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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Mar 04. 2018

국가가 자아낸 불편함의 전염성

<러브리스> 안드레이 즈비아긴체프 2017

*스포일러 포함 


 열두 살 알로샤(마트베이 노비코프)의 부모인 제냐(마리아나 스피바크)와 보리스(알렉세이 로진)는 각각 애인이 있고, 둘은 이혼을 앞두고 있다. 알로샤는 이혼을 앞두고 점점 감정이 격해지는 부모를 보고 가출해버린다. 아이가 실종됐음을 알게 된 제냐와 보리스는 경찰과 실종아동구조단체의 도움을 받아 알로샤를 찾으려 한다. <리바이어던>으로 평단의 호평을 이끌어낸 안드레이 즈비아긴체프 감독의 신작 <러브리스>는, 철거라는 수단을 통해 직접적으로 국가폭력을 그려낸 전작과는 다르게 2012년 모스크바의 한 가족을 중심으로 러시아의 현재를 그려낸다. 집요하다 못해 지루하게 느껴질 정도의 동일한 카메라 무빙은 <러브리스>의 중심을 잡아주는 수단으로써 기능한다. 

 <러브리스>의 카메라 움직임은 단순하다. 오프닝과 엔딩의 수미상관을 이루는 틸팅, 좌우로의 단순한 트래킹, 인물을 따라가는 패닝, 피사체의 집중하는 트랙-인. 카메라가 격하게 움직이는 장면은 하나뿐이다. 영화가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이혼을 앞둔 제냐와 보리스는 집을 내놓고 어떤 커플이 그들의 집을 보려 온다. 단순하게 움직이던 카메라는 복잡한 집안을 부유하며 그들의 집 구조를 담아낸다. 욕실과 화장실이 분리되어 있으며 각 방의 평수와 전체 25평의 넓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부동산 중개사의 친절한 설명이 대사로 이어진다. 집을 보러 온 커플이 지나가고, 퇴근한 보리스가 도착한 집의 풍경은 불편하기 짝이 없다. 제냐와 보리스는 격한 말싸움을 시작하고, 알로샤는 구석에 숨어 눈물을 삼킨다. 가장 편안한 장소여야 할 집이 알로샤에겐 가장 불편한 장소로 변질된다. 알로샤는 결국 불편한 집에서 탈출한다. 

 불편한 집은 전염성이 있다. 제냐와 보리스는 혹시 알로샤가 있을까 싶어 외할머니의 집으로 향한다. 표지판도 없는 도로 샛길에 위치한 외할머니의 집은 요새처럼 담으로 둘러 쌓여 있다. 제냐 부부와 사이가 좋지 않은 외할머니는 저주와 기도를 번갈아 가며 입을 멈추지 않는다. 집 주변의 개들은 침입자의 냄새를 맡은 듯 짖어대고, 고양이의 울음소리는 들리지만 그의 모습은 드러나지 않는다. 제냐와 보리스의 불화로 발발한 불편함은 둘의 집을 넘어 외할머니의 집 또한 불편한 집으로 감염시킨다. 둘은 알로샤의 하나뿐인 친구의 도움을 받아 그의 아지트 격인 폐건물을 찾는다. 구조단체와 함께 그곳을 샅샅이 수색하지만, 발견한 것은 알로샤의 겉옷뿐이다. 무너져가는 폐건물에 남아있는 것은 깨진 유리조각과 벽에서 떨어진 타일 조각, 더러운 물웅덩이 등 불쾌한 피사체뿐이다. 영화의 결말부, 결국 알로샤를 찾지 못한 둘은 각자 애인의 집에서 새로운 가정을 이루고 생활을 이어간다. 둘이 살던 집은 불편함을 치워버리려는 듯 새로 도배를 시작한다. 보리스는 애인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이를 귀찮다는 듯이 유아용 침대에 던져 넣고, 제냐가 애인과 함께 보던 TV에서는 우크라이나에서 발발한 전쟁이 보도된다. 극 중 보리스가 운전 중에 듣던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전쟁의 전초와도 같은 사건들, 마야력에 의한 지구멸망설 등의 불길함은 전쟁으로 발현된다. 

 그들은 새로운 집으로 거처를 옮겼지만 그곳에도 불안감이 엄습한다. 불안감을 빙자한 불편함이 다시금 전염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영화의 결말부를 보면 극 전체를 지배하던 불편함이 제냐-보리스 부부의 불화와 알로샤의 실종을 통해 발현된 것인지, 러시아 전체를 지배하던 정치적 불안과 전쟁에서 발현된 것인지의 경계가 불분명해진다. 알로샤의 실종이라는 사건을 통해 촉발된 불안감/불편함은 제냐와 보리스의 표정을 지배한다. 경찰과 구조단체라는 얼굴의 정부/시스템은 무표정하게 자신의 일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알로샤는 돌아오지 않는다. 그가 죽은 것인지, 누군가에게 납치당한 것인지는 영화 속에서 묘사되지 않는다. 돌아오지 못하는 것이 아닌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은 국가가 지금의 불안을 해소하려는 의지를 보이긴커녕, 도리어 진전되는 일 없이 불안감을 증대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전쟁이 벌어진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불안은 러시아 본토의 모스크바의 집들로 전염된다. 정작 가장 큰 불안감과 불편함을 지녔을 알로샤의 시점이 영화 속에서 배제되어 있다는 한계가 존재하지만, <러브리스>가 진득하게 담아낸 러시아의 지금은 영화의 색감처럼 암울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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