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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Aug 25. 2017

엿듣고 싶었던 이야기는 이게 아니었는데...

김종관 감독의 신작 <더 테이블>

 한 카페, 한 테이블, 하루 동안 그곳을 스쳐 지나간 4쌍의 인연들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한다. 스타가 되어 전 애인 창석(정준원)과 만나게 된 유진(정유미), 하룻밤을 같이 보낸 뒤 오랜 시간이 지나 다시 만난 경진(정은채)와 민호(전성우), 가짜 결혼으로 가짜 모녀가 된 은희(한예리)와 숙자(김혜옥), 결혼을 앞에 두고 전 애인 운철(연우진)과 다시 만난 혜경(임수정). 네 개의 에피소드는 하나의 공간을 공유하며 진행된다. 각 에피소드와 인물이 하나로 엮이는 일은 없지만, 통일된 공간과 분위기는 마치 관객이 카페 주인이 되어 손님들의 이야기를 주워듣는 것과 같은 기분을 받게 한다. 마치 단편영화 네 편을 보는 것처럼 이어지는 70분의 러닝타임은 하나의 테이블을 사이에 둔 8명의 이야기로 진행된다. 문제는 대부분의 이야기들이 흥미롭기는커녕, 정유미/정은채/한예리/임수정이라는 네 배우를 캐스팅하고선 남자들의 이야기를 받아주는 역할로 소비해버리기에 도리어 짜증이 나버린다는 것이다.

 첫 이야기는 유명한 스타 배우가 된 유진이 직장인이 된 전 애인 창석을 만나는 이야기이다. 유진이 연예인이 된 이후 처음 만나게 된 둘은 어색하게 이야기를 나눈다. 대화가 진행되면서 창석이 유진을 만나게 된 이유가 드러난다. 유명한 배우가 된 유진이 자신의 전 애인이었으며, 인증샷을 찍어 직장동료를 비롯한 사람들에게 자랑하기 위해서이다. 때문에 에피소드는 유진의 캐릭터를 만들어내는데 집중하지 못하고, 유진과 창석의 간단한 전사만을 제시한 채 창석의 질문에 반응하는 유진의 모습만을 보여준다. 정유미라는 배우의 연기와 존재감은 남성 캐릭터의 대사에 리액션만을 보이며 소진된다. 경진과 민호의 에피소드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하룻밤을 같이 보낸 뒤 장기간 여행을 떠난 민호는 한국으로 돌아와 경진과 재회한다. 어색한 자리에서 대화는 경진이 일방적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는 것뿐이다. 앞선 에피소드와 마찬가지로, 정은채의 캐릭터는 간단한 전사만 소개된 뒤 남성 캐릭터의 이야기에 리액션을 하는 것으로 소비된다. 두 에피소드에서 유진과 경진의 전사가 드러나는 부분마저 남성 캐릭터의 대사를 통해서이다. 때문에 두 여성 캐릭터는 그들의 전사만이 스크린에 남을 뿐, 캐릭터로써 존재한다고 말하기 애매한 상황으로 남게 되고, 목적이 뚜렷한 두 남성 캐릭터의 발언에 대한 리액션만을 담당하게 된다. 결혼을 앞둔 혜경이 운철과 만나는 마지막 에피소드도 크게 다르지 않다. 혜경이 대화를 이끌어가는 듯 보이지만, 결과적으로 모든 선택권을 가지는 것은 운철이다. 때문에 세 에피소드는세 명의 여성 배우를 내세웠음에도 남성 캐릭터의 이야기로 진행된다.

 은희와 숙자, 한예리와 김혜옥이 등장하는 세 번째 에피소드는 4개의 에피소드 중 유일하게 캐릭터라고 할 수 있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가짜 결혼을 통해 돈을 버는 은희는 가짜 엄마 역할을 연기해줄 숙자를 만나 계획을 전달한다. “이벤트는 두 가지, 하나는 상견례, 하나는 식”이라는 대사를 주고받으며 작당모의를 하는 두 인물의 모습은 케이퍼 무비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죽은 엄마의 이름을 써달라고 부탁하는 은희, 식을 올리는 날짜가 자신의 죽은 딸의 결혼기념일과 같다고 말하는 숙자, 두 캐릭터는 자신의 내적인 이야기를 하나씩 주고받는다. 은희와 숙자의 대화 중에 4개의 에피소드가 흘러가는 동안 유일하게 두 인물의 시선이 서로의 시선과 직선 방향으로 충돌하는 장면이 나온다. 한쪽이 다른 한쪽의 눈을 피하던 다른 세 쌍의 인물들과는 달리, 은희와 숙희의 시선은 정확하게 서로의 눈을 바라본다. 정확하게 180도 축에 걸쳐 두 인물의 옆얼굴만을 보여주는 장면은 케이퍼 무비의 은밀한 작당모의를 연상시킴과 동시에, 그만큼 내밀하게 서로의 이야기가 오가고 있음을 드러낸다. 어느 한 쪽의 인물로 기울어진 상태의 다른 에피소드와는 다르게, 은희와 숙자는 동등한 위치의 동료로서 각자의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가짜 모녀에서 유사 모녀관계로 발전하려 한다. 때문에 네 에피소드 중에서 유일하게 전사가 캐릭터를 구축하는 요소로 작동하며, 한예리와 김혜옥 두 배우의 연기는 소모되지 않고 시너지를 만들어낸다.

 결과적으로 <더 테이블>은 4개의 단편을 묶은 옴니버스의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같은 공간을 공유한다는 점 이외에 통일성도 없고, 은희의 에피소드를 제외하고선 지루하고 (관객에 따라) 짜증 나는 이야기들로 채워져 있다. 개별적인 단편영화라고 생각해도 아쉬운 캐릭터들이 등장하고, 4명의 여성 배우들을 전면에 내세운 마케팅에 비해 남성 캐릭터의 목적에 반응하는 여성 캐릭터들만이 등장한다는 점에서 소모적이기만 하다. 주인공 캐릭터라는 구심점 하나로 세 개의 이야기를 묶어 풀어내던 김종관 감독의 전작 <최악의 하루>와는 달리, <더 테이블>의 캐릭터는 전사로써만 존재하기에 얇고 흥미가 떨어진다. <최악의 하루>에 이어 다시 한번 거짓말을 직업으로 삼는 은희 캐릭터(물론 두 캐릭터는 이름만 같다)를 연기하는 한예리와 김혜옥 배우의 에피소드만이 빛을 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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