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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Sep 04. 2017

20세기와 그 시대를 통과하고 살아간 여성

아네트 배닝/그레타 거윅/ 엘르 패닝의 <20세기 여성>

*스포일러 포함


 도로시아(아네트 베닝)는 남편과 이혼하고 아들 제이미(루카스 제이 주만)와 함께 산다. 도로시아는 집의 방 몇 개를 내놓아 셰어하우스로 이용한다. 페미니스트이자 사진작가인 애비(그레타 거윅)와 뉴에이지에 빠진 목수 윌리엄(빌리 크루덥)이 도로시아의 집에서 함께 살아간다. 제이미와 어릴 적부터 절친한 친구였던 줄리(엘르 패닝)는 도로시아의 집에 살다시피 하는 단골손님이다. 어느 날 도로시아는 애비와 줄리에게 제이미가 잘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요청한다. 마이크 밀스의 <20세기 여성>(<20th Century Women>이라는 원제를 <우리의 20세기>라는 개봉명으로 바꾼 것에 반대하기에 <20세기 여성>으로 표기한다)은 도로시아와 그의 집에서 살아가는 제이미, 애비, 그리고 줄리의 이야기를 그려낸다. 그들이 살아가는 1979년의 산타바바라의 풍경과, 20세기의 이야기지만 현재에도 유효한, 시대를 관통하는 주제의식은 치밀하게 짜인 각본과 형식을 통해 전달된다. 

 도로시아는 1924년에 태어났다. 비행기 파일럿이 되고 싶었던 그는 2차 세계대전이 터질 무렵 비행학교에 지원해 훈련을 받지만 전쟁이 끝나 파일럿이 되는데 실패한다. 적성을 살려 항공회사에서 일하던 그는 남편이 될 사람을 만나 결혼하고 제이미를 낳은 뒤 이혼한다. 그는 직장을 계속 다니면서 제이미를 양육한다. 전시에 노동자가 되어 경제를 뒷받침하고, 전후에 해고당해 돌봄 노동자가 되어버린 다른 여성들과는 달리, 도로시아는 자신의 적성을 찾아 행동했고 전후에도 노동을 이어간다. 헤비스모커이지만 건강에 덜 해롭다는 샬럿 담배를 피우고, 제이미가 조퇴를 원하면 조퇴 사유를 써주는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가부장제 체제에 억눌려 살아가는 인물이 아닌, 자신의 성격과 생각이 확실하게 드러나며 주체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하는 인물이 도로시아이다. 동시에 제이미가 ‘남성성’을 획득한 성인 남성으로 자라나길 바라는, 어쩔 수 없이 가부장제를 내화한 인물이기도 하다. 도로시아가 애비와 줄리에게 제이미를 도와달라고 부탁하는 것에는 이러한 저의가 깔려있다.

 애비는 1955년에 태어났다. 사진작가인 그는 뉴욕의 예술학교 출신이다. 교수와 사랑에 빠져 시간을 보내던 그는 자궁경부암에 걸린 것을 알고 산타바바라로 넘어오게 된다. 스투지스나 블랙 플래그 같은 하드코어 펑크 밴드의 음악을 사랑하는 펑크족인 그는 도로시아와 제이미, 줄리를 펑크 클럽으로 데려가기도 한다. 그는 불타오르다가도 언제든지 꺼질 수 있는 불꽃처럼 빨간 머리를 하고 있다. 암이 신체의 다른 부위까지 전이되었는지, 수술 경과에 대한 불안함을 안고 영화에 처음 등장한 그는 자신의 24시간을 사진으로 기록하기도 하고, 자신의 모든 소지품을 사진으로 남기려고 하기도 한다. 도로시아의 표현대로라면 ‘하드코어 페미니스트’인 애비는 제이미를 도와달라는 도로시아의 부탁을 받고, 제이미에게 여러 페미니즘 도서를 준다. 보스턴여성건강서공동체에서 출간한 『우리 몸, 우리 자신』(Our Bodies, Ourselves), 로빈 모건의『자매애는 강하다』(Sisterhood Is Powerful) 등의 책이 영화에 등장한다. 제이미는 이 책들을 읽고 맨박스와 그 밖의 경계에 걸쳐지는 인물로 성장한다.

 줄리는 1962년에 태어났다. 심리상담치료사 어머니를 둔 그는 어릴 적부터 어머니가 운영하는 십대 대화상담 프로그램에 반강제로 참여하게 된다. 일찍이 이혼한 어머니는 한 남성과 재혼하고, 줄리에겐 여동생이 생기게 된다. 제이미가 학교에서 만난 가장 친한 친구인 줄리는 종종 제이미의 방으로 몰래 들어가 한 침대에서 잠을 자곤 한다. 그러나 둘이 섹스를 하지는 않는다. 그는 섹스가 우정을 망칠 것이라 말하며 섹스를 거부한다. 하지만 줄리는 다른 십대들과는 섹스를 즐긴다. 남자들과 자면 어떤 기분이냐는 제이미의 질문에 “50%는 기분 나빠”라고 답하는 줄리는 “나머지 50%는 좋잖아”라며 답변을 마무리한다. 줄리는 애비처럼 페미니즘을 공부하고 실천하려는 사람은 아니지만, 자신이 몸과 행동의 주체로써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는 사람이다. 때문에 영화 후반부 등장하는 지미 카터의 ‘Crisis ofConfidence’ 연설 이후 이어지는 식사 자리에서 등장하는 애비의 페미니스트 모먼트에 이어 줄리는 자신의 성경험을 많은 사람이 모인 자리에서 이야기한다. 2세대 페미니즘을 이론적으로 배워 체득한 사람이 애비라면, 줄리는 경험적으로 이를 체득한 인물로 그려진다. 때문에 줄리는 애비와 함께 제이미에게 섹슈얼리티를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알려주게 된다.

 <20세기 여성>은 이렇게 세 여성을 묘사하고, 그들에게 영향을 받는 한 십대 남성을 그린다. 영화는 전쟁을 겪은 20세기 초반에 태어난 여성과, 전쟁 이후 페미니즘과 펑크 문화 한복판에 존재하는 여성을 통해 20세기라는 한 시대를 결산하고, 시대를 통과하는 여성들과 그들을 통해 성장하는 남성을 그린다. 전체적인 스토리의 얼개만 보면 도로시아, 애비, 줄리가 제이미의 어머니 역할을 분담하는 성장영화처럼 보인다. 그러나 <20세기 여성>은 놀랍도록 모성애를 영화의 주제에서 배제시킨다. 영화의 오프닝에서 불타는 차량이 보인다. 이혼한 도로시아의 남편이 남긴 유일한 흔적이다. 영화는 도로시아의 가족에서 남성성의 흔적을 불태우면서 시작한다. 때문에 도로시아는 윌리엄을 통해 남편/아버지/남성성의 부재를 채워 제이미를 성인 남성으로 성장시키려 하지만, 제이미가 이를 거부하며 실패하게 된다. 때문에 애비와 줄리에게 도움의 손길을 요청하게 되는 것이다. 제이미는 세 여성의 영향을 흡수하는, 혹은 셋의 모습을 거울처럼 비추는 존재로써 영화에 위치한다. 

 이러한 구도를 더욱 명확하게 해주는 것이 내레이션이다. 영화의 도입부는 산타바바라 인근의 바다를 비추며 시작해 불타는 도로시아의 자동차로 이어진다. 여기서 등장하는 내레이션은 도로시아의 목소리로 시작했다가 어느 순간 제이미의 목소리가 끼어든다. 한두 줄씩 번갈아 가며 내레이션을 하는 두 인물의 목소리로 영화 대부분이 이어진다. 그리고 이어지는 것은 도로시아와 제이미, 애비, 줄리의 전사를 각 캐릭터의 파트를 나눠 설명하는 영화의 전반부이다. (윌리엄의 전사도 내레이션을 통해 설명이 되지만, 따로 자막이 등장하며 별개의 파트가 주어지지 않는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제이미와 윌리엄, 즉 남성 캐릭터의 전사를 설명하는 내레이션은 도로시아의 목소리이고, 도로시아와 애비, 줄리의 전사를 설명하는 내레이션은 제이미의 목소리라는 것이다. 도로시아는 제이미의 성장을 위해 윌리엄이라는 남성을 끌어들인다. 그는 주체적인 개인으로써 존재하는 인물이지만 제이미가 가부장제적 남성성을 지닌 성인으로 성장하 길 바란다. 그러나 제이미가 보고 들으며 자란 것은 세 여성의 이야기이다. 제이미의 목소리로 세 여성 캐릭터의 전사를 설명하는 내레이션은, 그가 어쩔 수 없는 시대/사회 배경 속에서 맨박스의 갇힌 모습을 드러낼지라도 그 밖의 존재에게서 영향받으며 전혀 다른 개인으로 성장한다는 것을 굉장히 직접적으로 표현한다. 

 그렇기에 <20세기 여성>의 서사는 부재하는 부성애를 모성애로 대체하려는 시도도 아니고, 남성성을 여성성으로 뒤바꾸려는 시도도 아니다. 진로/인간관계/섹슈얼리티/문화 등 삶의 많은 영역에서 남성성을 제거하고 제거된 남성성을 다시 채워줄 남성 캐릭터 또한 부재시키면서(윌리엄이 존재하지만 그가 뉴에이지 사상에 빠져 있고, 그에게 할당된 파트가 없다는 점에서 그는 제이미가 아닌 도로시아와 애비의 캐릭터를 상대하는 캐릭터로 존재한다), 세 명의 여성 캐릭터가 주는 영향력으로 제이미라는 캐릭터를 채운다. 때문에 제이미의 성격은 남성성/여성성의 이분법으로 구분되지 않는 어떤 회색지대에 속한 인물로 탄생한다. 세세하게 짜인 도로시아, 애비, 줄리의 세 캐릭터의 전사와 그것에서 비롯된 성격이 이러한 서사를 가능케 한다. 동시에 세 명의 캐릭터가 시대를 사는 남성이 아닌 여성 캐릭터이기에 가능하고 성립하는 이야기이다. 때문에 <20th CenturyWomen>에서 ‘Women’을 탈락시킨 <우리의 20세기>라는 개봉명은 (원제가 그랬다면 모를까) 영화의 주제를 가리는 잘못된 작명이다. <20세기 여성>은 어디까지나 20세기를 살아온 여성들의 이야기이다. “1999년 3월 폐암 판정을 받고 사망한다”는 내용의 영화 중반부 갑작스레 튀어나오는 도로시아의 내레이션은 ‘20세기’와 그 시대를 통과하고 살아간 ‘여성’이라는 존재를 부각한다. 영화가 <20세기 여성>이라는 제목에 이렇게도 충실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극장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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