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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Mar 23. 2018

할리우드가 중국자본으로 만든 일본영화

<퍼시픽 림: 업라이징> 스티븐 S. 드나이트 2018

 기예르모 델 토로의 역작 <퍼시픽 림>의 속편이 오랜 기간 표류한 끝에 개봉했다. 전작의 팬들은 모두 델 토로가 연출로 복귀하기를 바랐지만, <셰이프 오브 워터> 등의 프로젝트로 인해 한없이 연기되던 속편은 결국 미드 <스파르타쿠스>를 제작하고 넷플릭스의 <데어데블>을 연출했던 스티븐 S. 드나이트가 연출을 맡고,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의 존 보예가가 주연을 맡으며 완성되었다. 영화는 전편으로부터 10년이 지난 시점, 마코(키쿠치 린코)가 남긴 메시지를 통해 다시금 카이주가 지구를 침략해 오는 위기를 알게 된 제이크(존 보예가)와 네이트(스콧 이스트우드), 아마라(케일리 스패니) 등의 예거 파일럿들이 이를 막기 위해 고군분투한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물론 전편에서 등장했던 뉴튼(찰리 데이)과 허먼(번 고만) 등의 캐릭터 또한 다시 등장한다.  

 영화는 할리우드가 중국자본을 동원해 일본영화를 만들어 낸 것처럼 느껴진다. 물론 <퍼시픽 림>이라는 영화가 <고지라>를 비롯한 일본의 괴수물과 거대로봇물에서 출발한 작품이기에 일본영화처럼 느껴지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전작이 일본 괴수물/거대로봇물의 요소를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방식에 차용하여 사용한 것과 달리, <퍼시픽 림: 업라이징>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사이즈와 기술력을 지닌 일본영화를 본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이는 단순히 도쿄를 배경으로 한 시가전이나, <에반게리온>의 2호기를 연상시키는 예거의 외양, 유니콘 건담 동상의 등장 등의 요소는 단순히 일본영화 속 요소를 차용한 것뿐만이 아니라 유사한 분위기를 풍기기에 이른다. 심지어 많은 부분의 편집과 예거를 촬영하는 카메라 워킹은 최근 일본에서 쏟아지고 있는 만화워작의 실사영화들을 연상시킨다. 심지어 중간중간 점프하며 서사를 전개시키는, 빠른 전개로 흥미를 끌지만 여기저기 빈틈이 느껴지는 각본까지 유사하게 느껴진다. 특히 엔딩은 ‘일본감성’이라 불리는 특유의 분위기를 고스란히 옮겨온다. 중국의 완다그룹이 인수한 레전더리 픽쳐스의 작품에서 이러한 작품이(더군다나 경첨을 비롯한 중국 배우들이 조단역으로 대거 등장한다) 제작되었다는 게 조금은 괴이하게 느껴질 정도이다. 

 전작보다 육중함은 덜하고, 서사의 빈 구멍과 스콧 이스트우드를 비롯한 몇몇 배우들의 불안정한 연기는 <퍼시픽 림: 업라이징>이 절대 전작만큼의 성과를 낼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이번 영화는 충분히 즐겁다. 물론 예거가 화물선을 끌고 와 카이주의 머리를 후려갈기던 쾌감을 다시 느낄 수 있는 장면은 없지만, 적어도 <트랜스포머>나 <파워레인저스>의 가볍기 짝이 없으며 액션의 동선을 도저히 알아챌 수 없는 막무가내 영화에 비해서는 충분한 즐거움을 준다. 더욱이 카이주가 다시 지구로 돌아오는 방식이라던가, 합체로봇이라는 전형성을 반전시키는 방식은 나름대로의 신선한 즐거움을 준다. 전작의 육중함을 그리워했던 관객에게 완벽한 영화는 아닐지라도, 이 정도면 영화 말미에 예고되는 3편을 조금 기대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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