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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Oct 19. 2017

순수한 뮤즈 그 이상을 바라보지 못하는 진부한 상상력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 신수원의 <유리정원>

*스포일러 포함


 과학도인 재연(문근영)은 엽록소를 활용한 인공혈액 녹혈구를 연구하고 있다. 재연은 아내와 사별한 정 교수(서태화)와 사랑을 나누며 연구를 이어간다. 그러던 중 후배인 수희(박지수)에게 자신의 연구를 도둑맞고 정 교수마저 빼앗기고 만다. 일련의 사건을 겪은 재연은 어릴 적에 자랐던 숲 속의 유리정원에 들어간다. 한편 첫 소설을 발표했지만 흥행에 실패한 소설가 지훈(김태훈)은 슬럼프를 겪고 있다. 그는 우연히 재연의 이야기를 알게 되고, 재연의 연구를 자신의 새 작품의 소재로 삼는다. 서로가 서로의 삶과 결과물에 영감을 받았다고 이야기하면서 서로의 것을 훔친다. 과학도의 이야기로 시작해 소설가의 이야기로 끝나는 <유리정원>의 이야기는 잔혹한 판타지에 가깝다. 영화는 “순수한 것은 오염되기 쉽죠”라는 재연의 말처럼 등장인물들의 순수했던 첫 의도는 모두 사라지고 서로가 서로를 착취하고 공격하는 현실을 담아낸다.

 문제는 영화 속 캐릭터들이 서로를 착취할 뿐만 아니라 영화마저 캐릭터를 착취한다는 점이다. 재연은 선천적 기형으로 인해 왼쪽 다리가 자라다 만 상태이고, 때문에 항상 통이 넓은 바지를 입고 다닌다. 지훈 역시 선천적인 문제로 몸의 왼쪽에 점점 마비가 온다. 연구결과와 사랑하는 사람을 빼앗기고, 대문호의 작품이 표절이라고 말했다는 이유로 출판계에서 내쫓긴 두 사람에게 신체적인 결함마저 주어진다. 신수원 감독은 고난에 고난이 겹친 상황 속에 인물을 놓아두고, 이러한 인물들이 자신의 꿈 혹은 목표를 위해 달려가는 열정을 순수하다고 여기려 한다. 그리고 그러한 순수함을 더럽히는 것이, 오염시키는 것이 <유리정원>의 목표이다. 종종 부감으로 인물과 유리정원 등을 내려다보는 영화의 시선은 절대자의 위치에서 캐릭터들을 고난 속에 밀어 넣고 관찰하겠다는 듯한 태도를 보여준다. 장애를 가진 여성에게 자신의 다리를 낫게 하겠다는 순수한 열망을 심어주었다가 그것을 앗아가고, 좁은 유리정원에 스스로를 가두게 만든 뒤 결국 땅에 뿌리내린 나무가 되게 만드는 서사, 그리고 남성 소설가인 지훈은 자신에게 영감을 준다는 이유로 재연에게 접근하고 스스로를 유리정원 안에 가두고 결국 나무가 되어 땅에 뿌리 박혀 버린 여성의 이야기를 소설로 만들어 팔아 성공한다. 그가 인터넷에 연재한 소설 ‘유리정원’ 때문에 좁은 유리정원 안에 숨어 지내던 재연의 마지막 남은 삶까지도 파괴당한다. 

 결국 <유리정원>은 세상의 착취를 피해 유리정원 안으로 숨어든 순수한 여성이 다시 한번 남성 소설가인 지훈에 의해 착취당하고 더 이상 움직일 수 없는 나무가 되는 이야기이다. 지훈은 착취의 결과물로 외적인 성공을 얻지만, 재연은 자신이 사랑하던 사람을 살리는 것에도 실패하고 유리정원에 스스로를 가두게 된 것도 모자라 움직일 수 없는 나무가 된다. 여성, 그것도 문근영이라는 배우를 순수성의 상징으로 캐스팅하는 진부함도 모자라, 결과적으로 재연을 주인공의 자리에서 쫓아내고 남성의 뮤즈로써 존재하는 인물로 남겨둔다. 영화는 재연 스스로가 자신이 태어난 곳이라고 말하는 숲의 이미지로 시작하여 나무가 된 재연을 바라보는 지훈과 그가 쓴 글의 일부분의 내레이션으로 마무리된다. 그의 내레이션은 “여자의 유방처럼 새하얀 속살을 드러내고 하얀 액체를 흘리는....... 그녀는 나무가 되었다”라는 문장으로 마무리된다. <유리정원>의 재연은 마지막까지 순수했어야 한다. 그는 초록으로 오염된 끝에 초록이 되었다. 결국 신수원의 캐릭터는 인간으로 써는 남지 못한다. 남성의 시각에서 본 더러운 순수로써 남아야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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