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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Mar 02. 2018

트럼프 미국에 대한 또 하나의 조롱

<로건 럭키> 스티븐 소더버그 2017

 한 때 유망한 고교 미식축구 선수이자 킹카였던 지미 로건(채닝 테이텀)은 무릎 부상을 겪고 건설 노동자로 일하고 있다. 무릎 부상을 핑계로 해고당하자, 왼손이 없는 동생 클라이드(아담 드라이버), 미용실에서 일하는 막내 멜리(라일리 코프)와 함께 레이싱 경기장의 금고를 털 계획을 세운다. 수감되어있는 금고 전문가 조 뱅(다니엘 크레이그)과 그의 두 동생을 섭외한 로건 형제는 계획을 실행에 옮긴다. <오션스 일레븐>으로 이어진 시리즈를 통해 케이퍼 무비 장르를 선보였던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이 다시 한번 금고를 터는 영화를 만들었다. 언제나처럼 놀라운 캐스팅과 함께하는 이번 영화는 배경을 라스베이거스의 카지노에서 미국 남부의 웨스트 버지니아로 옮겨왔다. 오프닝부터 이어지는 사투리와 황량 모습의 남부지역을 보고 있자면 역시나 형제 은행강도의 이야기였던 <로스트 인 더스트>와 같은 작품이 연상되기도 한다. 두 영화를 비교하게 되는 것은 당연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백인 쓰레기(White Trash)’라고 불리는 백인 형제가 은행/금고를 털고, 그 과정 속에서 트럼프 시대의 미국, ‘Make America Great Again’이 얼마나 허황된 슬로건인지를 고발하는 작품이라는 점에서 연관성이 느껴진다.  

 사뭇 진지해 보이는 <로스트 인 더스트>와는 다르게 <로건 럭키>는 빠른 리듬과 여러 유머를 곁들인 오락영화처럼 느껴졌다. 적어도 영화의 포스터와 예고편을 봤을 때는 그렇게 느껴진다. 영화의 홍보를 보고 <로건 럭키>가 <베이비 드라이버>와 같은 오락물일 것이라 느낀 관객이 적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극장을 찾은 관객들은 대부분 당황하게 된다. <로건 럭키>는 빠른 리듬감을 가지고 있지도 않고, 삽입곡과 오리지널 스코어를 쏟아붓는 최근의 영화들과는 다르게 음악의 사용이 상당히 절제되어 있다. 작년 한 해 스크린에서 지겹게 들어온, ‘Take Me Home, Country Road’와 같은 존 덴버의 음악이 영화 중간중간에 삽입되어 있고, 몇몇 시퀀스에서 하나의 테마를 조금씩 변주한 스코어가 쓰일 뿐이다. 어딘가 나사 하나 빠진 것만 같은 캐릭터들은 음악이 사라진 빈 공간에서 멍청해 보이는 행동들을 이어가며 영화의 리듬감을 이상하게 만들어간다. 케이퍼 무비라는 장르를 떠올렸을 때 연상되는 깔끔하고 스피디한 편집은 <로건 럭키>의 지향점이 아니다. <로건 럭키>는 주인공의 계획이 척척 맞아떨어지는 정박의 영화가 아닌, 어딘가 느릿느릿하고 늘어지는 것처럼 느껴지는 엇박의 영화다. 

 이러한 리듬은 당황스럽기에 이상한 감흥을 불러일으킨다. <오션스> 시리즈나 <매직 마이크> 등의 영화를 기억하던 관객들이라면 더더욱 그럴 것이다. 영화가 만들어낸 엇박 속에 빨려 들어간 캐릭터들은 영화 속에서 그들의 멍청함을 계속 드러낸다. 리듬감 넘치는 남부 사투리는 어느 순간 어벙하게 느껴지고, 로건 형제의 철저한 계획은 어딘가 빈틈이 느껴진다. 기존의 케이퍼 무비가 착착 맞아떨어지는 계획을 통해 쾌감을 주는 방식이었다면, 로건 형제의 계획은 끊임없이 불안하기만 하다. 레이서인 데이튼(세바스찬 스탠)이 고가의 식단과 요가를 통해 스스로를 관리하는 모습과 그의 동료 레이서 겸 스폰서인 맥스(세스 맥팔레인)의 악다구니는 갑작스럽게 영화에 끼어들며 ‘백인 쓰레기’들의 모습과 ‘부자 백인’들의 허황된 현재를 보여준다. 관객은 나사 하나 빠진 캐릭터들의 계획에 동참한다기 보단 그들의 계획을 관조할 수밖에 없다. 멍청해 보이는 그들의 계획이 성공에 가까워지는 이유 또한 그들이 상대하는 대상 또한 멍청하기 때문이다. 결국 엇박의 리듬 속에서 멍청함과 멍청함의 대결이 이어지고, 승리 아닌 승리를 거머쥐는 것 또한 멍청함이다. 로건 형제는 자본가들을 상대하여 그들을 속이고 공권력에서 마저 도망치는 것 같지만, 그들 모두 고만고만한 인간들이라는 것이 드러나는 엔딩에 다다르면 <로건 럭키>가 저격하고 있는 대상은 트럼프를 당선시킨 백인들의 멍청함임이 보인다. 

 다만 우리가 케이퍼 무비에서 기대하는 익숙한 즐거움이 부족하게 느껴지는 것이 영화의 단점이다. 엇박으로 진행되는 리듬감, 특히 존 덴버를 비롯한 컨트리 장르로 가득한 음악의 사용(특히 지미의 딸이 굳이 “Take Me Home, Country Road’를 부르는 장면은 약간 어처구니없게 느껴진다)은 의도된 엇박이라는 것을 인지할 수 있지만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지루하게 느껴진다. 삽입곡과 스코어 모두 사용되지 않는 장면들은 사뭇 진지하게 느껴지기까지 하는데, 로건 형제나 뱅 형제들이 보여주는 멍청함과 어딘가 괴리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결국 캐릭터들의 멍청함을 고발하면서도 영화 자체는 멍청하지 않기 위해 노력한 모습이 과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배우들의 전작을 이용한 개그(<매드맥스: 분노의 도로>에 출연했던 라일리 코프가 V8 엔진을 이야기한다거나, <스타워즈>의 카일로 렌인 아담 드라이버의 캐릭터가 왼팔이 없다거나)는 알아차리면 재미있지만 종종 뜬금없이 영화를 늘어지게 만든다. 결과적으로 앞서 언급한 <로스트 인 더스트>와 같은 영화에 비해 아쉬운 작품으로 느껴진다. 오랜만에 돌아온 스티븐 소더버그라는 이름은 반갑지만, 북미에서의 호평과는 괴리감이 느껴지는 완성도의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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