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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Dec 05. 2016

1. 첫 영화의 잔상

 첫 등교,첫 출근, 첫 휴가, 첫 사랑…. 처음이라는 것에 큰 의미부여를 하진 많지만 자꾸만 ‘처음이 뭐였지?’, ‘처음이 어땠지?’하고 생각하게 된다. 인생에서 여러 번 처음이란 것을 겪게 되기에 시간이 지난 처음들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처음으로 갔던 유치원, 처음으로 갔던 놀이동산 등의 기억은 남아있더라도 잔상처럼 뇌를 스쳐 지나간다. 그렇다면 가장 좋아하는 것의 처음은 어떻게 기억날까? 처음으로 봤던 영화가 뭔지, 얼마나 기억하고 있을지 떠올려봤다.

<쥬라기 공원>로 입장

 내기억 속 처음으로 본 영화는 <쥬라기 공원>이다. 4살인가 5살 때 처음 본 기억이 난다. 그 또래 아이들이 으레 그렇듯 유치원에서 공룡과 관련된 책들을 공룡의 이름들을 막 외우기 시작했을 때이다. 지금이야 티라노사우르스, 스테고사우르스 같은 공룡계의 메이저 밖에안 떠오르지만, 당시에는 알고 있는 공룡의 이름만으로 5X5 빙고를채울 수 있었다. 유치원에 다녀온 아들이 방구석에 앉아서 공룡 이름들을 스케치북에 적고 있는 것을 본부모님이(그러니까 내 기억은 아니고 내가 그랬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은 것) <쥬라기 공원>의 비디오를 빌려다 준 것은 당연한 일이아닐까?

당시 집에 있던 TV가 이렇게 생겼었다

 당시우리 집 TV는 안테나가 달려있고 다이얼로 채널을 돌리는 과하게 아날로그적인 TV였다. 아마 화면 크기도 지금 이 글을 쓰면서 보고 있는 모니터보다작았을 것이다. 그런 TV를 가족 넷이 함께 쓰는 방구석에놓고 비디오데크에 재생과 되감기를 반복하며 끊임없이 <쥬라기 공원>을 봤다. 부모님 이야기로는 같은 영화를 3번 연달아서 본 적도 있다고 한다. 물론 지금은 없는 기억이다. 큰 스크린으로 봤어야 하는 영화지만, 4:3 비율의 작은 화면으로본 <쥬라기 공원>은 ‘동물의 왕국’을 보는 듯했던 것 같다. 

<쥬라기 공원> 스틸컷

 그렇게본 <쥬라기 공원>에 대한 기억은 사실 없는 거나마찬가지다. 2015년에 <쥬라기 월드>를 보고 나서 다시 보기 전까진 영화의 줄거리도 잊고 있었다. 솔직히말해서 영화를 봤다는 사실 말고는 제대로 기억나는 게 없다. 1995년생인 내가 5살이었던 것이 1999년이고, 각각 1993년과 1997년에 나온 1편과 2편을 연달아 봤다는 것 정도만 기억에 남아있다. 어린 나이에(라서 가능했을 지도 모르지만) 4시간이 넘도록 TV앞에서 영화를 돌려봤었고, 티라노사우르스와 벨로시렙터 등이 등장한장면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익룡을 본 기억이 없는 것으로 보아3편은 아예 패스했나 보다. 영화가 제대로 기억나지 않음에도 <쥬라기 공원>의 잔상은 기억 속 여기 저기에 남아있다. <쥬라기 공원>을 접한 지 15년이 지나 등장한 속편 <쥬라기 월드>가 원작에 바치는 오마주들을 자연스럽게 캐치했던 것을 떠올려보면 <쥬라기공원>의 잔상이 여전히 남아있다는 확신이 든다. 

<쥬라기 공원>만큼 잔상이 짙게 남은 영화 <쥬만지>

 <쥬라기공원>처럼 자세히 기억나진 않지만 잔상처럼 남아있는 영화들이 많다. 그래서일까, 가금씩 시간이 날 때마다 기억도 안 나는 어린 시절에봤던 영화들을 다시금 찾아보게 된다. <쥬라기 공원>뿐만아니라 <크리스마스 악몽>, <쥬만지>, <혹성탈출>(2001), 같은 영화들도 자꾸만찾아보게 된다. 제프 골드브럼(당시엔 주인공이 제프 골드브럼인지도몰랐다)이 타고 있는 자동차 위로 등장하는 티라노사우르스의 머리, 기다랗고마른 잭 스켈링턴이 할로윈 마을 사람들과 노래를 부르던 장면, 로빈 윌리엄스가 늪처럼 변한 거실 바닥으로빨려 들어가던 모습, 말을 타고 인간들을 사냥하던 유인원들 등등 여러 영화의 장면들이 잔상처럼 남아있다. 그 때 보던 영화들을 다시 보면 머릿속을 떠돌던 잔상들이 짜맞춰진다.

<쥬라기 공원> 프렌차이즈의 최근작 <쥬라기 월드>

 추억의영화들을 자꾸 보게 되는 이유가 이것이 아닐까? 영화를 제대로 봤다고,제대로 기억하고 있다고 할 순 없어도 영화의 이미지들은 잔상이 되어 기억에 남는다. 머릿속을자유롭게 부유하던 이미지들이 영화를 재관람하면서 맞춰지는 순간의 느낌은 오랜 시간이 쌓여야만 알 수 있는 감정이다. 처음으로 봤던 영화의, 그 영화를 보던 시절에 봤던 다른 영화들의리메이크와 뒤늦은 시퀄 소식들이 들려온다. 처음 접했던 영화의 흐릿한 기억은 새로운 영화의 기대감으로변해간다. 그 영화들은 원작의 잔상을 어떻게 짜맞춰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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