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동구리 Sep 22. 2017

당신은 미지의 환영에 대해 확신을 품을 수 있는가

제임스 그레이의 신작 <잃어버린 도시 Z>

*스포일러 포함


 영화는 환영의 매체다. 초당 24 프레임씩 흐르는 이미지들은 스크린위에 영사되며 카메라는 도달했지만 관객들은 도착할 수 없는 시공간을 전달한다. 영화가 끝나면, 영사기가 멈추면 환영은 사라지고 암전 된 화면이나 새하얀 은막이 관객의 눈에 들어온다. 동시에 영화는 믿음과 확신의 매체다. 관객은 카메라가 복제해 전달하는 이미지들을 진실이라고 믿는다. 정지된 시공간을 정지된 이미지에 담아내는 사진이 초당 24장씩 흐르기에 영화를 활동사진이라 부르며 카메라가 담은 것을 진실이라고 믿는다(물론 CG의 등장으로 이 개념이 뒤바뀌고 있지만 아마존에 가서 필름으로 촬영한 <잃어버린 도시 Z>를 이야기할 때는 불필요한 담론일 것이다). 때문의 영화의 관람은 카메라가 담고 영사기가 스크린에 비추는 환영을 믿는 행위가 된다. 제임스 그레이의 신작 <잃어버린 도시 Z>는 환영에 대한 확신과 믿음을 이야기한다. 이를 위해 아마존의 숨겨진 원시문명도시 Z를 찾기 위해 정글을 탐험하는 퍼시 포셋(찰리 허냄)의 이야기를 끌어온다.

 영화의 오프닝 시퀀스는 암전 된 화면에서 시작된다. 암전 된 화면에서 횃불이 등장하며 관객이 미지의 공간을 엿볼 수 있게 해준다. 영화는 (이 이야기에서는 백인으로 한정된) 인간이 인식하지 못한 미지의 세계를 짧은 환영으로 보여준 뒤 1906년의 영국으로 점프한다. 군인들과 함께 사슴을 사냥하는 퍼시 포셋은 스크린의 좌에서 우로, 우에서 좌로, 아래서 위로, 또는 스크린 깊은 곳에서 얕은 곳으로 산만하게 움직인다. 이러한 산만한 운동은 영화 전반에 걸쳐 이어진다. 영국과 아마존, 심지어 세계1차대전의 전장을 오가는 포셋의 여정은 스크린의 상하좌우와 안팎을 넘나든다. 규정되지 않은 산만한 운동들은 포셋에 여정이 목적지가 명확하지 않다는 것을 러닝타임 대부분에 걸쳐 주입한다. 러닝타임이 끝나면 스크린 위에서 사라질 영화라는 환영처럼, 미지의 목적지는 그 자체로 미지인 환영으로 영화 속에 존재한다. 동시에 포셋은 미지의 도시인 Z가 존재한다는 확신과 믿음의 현신이다. 찰리 허냄의 강단 있는 연기를 통해 그려지는 포셋은 영국왕립지리학회의 모임에서 단단한 확신의 목소리로 Z의 존재를 주장한다. 그가 Z의 존재를 주장하기 위해 본 것은 정글 바닥에 널브러진 토기 조각 몇 점이지만, 포셋은 그 이미지를 통해 Z라는 미지의 환영이 존재하는 시공간이 아마존에 있음을 확신한다. 

 그가 Z를 찾아 떠난 첫 여정에서 아마존은 Z의 존재 가능성을 조금씩 보여준다. 수학적인 농경을 이어가고, 외지인인 백인의 입장에선 야만적이며 두려운 의식이지만 그들만의 체계를 갖추고 있는 의식과 의사소통을 보여주는 원주인이 등장한다. 포셋은 원주민과의 대화(스페인어의 도움을 받긴 하지만)를 통해 각자의 의사소통 체계와 각자의 사회 체계가 존재하고 있음을 인식한다. 그의 동료 코스틴(로버트 패틴슨) 역시 이에 동조한다. 여정을 이어가던 포셋은 Z의 흔적으로 보이는 조각들을 발견한다. 아마존은 마치 그가 환영을 봤다는 것 마냥 스콜을 그의 몸통에 쏟아버린다. 이에 불구하고 포셋은 자신이 본 것이 환영이 아닌 진실임을 점점 확신한다. 마치 영화를 보는 관객처럼, 카메라가 실제로 담아온 이미지를 몽타주해 조작한 영화를 진실이라고 믿는 관객처럼 포셋은 확신에 차있다. 아마존이 보여준 몇몇 이미지를 통해 Z의 환영을 본 포셋은 그것이 진실이라고 믿으며 확신한다. 첫 여정에 따라나선 머레이(앵거스 맥페이드)는 포셋을 지지했다. 영국왕립지리학회에서 머레이는 포셋이 가져온 토기를 보고 그 이미지에 믿음을 가진다. 그러나 정글에 당도한 머레이는 믿음을 잃는다. Z가 존재한다는 확신을 잃은 머레이는 홀로 폭주하고 죽음을 원하는 상태에 다다른다. 포셋은 말과 식량이라는 대가를 치르며 머레이라는 불신을 떠나보낸다. 코스틴을 비롯한 그의 다른 동료들은 믿음을 잃지는 않지만 떨어진 식량에 진실을 포기하고 만다. 

 Z를 찾는 첫 여정을 마친 포셋은 영국으로 돌아오고, 때마침 발발한 세계1차대전에 참전한다. 그곳에서 만난 러시아 점쟁이는 포셋의 손을 잡고 그가 보고 있는 Z의 환영을 읽어낸다. 눈을 감은 포셋이 보게 되는 것은 암전 된 화면과도 같은 암흑이 아닌 정글과 Z라는 시공간이다. 포셋은 전투를 치르기 전 정글의 이미지가 그려진 그림에 입을 맞춘다. 그리고 전투에서 염소가스에 노출돼 일시적으로 시력을 잃는다. 가족의 얼굴을 촉각을 통해 볼 수밖에 없는 상태에서 그는 아내 니나(시에나 밀러)의 손을 잡고 Z에 가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그가 전장에 가져간 정글 그림은 철조망에 걸린 채 전장에 남겨졌지만, Z에 대한 환영은 시력을 잃은 포셋의 암전 속에서 더욱 뚜렷한 확신으로 다가온다. 시력을 잃은 포셋이 보고자 했던 것은 자신의 욕망이 투영된 환영이다. 시각의 배제라는 거대한 암전은 포셋의 환영이 상영되길 기다린다. 상영관을 찾은 관객이 영화가 시작하기 전의 짧은 암전 속에서 영화라는 환영이 스크린 위에 영사되길 기다리는 것처럼, 포셋의 암전은 그의 욕망이 상영되길 기다리고 그것을 Z라는 미지의 환영을 통해 바라본다. 

 포셋은 영화가 끝나길 30분을 앞두고 아들 잭(톰 홀랜드)과 함께 Z를 찾는 마지막 여정을 떠난다. 포셋의 욕망과 환영은 잭에게 전염되고, 잭 또한 Z라는 미지에 대한 확신을 가진다. 영화 초반부의 사냥 장면처럼 스크린의 상하좌우와 안팎을 넘나드는 산만한 운동이 이어지며 목적지가 정해지지 않는 미지를 탐험하는 포셋의 불안한 여정을 보여준다. 여정 끝에 포셋은 원주민의 거주지에 도착한다. 미지의 의식이 거행되는가운데 포셋은 잭의 확신이 불신으로 기울자 그에게 다시금 확신을 심어준다. 물론 잭이 이를 통해 믿음을 회복했는지는 알 수 없다. 원주민들에 의해 들려 이동되는 포셋의 주위에 영화의 오프닝에서 등장했던 짧은 이미지와 유사한 횃불들이 줄지어 등장한다. 포셋은 자신이 줄기차게 보아온 환영을 드디어 마주했음을 느낀다. 카메라는 환영의 한가운데에 놓여 포셋을 스크린의 아래에서 위로 이동시킨다. 카메라를 향해 손을 뻗은 포셋이 보게 되는 것은 니나를 비롯한 가족과 만찬, 그 만찬이 벌어진 공간을 쓸쓸하게 바라보는 자신의 환영(플래시백)이다. Z라는 미지에 대한 확신을 품은 포셋은 자신이 미지에 당도했다고 느끼는 순간 가족의 환영을 본다. 환영이 지나간 후 카메라는 스크린의 위에서 아래의 방향으로 하강/추락하는 포셋을 담는다. 스크린 구석에 언뜻 보이는 황금빛의 조형물은 그곳이 진실된 Z임을 은연중에 드러내려 하지만, 자신이 환영에 당도했다고 여기는 포셋의 시선에 그 조형물은 들어오지 않는다. Z라는 미지의 욕망을 일정 부분 달성한 포셋은 가족이라는 또 다른 욕망을 (뒤늦게나마) 품는다. 뒤늦은 욕망이 투사된 환영의 플래시백 이후 포셋이 하강/추락하게 되는 것은 새로운 욕망에 당도할 수 없는 포셋의 현재를 드러낸다. 결국 욕망의 연쇄는 환영과 그에 이어지는 또 다른 환영을 보여주고, 그 사이에 놓인 포셋은 모든 환영에 당도할 수 없음을 깨달으며 추락하고, 그의 확신은 붕괴된다. 영화의 첫 쇼트에서 포셋이 본 환영(횃불)은 끝없이 이어지는 여정처럼 이어지며 무한히 연쇄되는 환영들의 이미지 한가운데에 포셋이 자리하게 된다. 결국 영화는 미지, Z는 보여주지 않은 채 그것에 대한 포셋의 확신만을 붕괴시킨다.

 영화의 마지막 시퀀스, 니나는 영국왕립지리학회의 수장을 만난다. 니 나는 포셋과 잭이 살아있음을 본 사람이 있다며, 포셋이 Z에 당도했을 때 학회 수장에게 보내겠다는 나침반을 그 증거로 내세운다. 니나는 아마 작동하지 않는 그 나침반(포셋은 나침반을 20년간 ‘간직했다’고 말했지 ‘사용했다’고 말하지 않았다)을 보고 포셋과 잭이 살아있다는 환영을 만들어낸다. 포셋이 보낸 멈춰버린 나침반은 미지의 환영 속에서 길을 잃어버린 자신이지만, 니나는 이를 통해 또 다른 욕망과 환영을 품는다. 니나가 흘리는 눈물은 그 환영을 확신하게 되었음을, 환영에 대한 포셋의 믿음과 확신이 니나에게 전염되었음을 증명한다. 결국 제임스 그레이는 <잃어버린 도시 Z>를 통해 관객에게 이렇게 묻는다. “당신이 보고 있는 영화, 즉 욕망이 투사된 환영은 당신이 당도하지 않은/당도하지 못할 시공간을 그려내고 있다. 당신은 포셋의 멈춰버린 나침반처럼 환영 사이 어딘가에 추락하고, 당신이 실존한다고 믿었던 미지에 대한 확신이 붕괴될 수 있다. 그럼에도 당신은 환영을 믿겠는가?” 영화라는 미지의 환영은 <잃어버린 도시 Z> 마지막에 등장하는 자막처럼 잠시 등장하여 진실을 남겨둔 채 사라진다. 때문에 관객은 영화라는 미지의 시공간을, 그 환영을 믿고, 곧 사라질 진실을 보기 위해 스크린을 응시하며 탐험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스티븐 킹의 영화 Choice 5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
브런치 시작하기

카카오계정으로 간편하게 가입하고
좋은 글과 작가를 만나보세요

카카오계정으로 시작하기
다른 SNS로 가입하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