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MZ국제다큐영화제 상영작 <시멘트의 맛>
시리아의 난민들은 레바논 베이루트의 건설현장의 노동자이다. 그들은 타워 크레인의 불안한 사다리와 흔들리는 엘리베이터, 난간 없는 계단과 흔들리는 발 받침대 위에서 일한다. 바다에 비친 노을이 해변을 거쳐 마천루를 뒤덮는 아름다운 풍경이 보이지만, 한창 시멘트를 붓고 철근을 고정시키는 고공의 노동자들의 생활은 아슬아슬하기만 하다. 그들은 공사장 밑의 지하에서 적당히 담요들을 깔아 몸을 뉘이며 생활한다. <시멘트의 맛>은 작은 브라운관 TV와 핸드폰이 유일한 낙인 시리아 난민 노동자들의 삶을 담아낸다. 넷플릭스를 통해 소개된 <화이트 헬멧: 시리아 민방위대>나 EBS국제다큐영화제를 통해 소개된 <라스트맨 인 알레포>등의 다큐멘터리 작품들이 시리아를 비롯한 중동의 상황을 보도하듯 전달하고 있는 와중에 도착한 작품이다. <시멘트의 맛>은 앞선 작품들의 문제의식을 공유하면서도 영화의 형식에 있어서 전혀 다른 방법론을 취한다. <시멘트의 맛>은 단순 기록과 전달이 아닌, 영화의 속성을 동원한 필름 에세이로 제작된 작품이다.
<시멘트의 맛>이 담아내는 것은 영화 속 상승과 하강의 운동, 그리고 클로즈업 등에 담긴 시멘트의 물성이다. 영화는 사다리, 엘리베이터, 계단 등을 통해 건설현장으로 올라가는 노동자들의 모습을 담아낸다. 그들은 완공되지 않은 마천루에 끊임없이 오른다. 흔들리는 발판과 노을빛에 붉게 물든 회색의 시멘트 덩어리는 내전을 피해 레바논으로 건너와 살아가는 노동자들의 불안정한 삶의 터전이다. 영화의 초반부 이어지던 상승의 이미지들은 건설현장을 수평으로 오가며 철근을 심고 액화된 시멘트를 붓는 이미지들로 이어진다. 아직 유동적인 액체와 유사한 상태인 시멘트는 중동의 마천루를 쌓아 올리는 어떤 가능성을 내포한 물체로 존재한다. 노동자들은 시멘트를 프레임에 가득하게 펴 바른다. 철근 사이사이에 가득 채워지는 시멘트는 단단한 기반이 되어줄 것만 같다. 해가 저물고 노동자들은 마천루의 공사현장에서 퇴근한다. 지하에, 바닥에 위치한 그들의 거처를 향해 불안정한 고공에서 하강한다. 이후 영화는 탱크에서 발사되는 포탄과 시멘트가 굳어가고 철근이 새로 박히는 공사현장을 교차편집으로 보여준다. 탱크 포탑의 시선으로 담긴 단단한 시멘트 건물들을 파괴하는 장면과 굳은 시멘트에 철근을 박고 볼트를 조이는 장면들이 이어진다. 포탄으로 인해 붕괴된 건물들은 뿌연 먼지를 일으킨다. 시멘트가 굳어세워진 건물들은 시멘트 맛 먼지를 내뿜으며 크고 무거운 조각들로 붕괴된다. 바닥에, 지하에 살던 난민 노동자들은 그 잔해에 깔리고, 공기에선 시멘트 맛이 난다. 하늘에선 비가 내리고 시멘트 맛 먼지들은 물웅덩이가 되어 바닥에 고인다.
아비규환이 지나간 후, 노동자들은 다시 건설현장으로 올라간다. 하지만 노동자들이 일터로 향하는 후반부의 장면들은 단순한 상승의 이미지들이 아니다. 지아드 칼소움의 카메라는 바닥에 고인 물웅덩이를 향한다. 웅덩이에 고인 물에 건설현장으로 향하는 노동자의 모습이 반사된다. 고층으로 향하는 엘리베이터, 지상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상승이면서 하강의 이미지로 그려진다. 상승과 하강, 건설과 붕괴/추락만이 오가는 현실 속에 갇혀버린 시리아 난민 노동자들의 현실은 시멘트 맛 물웅덩이에 갇힌 이미지로 남는다. 영화의 마지막 즈음 시멘트를 운반하는 레미콘에 카메라를 부착해 빙글빙글 돌면서 도로와 도심의 마천루, 터널 등을 담는 롱테이크가 등장한다. 미래적인 분위기로 발전된 중동의 이미지를 담아냄과 동시에 레미콘의 목적지가 전쟁으로 파괴된 지역을 재건하는 현장이라는 것을 유추할 수 있다. 발전과 파괴, 재건이 양립하는 중동이라는 공간은 시멘트를 운반하는 레미콘 속에서 뒤섞인다. 영화는 바다를 바라보는 노동자와 베이루트의 야경을 보여주며 마무리된다. 그들은 끊임없이 반죽되는 레미콘 속의 시멘트처럼 정착하지 못하고 내전과 IS의 틈바구니 사이에서 삶을 이어가야만 하는 것일까. 노을 진 아름다운 해변과 화려한 야경은 그들이 손을 뻗을 수 있지만 도달할 수 없는 장소이다. 전쟁은 그들을 시멘트 맛이 깃든 물웅덩이 속에 가둬 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