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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Sep 08. 2017

영화가 사람을 살아가게 한다는 증거

디즈니 영화를 통해 세상을 만난 이야기 <인생을 애니메이션처럼>

 오웬 서스킨드는 자폐증을 앓고 있다. 3살의 어린 나이에 자폐증세가 시작되어 언어능력을 비롯한 여러 신체적/정신적 능력이 제대로 발달하지 못했다. 이런 그가 생활을 이어가고, 학교를 졸업하고, 애인을 사귀고, 취직까지 하게 되었다. 이 모든 것은 놀랍게도 디즈니의 애니메이션 덕분이다. 오웬은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통해 대화하는 법을 익히고, 감정을 익히고, 관계 맺는 법을 배우고, 세상의 흐름을 익혔다. 로저 로스 윌리엄스의 다큐멘터리 <인생을 애니메이션처럼>은 오웬이 디즈니의 영화들을 수단으로 삼아 세상으로 나아가는 과정을 그린다. <인생을 애니메이션처럼>이라는 제목처럼, 오웬의 인생은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놀라운 기적과 모험, 감정과 기쁨의 순간들로 가득하다. 이러한 오웬의 삶을 담아낸 89분의 다큐멘터리는 전체적으로는 평이한 장애 극복의 서사를 따라가지만 그 속을 디즈니스러운 감격의 순간들로 가득 채운다.

 오웬은 자폐증이 시작된 이후 말을 잃었다. 그랬던 그가 1년 만에 처음 꺼낸 말은 <인어공주>에 나오는 “Just a voice”라는 문장이다. “주이시보스”라는 웅얼거림이었지만, 그가 부모님에게 처음으로 발화한 말은 “그저 목소리”라는 단순한 문장이었다. 부모님은 그때부터 디즈니 영화가 오웬에게 새로운 창구가 될 것임을 직감하고, 그에게 끊임없이 디즈니 영화의 비디오를 틀어준다. 그로부터 몇 년 뒤, 6살의 오웬은 9살 생일파티가 끝난 후 혼자 남은 형 월터를 보고 부모님에게 “월터는 피터팬이나 모글리처럼 아이로 남고 싶은가 봐요”라는 복잡한 생각이 담긴 명확한 문장을 이야기한다. 오웬의 아버지인 론은 손에 <알라딘>의 이아고 인형을 끼고 방에서 혼자 디즈니 그림책을 넘기는 오웬에게 다가가 말을 건넨다. 오웬과 론이 처음으로 나눈 대화는 <알라딘>에서 이아고와 자파가 나누는 대화였다. 오웬은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통째로 외워버렸고, 영화의 대사를 통해 사고하고 대화했다. 23살이 된 현재의 오웬은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대사를 통해 대화법을 익히고, 크레딧을 통해 글자를 읽는 법을 배웠으며, 애니메이션 특유의 과장된 표정을 통해 감정을 배웠다고 이야기한다. 또한 자신 주변의 세상을 영화의 이야기에 빗대어 이해하기 시작한다. 

 영화는 이러한 과정을 인터뷰와 홈비디오, 오웬의 어린 시절을 담은 애니메이션과 디즈니 영화의 푸티지를 섞어가며 풀어나간다. 이러한 방식은 디즈니 영화를 보며 성장한 오웬의 이야기와, 그리고 디즈니의 영화가 남아내는 교훈과 가치와 완벽하게 맞물린다. 영화 속에서 오웬은 학교를 졸업하고, 집에서 독립해 홀로서기를 시작하며, 애인과 헤어지기도 한다. 오웬은 자신의 상황과 유사한 상황을 겪은 디즈니 영화의 주인공을 보고, 해당 장면들을 비디오로, 노트북으로 다시 감상한다. 가령 홀로 살아갈 집으로 이사 가기 전에는 <덤보>의 덤보가 길을 떠나는 장면을, 처음으로 가족 없이 혼자 보내는 밤에는 <밤비>에서 밤비가 엄마를 잃는 장면을, 애인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날에는 <알라딘>에서 알라딘과 재스민의 행복한 결말의 장면을 감상한다. 영화는 이러한 장면을 감상하는 오웬과 영화의 푸티지를 연달아 보여준다. 관객은 오웬의 입장에서 디즈니 영화의 장면 속으로 다시 빨려 들어가고, 오웬이 디즈니를 통해 세상과 만나고 소통하는 법을 배웠던 과정을 체험하게 된다. 오웬의 감정을 디즈니 영화를 통해 느끼게 되는 격인데, 이는 고등학교 시절 따돌림을 당한 경험을 이야기하는 오웬의 인터뷰와 디즈니 영화 속 공포의 순간들을 모은 몽타주가 연달아 등장하는 장면에서 극에 달한다. 오웬처럼 어린 시절부터 디즈니와 함께 성장한 모든 이에게 이러한 연출은 두 손 두 발 다 들고 몰려오는 감정을 받아내는 수밖에 없도록 관객을 몰아간다. 

 이러한 감정은 오웬이 직접 쓴 이야기인 “길 잃은 들러리들의 땅”(Landof the Lost SideKicks)이라는 단편 애니메이션이 영화에 등장하면서 진해진다. 로저 로스 윌리엄스가 직접 연출한 이 단편 영화는 오웬이 디즈니 영화 속 들러리(사이드킥) 캐릭터, 즉 <알라딘>의 이아고, <라이온 킹>의 티몬과 라피키, <인어공주>의 세바스찬, <정글북>의 발루 등과 함께 그들을 쫓아오는 악당에 대항한다는 이야기를 담아낸다. 오웬은 영웅과 함께하는 대신 들러리들의 수호자로서 디즈니 영화의 들러리들과 함께한다. 그들과 함께 싸우고, 도망치고, 적을 상대한다. 오웬이 어둠의 터널을 통과하던 시절 그와 함께한 것은 디즈니 영화의 들러리 캐릭터들이다. <인생을 애니메이션처럼> 중간에 삽입되는 “길 잃은 들러리들의 땅”은 디즈니 영화와 함께 세상에 나가 맞설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한 한 사람의 이야기이다. 디즈니의 작품들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또한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디즈니의 영화가 한 사람을 살게 해 주고, 살아갈 수 있게 해주는 것을 묵도하는 것은 대단하고 복잡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생각해보면 디즈니의 작품을 비롯해 어린 시절에 보아온 영화들이 지금의 내가 사고하고 행동하는 모습을 만들어낸 중요한 요소이지 않을까? 

 비록 <인생을 애니메이션처럼>이라는 다큐멘터리는 익숙한 서사와 구성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며, 모두가 예상하는 정해진 엔딩과 교훈으로 향하는 이야기이다. 그럼에도 이 영화에는 “영화는 사람을 살게 할 수 있다”라는 믿음이 담겨있다. 적재적소에 들어간 디즈니 영화의 푸티지들이 이를 증명하고, 오웬이 쓴 이야기를 애니메이션화한 “길 잃은 들러리들의 땅”이 이를 다시 한번 증명한다. 영화 후반부 오웬은 파리에서 열린 학회에서 연설을 한다. 연설의 내용 중 자신은 디즈니 영화를 통해, 어느 친구는 코미디 영화들을 통해, 또 다른 친구는 다른 장르의 영화들을 통해 자폐증을 넘어 세상과 만날 수 있었다고 이야기한다. 그들 또한 오웬처럼 영화를 통해 대화를 배우고, 감정을 배우고, 관계를 배우고, 세상과 만났을 것이다. 영화는 모든 것을, 세상을 담아낸 다는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하고, 이는 누군가의 삶을 만들어낼 수 있음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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