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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개미, 암세포, 건설회사

브라질 재개발 문제 다룬 <아쿠아리우스>

연출이 좋다는 평을 함부로 해선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브라질에서 날아온 칸 영화제 화제작 <아쿠아리우스>를 보면서 든 생각이다. 촬영, 편집호흡, 각본, 엔딩의 타이밍까지 연출가의 선택을 거쳐야 할 많은 지점들에서의 선택이 탁월하다. 어떻게 해야 메시지를 똑바로 전달할 수 있는지 고민한 흔적이 영화에 담겨있다.

영화는 아쿠아리우스라는 낡은 아파트에 혼자 사는 클라라(소냐 바가라)라는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다.아파트의 소유주인 건축회사는 아파트를 재개발할 계획을 세우고, 남은 장애물은 클라라뿐이다. 집의 매매를 거부한 클라라를 건축회사가 집요하게 괴롭히며 영화가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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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145분이라는 꽤 기나긴 러닝타임 동안 그 과정만을 그린다. 다소 늘어지는 부분들마저 건축회사의 괴롭힘에 시달리는 클라라의 모습을 반영한 것 같아 몰입이 깨지지 않는다. 몸뚱이를 점점 파고 들어 죽음에 이르게 만드는 암세포처럼, 건물을 갉아 먹어 결국 무너뜨리는 흰개미처럼 행동하는 건축회사의 악행을 지켜보는 관객들은 어느새 클라라와 동화된다. 영화 전체가 클라라의 시선으로 구성되어 있어 건축회사의 사무실에서 벌어지는 엔딩 장면의 강렬함이 배가된다.

<아쿠아리우스>의 촬영에서 가장 자주 쓰인 기법은 줌인/아웃이다. 창가의 인물을 잡다가 어느 샌가 브라질 해변의 전경으로 쑥 빠지는 장면들이 반복해서 등장한다. 거대한 도시와 건물들 속에 개인과 가족과 공동체가 존재함을 끊임없이 인식시키는 효과를 주어 영화 전체의 메시지를 강화시킨다. 인물을 따라가는 스테디캠처럼 느껴지는 줌 아웃으로 촬영해 인물에 대한 몰입을 컨트롤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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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개발이라는 소재에서 느껴지듯이 <아쿠아리우스>는 공간에 대한 이야기이다. 영화의 오프닝은 온 가족이 모여 대고모 루시아의 생일파티를 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생일파티 도중 루시아는 방 안의 가구를 쳐다보며 과거를 회상하고, 이는 짧은 플래시백 몽타주로 영화에서 표현된다. 기억을 저장하는 곳은 사람의 뇌이지만, 그것을 꺼낼 수 있게 하는 것은 공간이다. 특히나 루시아의 집을 그대로 물려받아 살아가는 클라라 같은 상황에선, 기억 속에서 공간이 차지하는 비중은 시세의 몇 제곱에 해당하는 돈과도 바꾸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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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저널리스트인 클라라는 디지털 시대에도 아날로그 장비로 음악을 듣는 이유가 뭐냐는 기자의 질문에 “옛 장비들은 유리병에 담긴 편지 같다”고 대답한다. 클라라가 60여년을 살아온 공간이 그러하다. 기억의 열쇄가 되는 공간은, 파도에 떠밀려온 유리병 속 편지처럼 어느 순간 떠밀려와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그러한 공간을 잃는다는 것은 단순히 재산의 문제가 아닌 기억의 삭제와 직관된다.

클라라를 연기한 브라질의 국민 배우 소냐 브라가의 연기는 스크린을 휘어잡는다. 특히 클라라와 딸이 처음 갈등을 겪는 장면의 연출이 굉장한데, 좋은 연기와 연출의 아이디어의 시너지는 순식간의 관객의 감정을 쥐어짠다. 해당 장면에서 훌쩍이는 소리가 객석에서 들려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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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딩의 타이밍이 끝내준다. 강렬하고 직설적인 영화의 엔딩은 브라질을 갉아먹는 흰개미들이 누구인지 관객들의 눈앞에 접사로 촬영해 전시한다. 아직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관람할 영화가 꽤 남았지만, 가장 기억에 남은 엔딩은 <아쿠아리우스>임이 바뀌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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