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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Feb 19. 2018

스필버그의 새로운 걸작

<더 포스트> 스티븐 스필버그 2017

 메릴 스트립, 조쉬 싱어, 야누즈 카민스키, 존 윌리엄스. 각자 연기, 각본, 촬영, 음악이라는 분야에서 영화사에 남을 성취를 이룬 사람들이다. 그야말로 영화의 신들이랄까. 고령의 나이에도 왕성하게 작품 활동을 이어가는 스티븐 스필버그의 신작 <더 포스트> 에 이들이 모두 모였다. 1971년 ‘펜타곤 페이퍼’ 특종 보도를 다룬 이 영화는 당시 워싱턴 포스트의 회장직을 맡고 있던 캐서린 그레이엄(메릴 스트립)을 주인공으로 삼고 있다. 편집국장인 벤(톰 행크스)이 1급 기밀인 펜타곤 페이퍼를 손에 넣고 이를 발행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과정,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이것을 발행할 것인지 아니면 닉슨 정부에 굴복하고 회사를 안정적으로 지킬 것인지를 고민하는 캐서린의 이야기가 <더 포스트>의 주된 이야기이다. <스포트라이트>를 통해 언론/정치 영화에 재능이 있음을 보여준 각본가 조쉬 싱어, <쉰들러 리스트>부터 <마이 리틀 자이언트>까지 스필버그와 많은 작품을 함께한 촬영감독 야누즈 카민스키, <죠스>, <E.T.>등의 스필버그 영화부터 <스타워즈>, <해리포터> 등 수많은 영화의 테마를 만들어낸 존 윌리엄스까지 그야말로 영화의 신들이 모여 만든 작품과도 같다.

 그중에서도 가장 돋보이는 인물은 당연하게도 메릴 스트립이다. <더 포스트>가 스티븐 스필버그의 페미니즘 영화라고 불리게 된 가장 큰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영화는 편집국장 벤을 연기한 톰 행크스와 투톱 주연인 것처럼 그려지지만, 영화의 주제가 되는 장면과 대사, 클라이맥스는 모두 캐서린의 것이다. 메릴 스트립이 마가렛 대처를 연기했던 <철의 여인>이 연상되기도 하지만, <더 포스트>의 캐서린은 처음부터 강인한 인물이 아니다. 러닝타임 내내 묘사되는 것은 캐서린이 여성이기에 무시당하는 모습들이다. 워싱턴 포스트의 이사회 회의는 캐서린을 제외한 모두가 남성이며, 그녀가 회사 상장을 위해 증권거래소를 찾는 장면은 <원더우먼>이나 <다키스트 아워>에 묘사된 영국 의회와 같은 ‘금녀’의 구역으로 그려진다. 비서, 수행원, 서기 등의 모습으로만 그려지는 여성들은 문 앞에서 높으신 남성들을 기다리는 존재로 등장한다. 카민스키의 명민한 촬영은 프레임 속에서 이들의 모습을 놓치지 않는다. 캐서린의 주변 인물들은 그녀의 아버지가 사망하고 사위인 캐서린의 남편에게 회사를 물려주는 것이 이치에 맞는 일이라 평한다. 이어서 캐서린이 회사를 운영하는 것은 남편의 죽음이라는 불가피한 사고 때문에 벌어진 일이며, 신문사가 아닌 곳에서 일하던 그들이 평생을 워싱턴 포스트에서 직간접적으로 일해온 캐서린보다 더욱 전문성을 띤다고 말한다. 영화가 담아내는 것은 워싱턴 포스트의 사주(社主)이자 남성우월시대를 뚫고 자신의 자리를 지켜온 캐서린의 모습이다. 자신이 워싱턴 포스트의 회장이며, 신문사를 지닌 언론인으로서 자신이 지켜야 될 언론의 자유를 이야기하고, 그것이 결국 역사적인 승리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은 강력한 여성 영웅의 모습이다. 이것을 가능케 하는 것은 스필버그를 비롯한 <더포스트>의 제작진과 언제나 관객을 경악시킬 정도로 놀라운 메릴 스트립의 모습이다. 잠시 지나치는 여성 한 명에게도 서사를 부여하는 사려 깊은 연출에 이어지는 영화 후반부 대법원 앞의 수많은 여성 시위자 사이로 캐서린이 걸어 나오는 장면은 감격스럽기 그지없다.

 <더포스트>는 당연하게도 뛰어난 언론 영화이다. 영화는 미국 정부가 30년간 4명의 대통령을 거치며 숨겨온, 베트남에서의 패전을 인정하지 못하고 계속하여 젊은이들을 전장으로 내몬 사실을 숨기려는 비밀이 어떻게 폭로되었으며, 이를 위해 언론인이 언론의 자유를 위해 어떻게 갈등하고 싸워왔는지를 밀도 있게 담아낸다. 발행을 결심하는 캐서린의 결정이 <더 포스트>가 보여주는 핵심적인 언론의 태도라면, “발행하는 것이 발행의 자유를 지키는 것”이라는 벤의 대사는 이러한 태도의 기저가 되는 의식이다. 정보국에서 일하던 댄(메튜 리즈)가 펜타곤 페이퍼를 비밀리에 복사하는 장면, 워싱턴 포스트의 편집실을 돌아다니는 벤과 기자들을 뒤따라 다니는 스테디캠 롱테이크, 정부의 비밀을 폭로할 기사를 신문에 인쇄할 윤전기가 돌아가는 장면의 몽타주 등은 존 윌리엄스의 음악을 통해 긴밀하게 연결되어 영화가 담은 핵심을 전달한다. 상업영화로써 즐길 수 있는 최상의 서스팬스를 통해 전달되는 언론의 의미는 각본가인 조쉬 싱어의 전작 <스포트라이트>가 보여준 감각보다 더욱 영화적인 방식을 통해 주제를 드러낸다. 언론 영화, 언론의 자유를 이야기하는 영화를 이야기할 앞으로의 영화들은 <스포트라이트>와 <더 포스트>라는 두 개의 거대한 산을 상대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두 영화는, 특히 <더 포스트>는 2010년대를 대표하는 (그리고 동시대에 가장 알맞은) 언론 영화로 기억되지 않을까?

 21세기가 되어 걸작들을 연달아 내놓고 있는 스티븐 스필버그의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SF(<에이. 아이>, <우주전쟁>), 범죄(<캐치 미 이프 유 캔>), 전쟁(<스파이 브릿지>, <워 호스>), 동화(<마이 리틀 자이언트>, <틴틴: 유니콘호의 비밀>)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끊임없이 작품들을 내놓는 모습은 그저 놀랍기만 하다. 그 밖에 제작으로 참여한 수많은 작품들까지 보고 있자면, 현시대 할리우드의 신선 같은 존재처럼 느껴지기만 한다. 자신이 주도했던 80, 90년대 대중문화를 전면으로 내세운 그의 신작 <레디 플레이어 원>이 또 하나의 걸작이 될 것이라 믿을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영화를 만든다는 것, 영화를 본다는 것, 영화를 통해 무엇인가를 폭로한다는 것이라는 테마 속에서 스필버그가 영원히 영화를 만들어주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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