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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Mar 05. 2018

가십에 머물고 만 영화

 1994년 릴레함메르 동계올림픽에서 희대의 사건이 벌어진다. 미국 여성선수 최초로 트리플 악셀을 성공시킨 토냐 하딩(마고 로비)이 라이벌 선수인 낸시 캐리건(케이틀린 카버)이 올림픽에 출전하지 못하도록 청부폭행을 사주했다는 것이다. 토냐의 어린 시절부터 사건이 벌어진 1994년까지 그의 생애를 따라가는 영화 <아이, 토냐>는 사건에서 몇 년이 흐른 시점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제작된 작품이다. 토냐의 전 남편인 제프(세바스찬 스탠)와 그의 친구인 션(폴 월터 하우저), 토냐의 인생을 지금과 같게 만들어냈다고 할 수 있는 그의 어머니 라보나(엘리슨 제니), 토냐의 코치인 다이앤(줄리안 니콜슨)이 토냐의 주변인물로서 등장한다. 토냐의 주변인물들로 인해 그의 인생은 어떻게 뒤바뀌었나? 인터뷰와 4의 벽을 깨며 자신의 기억이 진실이라 말하는 캐릭터 등의 구성은 그들의 인생이 어떻게 사건에 도달하게 되었는지를 숨 가쁘게 설명한다. 

 그러나 <아이, 토냐>는 토냐의 사건을 통해 사건의 진실을 홍보하거나, 그들의 인생이 막장으로 치달아 사건이 터지게 된 사회적 이슈를 탐구하는 것에는 크게 관심이 없어 보인다. 물론 그들의 인생을 영화에 그려내면서 발생하는 맥락은 존재한다. 미국 빙상연맹과 대회 심판들이 지닌 보수성은 토냐의 커리어를 가로막으며 그의 도약을 저지했고, 가난과 폭력이라는 시궁창 같은 현실은 계속해서 토냐의 발목을 잡는다. 결국 토냐와 제프, 션이 벌인 사건은 냉전이 끝나가는 시기 미국의 사회상을 담아낸 것이라는 사회학적 해석이 가능하다. 하지만 영화가 집중하는 것은 그러한 해석보다는 재미이다. <아이, 토냐>는 재미있다. 120분의 러닝타임은 지루하지 않게 흘러가고, 마고 로비를 비롯한 배우들의 열연은 흥미롭다. 그러나 영화의 재미는 영화가 내포한 맥락에 근거한 것이 아닌 가십 뉴스를 접하는 것과 유사한 재미이다. 영화가 전달하는 것은 가십 잡지에서 읽을 수 있을 법한 내용들이다. 토냐와 제프는 서로 다른 증언들을 하고, 멍청한 션은 헛소리만을 되풀이한다. 전국적, 아니 세계적인 놀림거리가 된 그들은 자신의 유명세를 이용해 돈을 번다. <아이, 토냐>는 그 연장선상에서 토냐의 이야기를 풀어간다. 극 중간중간 끼어드는 그들의 인터뷰와 4의 벽을 깬 대사들은 관객에게 오락을 제공할 뿐이다.

 

 이러한 영화의 태도는 폭력이 등장하는 장면들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라보나와 제프는 폭력적인 인물이다. 영화 내내 토냐에게 폭언과 폭행을 끊임없이 이어간다. 토냐와 제프가 동거를 시작하면서 등장하는 폭력들은 서로가 주고받으며 각자의 증언이 진실이라고 관객들에게 증언하며 등장한다. 라보나가 토냐에게 행하는 폭력을 담아내는 모양새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 결과적으로 “진실은 각자만이 아는 것”이라는 토냐의 말은 영화가 진실에는 관심이 없고 각자가 기억하는 진실을 게임처럼 주고받는 것에 집중한다는 의미로 변질되고 만다. 가십을 가십으로 다시금 소비하는 모양새랄까? 영화를 보고 남는 것은 사건이 얼마나 멍청한 이유로 발생한 것인지, 그리고 그 사건이 벌어질 수밖에 없었던 토냐의 인생에 대한 지식뿐이다. 때문에 <아이, 토냐>가 해당 사건을 다룬 여러 가십 기사들과의 큰 차이점은 없어 보인다. 왜 오스카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는지 이해가 가는 마고 로비의 연기와, 역시 오스카에 노미네이트 된 라보나를 연기한 엘리슨 제니의 열연을 볼 수 있다는 것이 <아이, 토냐>의 가장 흥미로운 지점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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