수 있는 이야기대로 영화는 흘러간다. 택시운전사 김만섭의 소시민적 모습을 그려내는 전반부에서의 만섭은 “데모하려고 대학생 됐나”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그를 움직이는 동기는 어린 딸이며, 둘만의 작지만 행복한 삶을 영위하기 위해 열정적으로 택시를 몬다. 넉살 좋은 중년 아저씨로 그려지는 김만섭의 모습은 <변호인>, <괴물>, <효자동 이발사> 등 송강호의 필모그래피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여타 소시민적 캐릭터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137분의 긴 러닝타임 중에서 40여분의 분량을 차지하기에, 코믹하고 정감 가는 톤으로 그려진 전반부가 조금은 늘어지게 느껴지기도 한다. 

 만섭과 힌츠페터가 광주에 들어가게 되는 중반부는 광주의 사람들을 직접적으로 다루던 다른 영화들, <꽃잎>, <화려한 휴가>, <26년>과는 다른 느낌을 준다. <택시운전사>는 외부인의 눈을 통해 사건과 거리를 두며 그것을 목격하는 형식을 취한다. 힌츠페터는 일본을 경유해 한국으로 들어온 독일 공영방송의 기자이다. 만섭은 서울에서 평생을 살아온 서울촌놈이다. 영화는 외국인과 외지인, 두 외부인의 시선으로 5.18을 목격한다. 영화를 촬영하는 카메라-영화 속 외부인인 만섭과 힌츠페터의 눈-기자인 힌츠페터의 카메라라는 이중삼중의 렌즈를 거친 영화의 시선은 효과적으로 사건 자체와 목격자 사이의 거리를 두며 사건을 기록한다. 이러한 거리 두기와 목격의 시선은 관객이 5.18에서 느끼는 부채의식을 자극한다. 만섭과 힌츠페터가 광주역 광장 앞에서 음식을 나누어 먹고, 북을 치고 춤추는 광주시민들을 목격하는 장면은 지난 탄핵정국의 광장의 풍경을 반사적으로 떠올리게 한다. 이러한 목격은 손님을 태우고 광화문으로 향하는 만섭과 “김사복의 택시를 타고 변화된 대한민국을 돌아보고 싶다”는 실제 힌츠페터의 인터뷰가 등장하는 마지막 장면의 울림을 더욱 크게 만들어준다.

 하지만 <택시운전사>에는 중대한 결점이 있다. 만섭과 힌츠페터가 5.18에 직접 개입하게 되는 후반부에서 외부인의 시선이 무너진다는 점이 첫 번째 결점이다. 총에 맞아 쓰러진 시위대를 구하기 위해 택시를 몰고 돌진하는 만섭의 모습이 그려지는 순간 영화가 지켜온 외부인의 시선은 무너지고, 만섭과 힌츠페터 또한 광주의 내부인이 된다. 목격에서 체험으로 만섭의 역할이 전이되어 버리는 순간 영화는 동력을 잃어버린다. 5.18을 다룬 다른 영화들과의 차이점도 사라진다. 많은 시간이 흐르지 않은 데다가 여전히 첨예한 쟁점으로 남아있는 역사적 사건을 목격이 아닌 체험적으로 다루게 될 때, 사건 자체를 영화적 스펙터클로 소비하게 되는 함정에 빠지기 쉬워진다. 영화의 두 번째 큰 결점이 여기서 비롯된다. 만섭이 사건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게 되는 순간 영화는 사건을 스펙터클화 시킨다. 계엄군의 총에서 탄피가 빠져나오는 것을 슬로 모션으로 잡는 장면과 탈출 장면에서 등장하는 카체이싱 두 장면에서 이것이 크게 두드러진다. 학살의 순간에서 탄피는 이미 총탄이 발사되었음을 의미한다. 탄피가 빠져 나오는 쇼트를 슬로 모션으로 먼저 보여주고, 이에 대한 반응 쇼트로 총에 맞아 쓰러지는 시민을 보여주는 것은 희생자의 모습을 영화적 스펙터클로 재현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쓰러지는 시민만을 보여줬다면 모를까, 계엄군의 탄피를 그 대상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이러한 성격이 더욱 두드러진다. 후반부 택시들과 보안사가 벌이는 카체이싱은 137분의 러닝타임 중 가장 영화적 스펙터클을 강조한 시퀀스이다. 시퀀스의 물리적 분량도 과하게 많을뿐더러, 차에 액션캠을 달아 충돌의 순간을 담아내는 쇼트는 액션 영화에서나 볼법한 장르적 스펙터클이다. “평범한 사람들의 도움과 희생”을 담아내고 싶었다는 장훈 감독의 의도는 느껴지지만, 불필요한 스펙터클은 자칫하면 불쾌함으로 이어질 수 있다. 바로 직전에 개봉한 <군함도>가 저지른 끔찍한 실수가 그러했다. 5.18의 모든 것이 남성에 의해 이뤄진 것이 아님에도 여성은 누군가의 가족이거나 계엄군에 맞아 쓰러지는 희생자로만 등장한다는 점 또한 아쉽다.

 <택시운전사>는 위와 같은 결함을 송강호의 탁월한 연기로 상쇄시킨다. 익숙하고전형적인 이야기 속에서도 송강호의 연기는 언제나 압도적이다. 조용필의 ‘단발머리’를 부르며 등장한 80년대의 김만섭이 손님을 태우고 광화문으로 향하는 2003년의 김사복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힘 있게 이끌어간다. 결함이 완전히 지워지는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영화가 담아내려는 관객의 부채의식이 영화 마지막까지 유지될 수 있는 것은 송강호의 역할이 크다. 그와 함께 힌츠페터를 연기한 토마스 크레취만의 연기 역시 목격의 서사에서 큰 힘을 발휘한다. 유해진, 류준열 등 여러 조연배우들의 연기 또한 80년의 광주를 그려내는 핵심적인 역할을 해내며, 잠시 등장하지만 중요한 지점을 잡아내는 엄태구의 연기는 그의 최근 출연작 중 가장 좋은 모습을 보여준다. 외부인의 시선을 통해 사건을 목격하는 형식을 끝까지 지켜내지 못하고 무너진 것이 아쉬움으로 남지만, 탄핵정국의 광장을 거친 현재의 관객이 80년 5월 광주의 사람들에게 가지고 있는 부채의식을 이야기하는 첫 영화로써 기본적인 만족감은 보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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