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미언 차젤레 감독의 뮤지컬영화 <라라랜드>
할리우드의 배우지망생 미아 돌란(엠마 스톤)은 스튜디오 내 카페에서 일하며 여러 오디션을 전전하고 있다. 재즈 피아니스트이자 자신의 클럽을 차리는 것이 목표인 세바스찬(라이언 고슬링)은 식당에서 자신이 원하는 음악을 연주하다 해고당한다. 우연히 마주친 둘은 각자 꿈을 향해가는 모습을 보며 사랑에 빠진다. 1950년대 할리우드 고전 뮤지컬 영화에 오마주를 바치는 영화 <라라랜드>의 이야기는 진부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데미언 차젤레 감독은 클리셰를 맛있는 조미료로 사용할 줄 아는 감독이다. <라라랜드>는 이야기를 알면서도 감탄하고 감동할 수 밖에 없는 영화다.
<라라랜드>는 완벽하게 설계된 영화다. 굉장히 복잡하고 길게 설계된 오프닝 롱테이크 뮤지컬 장면부터 데미언 차젤레 감독의 완벽한 설계가 드러난다. 시청각적으로 관객들을 압도시키는 스크린 속 퍼포먼스와 촬영, 음악은 물론이고, 오프닝에서 영화 전체를 요약하고 감독의 지향점을 드러내는 지점에서 절로 감탄하게 된다. 사실 1.33:1 비율로 등장하는 고전풍의 서밋 엔터테인먼트 로고와 고전 뮤지컬 영화에서 자주 쓰이던 2.55:1로 화면비가 넓어지며 시작되는 순간부터 묘한 향수를 불러온다. 아니, 향수를 느낄 수 밖에 설계되어 있다. 뮤지컬 특유의 작위적이고 과장되고 연극적인 면은 감독이 <라라랜드>를 자신이 원해는 대로 설계할 수 있게 만들어준다.
영화 전체적으로 원색의 강렬한 색감이 화려하게 사용된다. 화려한 미술을 화려한 촬영으로 담아내 때론 어지러울 지경이다. 영화의 색감은 관객에게 시각적으로 영화를 각인시킨다. 동시에 인물의 감정선과 함께 흘러간다. 영화 초중반부에 등장하는 미아의 의상은 강렬한 원색이다. 파란색, 초록색, 노란색 등 화려한 색상을 입고 등장한다. 영화가 흘러 미아와 세바스찬 사이에 갈등이 생기면서부터 미아의 옷 색깔은 흐려진다. 미아의 옷 색깔 이외에도 영화의 전체적인 톤이 점점 흐린 색과 무채색으로 변화한다. 영화의 주요 장소 중 하나인 그리피스 천문대 장면을 보면 알 수 있다. 영화 속에서 두 번 가량 등장하는 이 공간은 처음엔 화려한 야경을 자랑하는 공간이었다. 허나 후반부에 다시 등장할 땐 무채색의 일상적인 공간처럼 그려진다. 미아의 감정선에 따라 화면의 톤도 변해간다.
여러모로 이야기할 거리가 많은 <라라랜드>지만, 가장 흥미로웠던 지점은 영화가 그리는 LA와 할리우드이다. 극 중 인물들은 아이폰을 사용하는데, 영화의 배경이 되는 LA는 고전 할리우드처럼 그린다. 영화 속에서 미아가 일하는 스튜디오에서는 50~60년대 할리우드 영화에나 썼을법한 그림으로 그린 배경들이 등장하고 스튜디오 안에서 영화를 찍는 사람들은 어딘가 과거의 인물들처럼 느껴진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영화 포스터가 사진 대신 그림으로 그려져 있기도 하다. 미아와 세바스찬이 클래식한 자동차를 타고 LA의 온갖 명소들을 돌아다니는 장면의 배경은 할리우드 영화 속에서 몇 번이고 등장했던 장소들이다. 겨울부터 시작해 다시 겨울로 끝나는 영화는 LA와 할리우드에 대한 찬가이다.
<라라랜드>의 두 주인공은 꿈을 이야기한다. 서로의 꿈을 보고 사랑에 빠졌고, 서로의 꿈에 조언해주고,서로의 꿈을 이루려다가 관계가 틀어지기도 한다. 그래서 이를 압축해서 보여주는 영화 후반부의 뮤지컬 시퀀스는 꿈 같다. 미아와 세바스찬이 바랬던 꿈이 마법처럼 스크린에 펼쳐진다. 꿈의 공장이라고 불리던 50년대 할리우드가 하던 일을 데미언 차젤레 감독이 이어서 완성했다. 극 중 세바스찬은 죽어가는 프리 재즈를 이어가고 싶다고 끊임없이 말한다. 라이언 고슬링은 감독의 페르소나가 되어 그의 소망을 전달한다. ‘꿈의 공장의 마법은 끝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