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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Oct 20. 2017

히스 레저의 필모그래피 톺아보기

다큐멘터리 <아이 앰 히스 레저>

 2008년 1월 22일 히스 레저는 28살의 나이로 사망했다. 자신이 커트 코베인이나 재니스 조플린처럼 27살에 죽을 것 같다는 그의 이야기는 어느 정도 현실이 되었다. 1996년과 1997년 즈음 몇 편의 TV시리즈에 출연하면서 본격적인 연기를 시작한 그는 1999년 <내가 널 사랑할 수 없는 10가지 이유>에서 주연을 맡으며 인기를 얻게 된다. 그 후 모두가 알 듯 <패트리어트: 늪 속의 여우>, <기사 윌리엄>, <브로크백 마운틴>, <아임 낫 데어> 등의 필모그래피를 쌓아간다. 어릴 적 친구부터 벤 하퍼 등의 뮤지션, 맷 아마토와 같은 연출자 등과 절친하게 지내던 그는 ‘매시브’라는 회사를 차리고 음반과 뮤직비디오를 제작하기도 한다. 그리고 모두가 알고 있듯이 2008년 <다크 나이트>의 조커를 연기하고, <파르나서스 박사의 상상극장>을 촬영하던 중 갑작스럽게 사망하고 만다. 그가 죽은 지 10여 년 정도가 흐른 지금 그의 일생을 담은 <아이 앰 히스 레저>라는 다큐멘터리가 제작되었다. 히스 레저의 영화 푸티지, 항상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연기와 연출을 연구하던 히스 레저가 남긴 방대한 푸티지, 맷 아마토, 벤 하퍼, 이안, 나오미 왓츠, 벤 멘델슨 등 히스 레저의 주변 인물들이 이야기하는 그의 이야기가 영화 속에 담겨있다.

 사실 <아이 앰 히스 레저>가 담고 있는 이야기는 대단히 새로운 이야기들은 아니다. IMDb의 히스 레저 항목의 바이오그래피와 필모그래피, 트리비아를 그의 가까운 지인들의 목소리를 빌려, 그들의 주석을 붙여 듣는 것만 같은 다큐멘터리이다. 영화의 흐름도 히스 레저의 출생부터 어린 시절, 할리우드로 넘어오게 된 계기, 필모그래피, 미셸 윌리엄스와의 결혼과 이혼, 조커를 연기하던 모습, 그리고 죽음을 순차적으로 다룬다. 단순히 연대기 순으로 그의 일생을 톺아보는 <아이 앰 히스 레저>는 그를 추모하는 것 이상의 이야기를 끌어내지 못한다. 인터뷰이로 출연한 그의 가족, 친구, 동료들의 이야기는 히스 레저를 추억하고 추모하는 눈물로 마무리된다.

 영화 후반부에 등장하는 밴드 본 이베어의 저스틴 버논이 이야기하는 인터뷰는 <아이 앰 히스 레저>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이다. 히스와 직접적으로 만난 경험은 없는 저스틴은 그의 첫 앨범 뮤직비디오 촬영을 히스의 절친한 동료이자 감독인 맷 아마토와 진행하고 있었다. 어느 숲에 들어가 촬영을 진행하던 첫날, 맷은 히스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저스틴은 촬영을 중단하고 3일 동안 맷(그것도 촬영을 통해 만난 초면)을 위로해주고 안아주었다. 이를 계기로 저스틴과 맷은 친분을 쌓게 된다. 맷은 저스틴에게 히스의 생애와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고, 저스틴은 이에 영감을 받아 5년 동안 그 영향 안에서 음악을 만들었다고 이야기한다. 그렇게 해서 나온 곡이 바로 ‘Perth’이다. 그의 두 번째 정규앨범 첫 트랙에 실린 이 노래 제목은 히스 레저의 고향인 호주의 마을 이름이다. 이러한 인터뷰가 지나가고 “히스 레저의 재능과 열정에 많은 사람이 영감을 얻었고, 그 영향은 계속 이어질 것이다”라는 투의 자막이 등장한다. 상투적이지만, 히스 레저를 좋아하고 본 이베어의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기에 감동할 수밖에 없는, 아니 히스 레저의 작품을 봤던 모든 관객이라면 감동할 수밖에 없는 장면이다. 그가 아직 살아 있다면, 연기뿐만 아니라 영상 연출과 제작 등 다방면에서 재능을 보였던 그가 여전히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면 어떤 작품들이 나왔을까? 테리 길리엄의 커리어 중 가장 아쉬운 작품이자히스 레저의 유작인 <파르나서스 박사의 상상극장>이 온전히 완성되었다면 어땠을까라는 상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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