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카리오><로스트 인 더스트>의 테일러 쉐리던 신작 <윈드 리버>
가축을 잡아먹는 포식자를 사냥하는 사냥꾼 코리(제레미 레너)가 주변에 아무것도 없는 설원에서 한 소녀의 시체를 발견한다. 폐가 터져 피를 토하며 사망한 소녀의 이름은 아메리카 원주민인 나탈리(켈시 초우), 코리의 친구인 마틴(길 버밍햄)의 딸이다. 라스베가스에서 급파된 FBI 요원 제인(엘리자베스 올슨)이 사냥꾼이기에 지역을 잘 알고 있는 코리와 함께 나탈리의 죽음을 조사하게 된다. 화창하다가도 살인적인 눈보라가 몰아치는 와이오밍의 아메리카 원주민 보호구역, 살인보다 시체를 찾는 것이 더 어렵고 혹독한 날씨의 지역에서 코리와 제인은 나탈리의 죽음에 얽힌 비밀을 파헤친다. <윈드 리버>는 드니 빌뇌브의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 데이빗 맥킨지의 <로스트 인 더스트> 등의 각본을 쓴 테일러 쉐리던이 각본에이어 직접 연출을 맡은 첫 작품이다. 그렇기 때문일까, 사적 복수의 감정을 품은 남성 주인공과, 임무를 위해 타지에 도착한 정부 수사기관 요원 여성 주인공이 등장한다는 점에서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가, 새하얀 눈밖에 없는 배경과 자본의 착취가 대물림되는 지역에서 살아가는 아메리카 원주민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로스트 인 더스트>가 연상된다. <로스트 인 더스트>의 음악을 담당한 닉 케이브와 워렌 엘리스가 <윈드 리버>의 음악을 담당하기도 했다. 테일러 쉐리던은 이번 영화를 통해 칸 국제영화제 비경쟁부문인 주목할만한 시선 부문 감독상을 수상했다.
<윈드리버>의 이야기는 백인에 의한 원주민 착취와, 오랜 시간이 흘러 착취한 땅에 정착한 백인들이 자본에 의해 다시 착취당하는 <로스트 인 더스트>의 이야기의 반복이자 더욱 심화된 버전이다. 흙먼지만 날리는 텍사스에서 눈보라가 몰아치는 와이오밍으로 장소를 옮긴 영화는 아메리카 원주민 보호구역을 영화의 배경으로 설정함으로써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좀 더 명확하게 한다. 주인공인 코리는 원주민 여성과 결혼한 사람이고, 극 중 살해당한 나탈리와 유사한 범죄를 통해 딸을 잃은 사람이다. 원주민 소녀를 피해자로 상정하고, 그를 살해한 것이 기업에서 파견된 백인 노동자로 설정한 것은 <로스트 인 더스트>의 백인 은행강도의 총에 맞아 죽은 원주민계 미국인 텍사스 레인저 알베르토(심지어 <윈드 리버>의 마틴을 연기한 길 버밍햄이 연기한다)의 변형이다. 결과적으로 <윈드 리버>와 <로스트 인 더스트> 두 작품 모두 백인에 의해 착취당하고 전락한/보호구역 안에 갇힌 원주민과 그 지역에 몇 십 몇 백 년간 살아 정착한 백인이 현재 시간대에서 자본에 의해 다시 착취당하는, 그 안에서도 원주민들은 피해자로서 존재하게 되는 모습을 그려낸다. 멕시코 국경지대에서의 생존투쟁과 그곳의 카르텔이 어떻게 유지되는지 그려냈던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와 <로스트 인 더스트>, <윈드 리버>를 테일러 쉐리던의 현대 미국 개척사 삼부작으로 불러도 되지 않을까? 원주민을 적으로 정의하고 착취하던 초기 서부극과 그것에 대한 반성을 담은 수정주의 서부극의 틀을 빌려와 만들어낸 테일러 쉐리던의 영화들은 계속되는 착취의 연결고리를 담아낸다.
그렇기에 <윈드 리버>에서 아쉬운 점은 아메리카 원주민 보호구역이 배경이고, 피해자마저 원주민 소녀로 설정되어 있지만 결국 주인공은 백인이라는 점이다. 물론 100년 이상 여러 세대에 걸쳐 윈드 리버 지역에 살아온 인물이고, 원주민 여성과 결혼해 두 명의 자식을 낳은 인물이지만, 결과적으로 백인의 정체성을 가진 채 원주민 청년들과 묘한 긴장관계를 보이기도 하는 코리라는 인물을 원주민 보호구역 속 공동체를 대변하는 인물로 내세울 수 있는지는 의문이 든다. 코리의 입을 통해서 전해지는 원주민 보호구역 정책의 폐쇄성, 혹독한 날씨만이 존재하는, 그의 대사대로라면 “눈과 지루함 밖에 남지 않은”지역을 벗어날 수 없는 사람의 성질이 코리라는 백인 캐릭터에 온전히 담긴다는 테일러 쉐리던의 판단에는 조금 아쉬움이 남는다. 물론 제레미 레너의 연기는 뛰어났고 흠잡을 곳 없는 호연을 선보였지만, 연기로 넘어설 수 없는 부분에 있기에 아쉽다.
<윈드리버>는 집단 성폭행이라는 소재를 다루고 있지만 최근의 몇몇 한국영화가 크게 지적당하고 있는 부류의 비윤리적인 재현을 하지 않는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일방적인 폭력과 범죄를 영화 속에서 전시하고 포르노로써 소비하는 최근의 몇몇 한국영화와는 달리, <윈드 리버>는모범적으로 범죄의 장면을 직접적으로 묘사하지 않으면서 오히려 더 깊은 감정을 이끌어낸다. 영화는 범죄를 적나라하게 묘사하는 대신 피해자 시신의 발견, 범죄의 상황적 맥락 제시, 남은 사람들의 감정적 반응 세 가지 만으로 집단 성폭행이라는 악마적인 범죄를 묘사한다. 불필요한 신체 노출도, 폭력의 전시도 없다. 젠더 감수성이 높은 영화라고 할 수는 없지만, 폭력과 범죄를 포르노처럼 전시하지 않은 채 묘사하는 방식의 윤리의식에 대해선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이러한 방식의 범죄 묘사는 결과적으로 영화의 긴장감을 끌어올리고, 영화 전체의 형식과 더욱 알맞은 클라이맥스를 만들어낼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