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영화제 감독상 수상작, 소피아 코폴라의 <매혹당한 사람들>
남북전쟁이 한창이던 1964년, 판스워스 여학교에 다니던 학생 에이미(우나 로렌스)는 포탄 파편이 다리에 박히는 부상을 당한 북부군 존(콜린 파렐)을 발견하고 학교로 데리고 온다. 전쟁으로 대부분의 학생이 떠난 학교에는 교장인 미스 마사(니콜 키드먼), 선생인 에드위나(커스틴 던스트), 에이미와 알리시아(엘르 패닝)를 비롯한 다섯 학생만이 남아있다. 영화는 전쟁 속에서도 생활을 유지해가는 일곱 명의 여성 사이에 한 명의 남성이 도착하고 (혹은 한 공동체에 이물질이 떨어졌다고 할 수도 있겠다) 벌어지는 일을 담는다.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 <마리 앙투아네트>, <블링 링> 등의 여성 중심 영화를 만들어온 소피아 코폴라 감독의 신작이며, 올해 칸 국제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토머스 컬리넌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으로, 이미 돈 시겔이 클린트 이스트우드를 존으로 캐스팅해 연출한 작품이 1971년에 제작되기도 했었다. 돈 시겔의 작품은 남성, 다시 말해 존의 시선으로 영화가 시작하고 영화와 관객 역시 그에게 몰입하게 되는 작품이었다. 반면 소피아 코폴라의 이번 영화는 관점을 뒤바꿔 여성 공동체에 갑작스레 나타난 외부인에 대한 반응들을 담아낸 작품이다.
이를 위해 영화는 카메라가 존의 시선으로 사용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존은 숲 속에서 노래를 부르며 버섯을 따러 다니던 에밀리에 의해 발견되고, 학교의 여성들에 의해 구조되며, 몇몇 대화 속에서 등장하는 시점 쇼트를 제외하면 카메라는 언제나 존을 관찰하고 바라보는 방향을 유지한다. 다리를 다쳐 대부분의 시간을 음악실의 침대에서 보내는 그에게 대화가 허락될 때는 학교의 여성들이 문을 열고 들어올 때뿐이다. 영화는 착실하게 그의 발언권을 제한해가면서, 욕망을 내비친 마사의 은근한 대사, 크리스마스 때나 착용하던 핀을 다시 꺼낸 에드위나, 인사하면서 미세하게 입꼬리가 올라가는 알리시아의 제스처 등을 통해 감정을 쌓아간다. 카메라가 존의 시선을 반영하는 장면은 영화 전체에 걸쳐 딱 하나의 시퀀스뿐이다. 다리가 어느 정도 회복되어 다시 걸을 수 있게 된 존이 정원일을 도와주자 에드위나와 알리시아 등의 인물들이 동물원의 동물처럼 존을 쳐다본다. 카메라는 그제야 렌즈와 존의 시선이 일치하게 되는 것을 허락한다. 그 상황에서 존은 스스로 자신이 암사자들에게 둘러 쌓인 수사자라고 생각하지만, 그는 학교를 감싸고 있는 벽과 쇠창살 안에 갇혀있는 동물원 속 동물일 뿐이다.
영화는 이렇게 존을 관찰하며 자신의 감정 변화와 욕망을 드러내는 여성들의 시선으로 전개된다. 동시에 인물과 카메라 사이에 거리를 두어 관객이 어느 인물 하나에게 몰입하는 것을 막는다. 존의 감정에 이입하며 신체적 결함과 수적 열세에도 남성성을 마음껏 휘두르며 이에 반응하는 여성들을 관찰하던 돈 시겔의 작품과는 확연한 차이를 보여준다. (때문에 콜린 파렐의 이름이 제일 처음 등장하는 오프닝 크레딧은 일종의 맥거핀으로 작용한다) 소피아 코폴라의 영화는 클린트 이스트우드만큼은 아니지만, 느끼하고 끈덕지게 자신의 남성성을 드러내는 존과 학교에 갑자기 던져진 이물질에 각자 반응하는 마사, 에드위나, 알리시아의 반응을 그저 보여준다. 뛰어난 배우들의 사소한 재스쳐들이만들어내는 긴장감을 유지하면서도 인물과는 거리를 둔 채 인물의 욕망이 관객에게 투사되지 않도록 유도한다. 각 인물이 갈망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명확하지만, 그것을 명확한 이미지로 구사하는 대신 수많은 재스쳐와 뉘앙스뿐인 대사들로 채운다. 영화의 후반부에서 이렇게 쌓아 올려진 긴장감이 폭발하고, 존의 남성성을 상징하는 그의 고성이 음악실을 뚫고 나와 학교 전체에 울려 퍼지면서 공포가 조성된다. 동시에 이는 아주 간결하게 해결되어버리는데, 분명히 서스펜스를 조성하기 위한 정석적인 장치들이 동원되면서도 건조하게 느껴지는 저녁식사 장면은 존이 내세운 남성성이 얼마나 하찮고 보잘것없는 것인지 우아하게 그려낸다.
때문에 <매혹당한 사람들>은 소피아 코폴라가 돈 시겔의 작품을 비롯해 남성성이 대두된 70~80년대 영화들에 대한 대답처럼 느껴진다. 남성 주인공의 시선을 배제한 채 여성들의 시선만으로 영화를 꾸리고, 각 캐릭터의 인상을 확실하게 살릴 수 있는 배우를 캐스팅하는 것만으로도 원작의 전혀 다른 변형이 된다. 오래된 영화를 보는 것과 같은 35mm 코닥 필름으로 촬영된 1.66:1 비율의 화면, 인공적인 조명을 최대한 배제한 채 인상주의 화풍처럼 빛을 담아낸 미장센 등은 <매혹당한 사람들>이 어느 시기의 작품들에 대한 대응인지를 우아하게 드러낸다. 때문에 <매혹당한 사람들>은 관객들이 소피아 코폴라의 영화에서 기대하던 것들이 담겨있는, 그의 작품이기에 볼 수 있는 것들이 담겨있는 우아한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