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중공업 30년 노동투쟁사 담은 다큐멘터리 <그림자들의 섬>
“꿈에 그리던 조선소맨이 되었다.” 가족, 친척, 친구의 모습에서, TV에서나 보던 대기업에 취직했다. 그러나 그들이 목격한 것은 비인권적 대우. 용접공으로 출근했더니 똥을 푸게 만들고, 도시락에는 쥐똥이 콩자반인양 섞여있다. 인명사고로 인한 동료의 죽음마저 익숙해진 1987년 7월 25일, 인간으로 살고 싶었던 한진중공업 사람들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로부터 30년, 그림자들의 섬 영도의 그림자들은 여전히 움직이고 있다.
눈물이 흐르기보다 한숨만이 나온다. ‘함께 뭔가 하자’보다는 ‘우리가 이렇게 싸워왔고 싸우고 있다’는 걸 기록한 다큐멘터리이다. 1987년부터 30년간의 투쟁사를 담고 있다. 그리고 기록하는 것만으로도 계몽과 연대를 이끌어낼 수 있다는 것을 재확인 시켜준다. 여성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위로공단>처럼 우리나라 노동자의 역사를 아카이빙한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작품이다. 굳이 극영화로, 감성적인 호소를 하지 않아도 기록과 전시는 많은 것을 이끌어낼 시발점이 된다. 김진숙, 박성호 등 한진중공업의 투쟁을 이끌었던 사람들의 인터뷰로 진행되는 연대기적 구성은 30년의 역사를 지루하지 않게 관객들에게 전달한다.
'계몽과 연대를 이끌어낼 수 있다.'라고 쓰고 보니 사람들이, 특히 나와 같은 세대는 노조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에 대한 고민이 생긴다. 당장 주변의 친구들을 돌아보면, 노조=미디어가 그리고 있는 폭력/불법/귀족 노조라는 이미지를 떠올린다. 하지만 주위를 둘러보자. 우리의 부모님, 이미 취직한 친구와 선배들 중 노동자가 아닌 사람이 몇이나 되고, 직장에 노조가 없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당장 내가 사회복무요원으로 일하는 군무지에도 노조가 존재한다. 노동조합은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에 따라 자유로운 조직과 가입이 보장되며, 그렇기에 숨 쉬는 공기처럼 자연스러워야 한다. 우리 대부분은 언젠가 노동자가 된다. 이 단순한 명제를 인지하지 못한다면 이 기록은 어떻게 받아들여질까?
영화 초반부, 김진숙이 묘사하는 조선소의 풍경은 <벤허>같은 영화에나 등장할 법한 노예들의 생활이나 다름없다. 특히 안전사고로 사망한 동료를 “아, 또 (머리)깨졌네”하고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인 듯 생각하지 않으면 그 곳에서 일을 할 수 없다는 부분이 충격적이었다. 인명사고가 일상처럼 벌어짐에도, 이것이 잘못됐다고 생각해내기엔 당장의 삶이 힘든 상태. 비인권적인 상황에 놓여있음에도 이를 자각하기엔 내일 아침의 출근이 떠오르는 상태. 이런 상태는 당장 내일의 학업이, 알바가, 취업이, 군대가 놓여있어 생각하길 포기한 우리들의 모습과 닮아있다. 불합리함을 외면하고 타자화해버리는 태도는 결국 날카로운 부메랑이 되어 우리들 자신에게 돌아온다. 먼저 손을 뻗지 않으면, 손을 잡지 않으면 언젠가 우리의 손도 허공을 떠돌게 된다. 영화의 마지막 자막은 2016년 6만 3천여명의 조선소 노동자들의 정리해고가 예정되어있다는 내용이다.
이번에 처음으로 영화 펀딩에 참여했다. 영화가 끝나고 엔딩크레딧에 내 이름이 등장하는 것에 멋쩍은 표정이 지어진다. 영화가 끝난 후 검색해보니 영화의 제작년도가 2014년으로 나온다. 돈 없는 신분이라 많은 돈을 펀딩하진 못했지만, 가능한 많은 상영관에서 가능한 많은 관객들을 만나고 가능한 많은 이야기들이 오갔으면 한다.
p.s. <그림자들의 섬>이라는 제목은 한진중공업 조선소가 위치한 지역인 영도(影島)에서 따왔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