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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Aug 24. 2017

전자담배 뭐가 좋은지는 잘 알겠는데, 그래서 뭐요?

EBS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상영작 <베이프 웨이브>

 SF영화 속 미래 세계의 주인공들은 왜 아직도 전자담배 대신 연초를 태울까? 뜬금없게 느껴지는 사이버펑크 스타일의 장면으로 시작하는 <베이프 웨이브>는 얀 쿠넹 감독의 이와 같은 질문에서 시작한다. 그는 3년째 전자담배를 사용하고 있다. 20년 넘게 연초를 피워온 애연가였지만, 전자담배를 접하고 난 뒤 연초를 태우지 않는다. 영화에 등장하는 전자담배 애호가들은 전자담배에는 체내에 축적되는 타르 등의 물질이 없어 연초와는 다르게 건강을 해치지 않는 제품이라고 이야기한다. 영화의 초중반부는 얀 쿠넹 감독이 전자담배를 이용하는 자신과 주변 사람의 인터뷰를 통해 전자담배의 장점을 설명하고, 캘리포니아에서 열리는 전자담배 박람회에 찾아가 전문가들을 만나며 전자담배 산업의 가능성을 이야기하는데 할애한다. 현란하고 속도감 있는 편집, 자신의 VFX 회사를 보유하고 있는 감독인 만큼 다양한 애니메이션과 특수효과를 동원한 영상, 베이퍼웨이브(Vaporwave)를연상시키는 소위 힙한 영상들(제목도 전자담배-Vape를 사용한 말장난일 것이다)이 가득 등장한다. 전자담배의 장점을 설파하고, 거대한 산업으로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을 이야기하는 초반부의 현란한 영상은 꽤나 효과적이다. 미국, 캐나다, 프랑스, 한국 등 여러 국가 사람들의 “가족이나 친척, 친한 지인이 흡연으로 유발되는 질병으로 인해 사망했고, 그래서 나는 인체에 해가 없는 전자담배를 피우게 되었다”는 간증이 이어진다. 흡연자라면 “나도 한 번 피워볼까?”라는 생각이 절로 들게 된다.

 그러나 영화 중후반부에 전자담배 산업이 정부의 규제와 기존 담배 대기업들의 영향력으로 인해 억압당하고 있음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넘어가는 순간 영화가 무너진다. 현란한 영상들은 지루해졌을뿐더러 대부분 정보전달의 기능은 수행하지 못한다. <베이프 웨이브>는 시각효과를 대거 이용하는 다큐멘터리이지만, 대부분의 정보전달은 인물들의 인터뷰를 통해서 전해진다. 수많은 시각효과는 대부분 자극과 조롱의 요소로 사용된다. 전자담배를 규제하려는 보건부 장관이나 담배회사 등에게 가운뎃손가락을 날리는 것 이외의 기능은 사실상 없다. 그리고 이를 위해 여장을 하고 여성 보건부 장관을 조롱한다던가 하는 여성혐오적 장면들이 이어진다. 이러한 장면은 영화 내내 이어지는 백인 남성 특유의 마초적인 하위문화를 끌어 온 장면들과 맞물려 불쾌감을 준다. 얀 쿠넹의 다른 영화들이 들었던 ‘겉멋만 잔뜩 든 영화’라는 평이 <베이프 웨이브>에도 일정 부분 적용된다.

 영화는 또한 도입부에서 가져와 사용한 사이버펑크 장르의 오리엔탈리즘을 고스란히 답습한다. 때문에 아메리칸 인디언을 비롯해 담배를 전통적인 치료제로 사용하던 사람들이, 전자담배를 통해 같은 효과를 누린다는 마지막 장면 또한 백인이 비백인 주민에게 가지는 엑조티즘이 반영된 시선이 담겨있다. 영화의 인터뷰이로는 당연히 백인 남성뿐만 아니라 백인 여성, 흑인 남성, 흑인 여성, 동양인 남성, 히스패닉계 여성 등 다양한 인종과 젠더의 사람들이 등장한다. 그들 모두가 전자담배를 이용하고 액상을 개발한다는 당연한 이유 때문이다. 그러나 얀 쿠넹 감독이 영화 내내 견지하는 시선은 그러하지 못하다. 영화의 후반부가 설득력을 잃어버리는 것은 단지 불필요한 자극의 포화상태 때문만은 아니다. 감독은 전자담배라는 신문물을 전파하기 위해 애쓰는 제 1세계 선교사와 같은 시선을 견지한다. 결과적으로 <베이프 웨이브>는 “전자담배 뭐가 좋은지는 잘 알겠는데, 그래서 뭐요?”라는 반응을 이끌어내는 작품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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