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급 며느리> 선호빈 2017
영화는 “나는 이상한 여자와 결혼했다”라는 내레이션과 함께 시작한다. 영화감독이자 남편이고 아들인 선호빈은 아내 김진영과 결혼하여 아들을 하나 두고 있다. 진영은 시어머니인 조경숙과 흔히 고부갈등이라고 말하는 갈등상태에 놓여 있다. 선호빈 감독은 아내와 시어머니 사이에 놓여 둘의 갈등을 기록한다. 시동생을 도련님이라고 부르라는 요구, 시부모의 생신부터 각종 제사와 명절 등의 대소사를 모두 챙기길 바라는 시어머니와, 자유롭게 자신과 가정의 생활을 이끌어 가고 싶어 하고, 당장에는 자신의 삶 없이 가사노동과 육아에 시달리고 있는 아내의 대립은 어쩌면 당연한 것처럼 느껴진다. <B급 며느리>는 여성의 무임금 노동으로 유지되는 전형적인 가부장제 시스템 속에서 살아온 세대와 그것을 당연하지 않은 것으로 받아들이며 이에 균열을 내려는 세대 사이의 갈등을 정면으로 담아낸다.
카메라의 눈으로 담아낸 고부갈등은 꽤나 흥미롭다. 아이의 옷을 두고 벌이는 신경전이라거나, 집안의 대소사에 무조건 참가하는 것이 자연스럽다는 시어머니와 명절 및 제사 보이콧을 선언한 며느리의 모습 등은, 어쩌면 주위에서 익숙하게 볼 수 있는 모습일 수도 있다. 영화 중간에 등장하는 상담사는 진영과 경숙의 대립이 아주 전형적인 고부갈등의 모습이라 이야기한다. 결국 <B급 며느리>가 잡아야 할 포지션은 고부갈등의 사이에 낀 남편이자 아들인 감독이 그것을 담아내면서 원인 혹은 세세한 갈등의 내용 등을 짚어내는 관찰자의 위치이다. 영화는 무엇 때문에 갈등이 벌어지고, 그것이 어디서 기인하는 것인지를 보여주는 것에는 일정 부분 성공한다. 외국인 관객의 입장에서 봤을 때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한국의 관객들이라면 대다수가 공유하고 있는 맥락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82년생 김지영』, 『며느라기』 등 영화 밖 매체들에서도 이미 여러 차례 그려진 맥락들이기도 하다. 결국 생계, 장래, 노후, 육아, 노동, 친정과 시댁 등 수많은 겹의 층위들이 중첩되고, 그것을 포괄하는 과거부터 지금까지의 가부장제 시스템이 이러한 갈등의 주된 원인으로 영화 속에 등장한다.
때문에 감독이 취하는 포지션은 종종 이상해지기도 한다. 선호빈은 감독이지만 영화의 촬영감독은 아니다. 종종 그가 직접 찍은 장면들도 등장하지만, 영화 속 많은 장면들은 촬영감독이라는 또 다른 인물의 시선으로 담긴다. 때문에 영화는 고부갈등 사이에 놓인 어떤 중립적인 (혹은 박쥐 같다고 말할 수 있는) 인물의 시선이 아닌, 여기서 한층 더 벗어난 인물의 시선으로 향한다. 그렇기에 (이것이 촬영과정의 문제인지 편집 과정의 문제인지는 알 수 없지만) 선호빈의 시선은 종종 ‘기계적 중립’이라 불리는 지루한 상태에 고착되기도 하고, 영화 중반부에는 <B급 며느리>를 피칭하는 과정에서 “나는 가정의 갈등을 팔아 돈을 벌었다”라고 자조하기도 한다. 종종 등장하는 자조적인 감독의 목소리는 진영과 경숙의 갈등이라는 영화의 중심점을 흐려버린다. 때문에 영화 전체가 감독이 취하고 있는 ‘기계적 중립’적 태도에 정체되어 있으며, 어떠한 방향으로도 그 논의가 확장되지 못한 채 마무리된다. 관찰자인 감독이면서 동시에 남편/아들인 내부자라는 애매한 위치의 자의식이 종종 튀어나오면서 전체적인 템포가 어그러진다는 인상이다.
결국 <B급 며느리>는 고부갈등을 막장드라마처럼 납작하지 않게 내부자의 위치해서 기록한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지만, 내부자이자 관찰자인 감독의 애매한 위치 또한 전면적으로 드러나며 영화의 중심점이 어그러진다는 단점 또한 돋보인다. 때문에 가부장제 시스템이 공기처럼 익숙하고 그것의 유지를 당연하게 여기는 세대와 여성착취적인 가부장제에 반대하고 그것에 균열을 내려는 세대의 갈등을 정면으로 기록한다는 것 이외의 성취는 보이지 않는다. 아쉬운 점이 더욱 두드러지는 작품이지만, 더욱 섬세하게 이러한 이야기를 담는 작품이 등장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