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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Dec 24. 2017

낙관과 비관을 동시에 담아내는 시선

<산책하는 침략자> 구로사와 기요시 2017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관람하고 정리가 안 되어 이번 사사로운 영화리스트 상영을 통해 재관람했다. 영화의 설정은 단순하다. <신체강탈자의 침입>처럼 외계인들이 어느 인간들의 몸을 빼앗아 지구를 침략할 준비를 한다. 그 준비는 침략 대상인 인간들을 파악하기 위해 그들의 개념을 모으는 것이다. 침략자들은 사람들에게 이미지화된 개념을 빼앗는다. <산책하는 침략자>는 소유, 가족, 일, 자신, 타인 등의 개념이 사라지고 언어화되어 흩어졌기에 모두 백지화하고 개념에 대해 재고해야 한다고 말하는 영화처럼 보인다. 침략자인 신지나 아마노는 개념을 빼앗긴 인간들을 보고 행복해 보이지 않느냐고 말한다. 인간들이 지니고 사는 개념들은 온갖 언어에 의해 해체되었고 변질되었다. 언어로써 설명될 수 없는 개념을 이미지로 떠올렸을 때 침략자들은 개념을 약탈해간다. 개념을 빼앗긴 인간은 그제야 비로소 언어로서 설명될 수 없는 개념의 굴레에서 해방된다. 영화 말미에 이르러 결국 침략이 시작된다. 나루미는 신지에게 사랑이라는 개념을 가져가 달라고 이야기한다. 신지는 사랑이라는 개념을 빼앗아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침략은 멈춘다. 영화는 그로부터 두 달 뒤, 침략 이후 재건되는 어느 마을에서 마무리된다. 신지는 나루미가 입원한 병실을 찾는다. 앉아있는 둘은 서로 시선이 엇갈리게 앉아있다. 침략자들은 인간은 가질 수 없던 개념, 특히 사랑이라는 개념을 꽤나 즉각적으로 이해하고 실천한다(혹은 그런 것으로 보인다). 언어를 통해 어그러질 대로 어그러진 개념을 인간들은 조금씩 회복하고 있지만, 유독 사랑을 빼앗긴 나루미는 그렇지 못하다. 신지와 나루미의 엇갈린 시선은 다시 마주할 수 있을 것인가? 의사는 어떻게든 치료법을 찾을 것이라 말하지만 엇갈린 시선은 그 가능성마저 무시하는 것 같다. 어쩌면 <산책하는 침략자>의 결말은 사랑을 이야기하는 <우주전쟁>의 따뜻한 가족주의처럼 느껴질 여지도 있다. 그러나 나루미와 신지의 시선은 냉소적으로 그 가능성을 비웃는 기요시의 시선처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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