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정범> 김일란, 이혁상 2016
연분홍치마의 8번째 영화 <공동정범>은 <두 개의 문>의 스핀오프를 표방한다. 전작이 2009년 1월 20일 새벽에 발생한 용산참사를 감행한 인물들, 경찰과 그 관련 인사들의 방향에서 당시의 푸티지와 증언, 재연을 통해 재구성하며 진상에 접근하려는 시도였다면, <공동정범>은 경찰과 사법부, 이명박 정부가 그들을 ‘공동정범’으로 낙인찍고 진상규명을 하려는 시도를 어떻게 방해하는지, 그러기 위해 그들의 상처를 이용해 갈라놨는지를 드러낸다. 영화의 주인공은 당시 망루 농성에 참가했던 다섯 명의 인물이다. 용산 철거민 당사자인 이충연, 그리고 그들과 연대하기 위해 농성에 동참한 전국철거민연합의 김주환, 김창수, 천주석, 지석준. 사건을 설명하는 자막, 그리고 용산참사 발생 2분 11초 전의 시점부터 참사 발생까지를 담은 푸티지로 시작한 영화는 사건 이후 그들이 가지게 된 상처와 공동정범으로 퉁쳐져 받게 된 형량, 그로 인한 갈등과 봉합을 담아낸다.
범률용어사전을보면 "2인 이상의 책임능력이 있는 자가 서로 공동으로 죄가 될 사실을 실현하고, 그것에 참가공력한 정도의 여하를 불문하고 전원을 정범자(교사범도 아니고 종범자도 아닌 주범인)로서 처벌한다는 것”이라고 공동정범을 정의한다. 영화 <공동정범>은 그들이 왜 공동정범으로 몰리게 되었는지를 다룬다. 용산 4구역 철거민들은 농성을 위해 망루를 지었고, 비밀 유지를 위해 전국철거민연합 연대자들에게도 이를 알리지 않았다. 또한 아직까지도 왜 망루에 불이 났는지, 왜 어떠한 협상 과정도 거치지 않은 채 경찰이 바로 진압을 시도한 것인지에 대한 진상규명도 되지 않았다. 용산참사 직후 이루어진 특검은 20일 만에 수사를 접어버렸고, 이어진 재판에서 망루 농성의 생존자들은 공동정범으로 몰려 똑같은 형량을 선고받고 복역한다. 정리하자면, 진상이 제대로 밝혀지지 않은 사건의 재판에서, 용산 철거민 당사자와 연대자 사이의 책임 차이도 분명한 가운데 경찰과 사법부는 그들을 공동정범으로 몰아 그들 사이의 갈등을 유도한다. 결국 <공동정범>은 이명박 정권에 의해 공동정범으로 몰려 각자의 상처가 더욱 깊어진 사람들의 갈등과, 다시금 손을 잡고 연대를 위해 나선다는 이야기를 담는다.
다만 용산 4구역 철거민과 전국철거민연합 연대자들의 갈등을 담아내는 장면에서, 너무나도 깊어진 갈등의 골과 상처를 담아내는데 영화가 주력하다 보니 후반부의 봉합이 미진해 보인다는 점은 아쉽다. 어쩌면 그게 현실일 수도 있고, 이명박부터 박근혜까지의 9년을 거치며 (영화는 2009년 사건 때의 푸티지와 2013년부터 2016년까지의 인터뷰를 담아낸다) 일정 수준 이상으로 회복하기 힘든 갈등이 발생한 게 아닌가 싶은 생각마저 든다. 그러나 롱테이크로 담아낸 인터뷰 중의 눈물, 점점 빨라지는 심장소리와 함께 건물에 매달려 있는 사람을 담은 푸티지 등은 쉽사리 봉합되기 어려운 감정의 골을 만들어낸다. 때문에 영화의 막바지에 등장하는 봉합의 순간이 온전히 전달되지 못한다거나(물론 실제로 그랬을 수도 있다), 갈등의 책임을 어떤 개인에게 전가시키는 것으로 오독할 여지가 영화 중후반부에 존재한다. <두 개의 문>이 경찰 당국의 시선을 빌려와 거리를 유지하면서 냉정하게 사건을 바라보고, 그것만으로도 관객을 끓어오르게 하는 힘이 있었다면, <공동정범>은 사건 당사자들 속으로 너무나도 깊이 파고들어가면서 오는 깊이감에 과몰입하여 오독의 가능성을 크게 남긴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그럼에도 <공동정범>은 <두 개의 문>과 마찬가지로, 그간 연분홍치마에서 제작한 7편의 다큐멘터리와 마찬가지로 가능한 많은 관객이 봤으면 하는 작품이다. 연분홍치마는 그간 FTM 트랜스젠더의 이야기를 담은 <3xFTM>, 종로를 아지트 삼는 게이들의 이야기를 담은 <종로의 기적>, 첫 레즈비언 국회의원 후보였던 최현숙을 담은 <레즈비언 정치 도전기>, 여성 디자이너의 삶을 그린 <노라노>처럼 성소수자와 페미니즘적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SK브로드밴드 하청 노동자들의 연대를 담은 <플레이온>, 쌍용 자동차 해고노동자를 아들의 시선에서 담은 <안녕 히어로>, 용산참사를 담은 <두 개의 문>처럼 노동과 연대가 필요한 작품 등을 연달아 만들었다. 사회적 연대와 시선이 필요한 곳에 카메라를 들고 함께하는 연분홍치마의 작품들을 더 많은 사람들이 관람하길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